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국회의장은 9일(현지시간) 여야 3당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선언한 것에 대해 “가장 큰 이유는 소위 팬덤 정치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석 달 만에 지지율이 20%대로 하락한 것에 대해서는 “적폐 청산보다는 통합의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김 의장은 이날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진행한 순방 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정치가 어려운 시기에는 국민의 마음을 잘 수렴해서 당심(黨心)으로 만들고 공감대를 확산하는 것이 중요한데 세 당 모두 부족한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의장은 지난 5일부터 11일까지 폴란드와 루마니아를 순방 중이다.
국민의힘은 9일 당내 최다선(5선) 주호영 의원을 비대위원장에 임명하고 비대위 체제로 돌입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에 이어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이 새 정부 출범 92일 만에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면서, 2016년 이후 6년 만에 여야 주요 3당이 모두 ‘비상체제’에 들어갔다.
김 의장은 이번 사태의 핵심 원인이 ‘팬덤 정치’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3당의 주요 의사결정이 사실상 각 당의 소수 극성 지지층 중심으로 결정됐고, 당심과 민심이 괴리되는 결과로 이어지면서 이른바 ‘분열의 정치’가 반복됐다는 지적이다.
김 의장은 “팬덤 정치는 민주당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국민의힘에도 상당한 팬덤 세력이 있다. 이준석 세력뿐만 아니라 이준석에 반대하는 세력도 상당한 팬덤을 이루고 있다”면서 “팬덤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너무 극우와 극좌로 가서 국민통합을 깨뜨리는 기제로만 작용하는 것 같은 안타까움이 있다”고 했다.
이어 “팬덤 정치에 (당이) 말려들기 시작하면 당심이 민심과 멀어지는 길로 가게 된다”며 “극단적인 정치 세력들이 당의 지도부나 그 팬덤 정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의 리더십에 따라서 간다면 우리 정치는 점점 더 국민들로부터 버림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의장은 ‘한국형 현안조정회의’를 해법으로 제안했다. 그는 “정치의 오랜 경험을 하고 국민들과 많은 대화를 나눠본 중진 의원들이 각 당의 정치적 의사결정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며 “국회의장으로서 독일의 현안조정위원회 같은 한국형 현안조정회의를 (운영)했으면 하는데, 각 당의 중진 의원들이 중요한 정치 현안에 관해 토론하고 당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지난 6월 민주당 워크숍에서 후반기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국민의힘에 넘기기로 총의를 모은 후, 공전하던 원(院) 구성 협상에 물꼬가 트였던 것을 언급하면서 “민주당 워크숍에서 ‘법사위원장 주기로 했으면 지켜라, 원 구성 빨리 합의하자’는 이야기가 사실 중진들로부터 나왔었다”며 “당심과 민심을 좁히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중진들이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의장은 국회의장과 양당 지도부가 ‘단합대회’를 통해 소통의 폭을 넓히는 아이디어도 제시했다. 그는 “제일 필요한 것은 우선 양당 원내대표단이 더 소통하고 대화를 하는 것”이라며 “양당 원내대표단이 짧은 기간이라도 같이 여행을 하는 것을 한번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오는 17일 취임 100일을 맞는 윤석열 정부에 대해 ‘적폐 청산’보다는 ‘국민 통합’을 우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고금리·고환율·고물가로 민심이 꽁꽁 얼어붙은 시점에 국정 동력을 확보하려면 전(前) 정권에 대한 수사보다는 경제위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국민통합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그는 1998년 외환위기(IMF) 직후 당선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정부를 믿고 견뎌낸다면 반드시 극복하겠다’며 울먹였던 모습을 언급하면서 “그 진정성이 금 모으기 운동 등 국민 전체를 하나로 묶는 역할을 했다”며 “(윤석열) 대통령부터 최선을 다할테니 함께 힘을 모아달라는 국민통합의 정치를 하고,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윤 대통령이)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전 정권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조사가 검찰과 경찰에 의해 발표되니까 자꾸 분열을 만들고 야당에서 비판이 나온다”며 “필요하면 적폐를 청산하는 일은 해야겠지만, 그것은 먼저 위기를 극복하고 해도 되는데 공교롭게도 (전 정부 수사가) 집권 초에 몰집되니까 통합의 메시지가 약해졌다”고 지적했다.
김 의장은 개헌 논의 차원의 국회의장 직속기구 ‘개헌자문위원회’ 구성 방침도 재차 밝혔다. 그는 귀국 후 윤 대통령을 만나 한-루마니아 정상회담 개최와 함께 개헌자문위원회에 대한 생각을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오는 19일 신임 국회의장단을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한다.
김 의장은 “개헌하면 국정운영 ‘블랙홀’ 얘기 등이 나오는데 역발상이 필요하다”면서 “너무 많은 것을 모아서 헌법을 고치려고 하면 또 실패한다. 국민적 공감대가 있는 것만 모아서 2024년 총선을 계기로 그렇게(개헌) 하면 되지 않나”고 말했다.
이어 “우선 개헌자문위를 다양한 전문가들로 구성해서 국민의힘도 참여해서 한번 다양한 형태의 토론을 했으면 좋겠다”며 “개헌과 교육 개혁, 두 가지 만큼은 국회 방송을 통해 전체 과정을 공개해서 국민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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