국민의힘이 빠르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체제로 전환 중이다. 배현진, 조수진, 윤영석 최고위원이 사퇴 선언을 했고 권성동 원내대표 역시 당대표 직무대행 사퇴 의사를 내비쳤다. 8월 1일 소속 의원 89명이 참석한 의원총회는 비상 상황이라는 공감대를 전제로 비대위 체제 전환에 합의했다. 이틀 후 최고위원회가 관련 문제를 다룰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 소집 안건을 의결했다.
비대위원장 임명하겠다는 권성동
비대위 구성이 현실로 다가온 가운데 관심은 3가지 주제로 모아진다. 첫째, 누가 비대위원장을 임명할 것인가. 둘째, 어떤 비대위원장을 선택할 것인가. 셋째, 비대위를 언제까지 운영할 것인가. 국민의힘 당헌 제96조의 3은 “비상대책위원회의 위원장은 전국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당대표 또는 당대표 권한대행이 임명한다”고 규정했다. 국민의힘은 중앙윤리위원회가 이준석 대표에 대해 당원권 6개월 정지 결정을 내린 직후 상황을 당대표 궐위가 아닌 사고로 정의 내리고 당대표 직무대행 체제를 시작했다. 당대표 권한대행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에서 당대표 직무대행도 비대위원장을 임명할 수 있도록 관련 절차를 밟기로 한 이유다.
당대표 직무대행이 비대위원장을 임명할 수 있어도 문제는 남는다. 권 원내대표가 7월 31일 당대표 직무대행 사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당헌 제29조의 2에는 “당대표가 사고 등으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원내대표, 최고위원 중 최고위원 선거 득표순으로 그 직무를 대행한다”고 명시했다. 권 원내대표가 당대표 직무대행을 사퇴하면 차순위자는 조수진, 배현진 의원과 정미경 전 의원 순이다. 다만 조 의원은 최고위원 사직원이 처리돼 제외된다.
권 원내대표는 돌연 당대표 직무대행 사퇴가 정치적 선언이었다고 주장했다. 공식 당대표 직무대행은 여전히 본인이라는 이야기다. 의도는 분명하다. 자신이 비대위원장을 임명하겠다는 것이다. 비상 상황을 야기한 당사자가 비대위원장을 임명한다면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책임을 지고 당대표 직무대행을 사퇴하겠다고 말한 권 원내대표에 대한 불신은 더 커질 것이다. ‘위장 사퇴쇼’를 한다는 이준석 대표 측 주장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당헌에 근거할 때 당대표 직무대행 차순위자는 배현진 의원이다. 문제는 그 역시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으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배 의원이 비대위원장을 임명하더라도 논란이 생길 것이다. 더욱이 배 의원도 이미 사퇴 의사를 밝힌 상태다.
비대위 전환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이준석계 정미경 전 의원이 차순위자로 당대표 직무대행 역할을 수행할 것 같지도 않다. 윤핵관도 정 전 의원에게 그 역할을 맡기고 싶지 않을 테다. 결국 권성동이냐, 배현진이냐를 두고 고민일 것이다. 하지만 누구로 정하더라도 국민적 판단은 변하지 않는다. ‘윤핵관 비대위’라는 딱지다.
윤핵관은 ‘관리형 비대위’를 원할 것이다. 차기 전당대회를 통해 새 지도부가 구성될 때까지 상황 관리만 하는 비대위다. 윤핵관이 원해서 하는 비대위가 아니다. 분노한 여론을 잠재울 수단에 불과하다. 비대위원장도 윤핵관의 대리인이길 바랄 것이다. 친윤석열(친윤)계 인사들이 후보자로 거론되는 이유다. 이 같은 인선은 한계가 있다. 권 원내대표에서 또 다른 윤핵관 또는 친윤계로 당권이 넘어가는 것에 불과하다. 신장개업을 한다면서 간판만 바꾸는 격이다. 국민은 안이한 대응에 더 분노할 것이다.
관리형이냐, 혁신형이냐
차기 비대위는 혁신형이어야 한다. 계파 나눠 먹기로 구성한 기존 혁신위원회와 달리 진짜로 혁신을 이룰 비대위다. 혁신에는 정당개혁, 정치개혁, 국정개혁이 모두 포함돼야 한다. 슬금슬금 고개를 쳐들고 있는 계파정치 타파도 이뤄내야 한다. 윤핵관으로서는 달갑지 않겠지만 그래야 국민이 납득한다. 계파가 아닌 가치로 뭉치는 여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비대위는 상설 조직이 아니다. 비대위 활동 기간을 두고 의견이 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기 전당대회까지 운영하자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이 대표의 복귀 때까지만 운영하자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관리형 비대위는 전자를 염두에 둔 선택이고, 혁신형 비대위는 후자를 염두에 둔 선택이다. 완전한 혁신을 이루려 할수록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비대위는 임시 지도부로서 당내 갈등도 완화해야 한다. 윤핵관과 이준석 대표 간 극한 대립이 지속되고 있다. 비상 상황의 불씨가 된 사안이기도 하다. 비대위원장은 양측 간 중재와 조율이 가능한 인물이어야 한다. 비윤석열(비윤)계 가운데 비대위원장을 임명해야 하는 이유다. 비대위가 양측 간 중재와 조율에 성공하려면 활동 기간도 불가피하게 길어져야 한다. 이 대표의 복귀 길을 열어둬야 합일점 찾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결과, 즉 상생과 정당 지지율 회복을 원한다면 가야 할 길은 정해져 있다. 혁신형 비대위를 6개월가량 유지하는 방안이다.
정치는 잔혹 드라마로 끝나기 일쑤다. 권력이라는 요물이 눈을 가리고 귀를 가린다. 당권을 끝내 놓치지 않으려는 윤핵관은 비상 상황마저 자의적으로 해석해 관리형 비대위, 곧 ‘윤핵관 비대위’를 거쳐 조기 전당대회로 가려 할 가능성이 높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이 말이 자꾸 떠오르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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