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77주년]
尹, 광복절 축사서 ‘담대한 구상’ 제안… “비핵화 맞춰 경제-민생 획기적 개선”
의료-전력-공항 등 6개 지원책 공개… 대통령실 ‘남북공동경제발전위’ 계획
“北 요구 안전보장 빠져 한계” 지적도
윤석열 대통령(사진)은 15일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그 단계에 맞춰 북한의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구상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설 경우 초기 협상 과정부터 인프라 구축 등을 지원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대북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해 “북한의 비핵화는 한반도와 동북아, 그리고 전 세계의 지속가능한 평화에 필수적”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5월 10일 취임사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할 ‘담대한 계획’을 예고한 뒤 98일 만으로, ‘담대한 구상’으로 비핵화 로드맵을 보다 구체화한 것이다. 이번 경축사에는 비핵화 협상과 함께 가동할 6개 경제 지원책이 우선 공개됐다. 윤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대규모 식량 공급, 발전과 송배전 인프라 지원, 항만과 공항의 현대화, 농업 생산성 제고를 위한 기술 지원, 병원과 의료 인프라의 현대화, 국제투자 및 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포괄적 합의가 도출될 경우 경제 협력을 실행할 ‘남북 공동경제발전위원회’를 가동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필요에 따라 지금 이행되고 있는 유엔 제재 결의의 부분적인 면제도 국제사회와 함께 협의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날 밝힌 ‘담대한 구상’에는 북한이 핵 개발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안전 보장 우려’를 해소할 방안은 일단 빠져 있다. 다만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브리핑에서 “비핵화에 관한 포괄적 합의가 도출되고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가 진행되는 프로세스에 발맞춰 정치·군사 부문의 협력 로드맵도 준비해 두고 있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구상’은 경제뿐 아니라 안보·군사 협력까지 열어둔 것으로, 경제적 보상에 초점을 맞췄던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과는 다르다는 설명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 한일 관계의 조속한 개선 의지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일본은 이제 세계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함께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이라면서 “한일 관계가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양국의 미래와 시대적 사명을 향해 나아갈 때 과거사 문제도 제대로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비핵화 협상 초기부터 경제 지원”… 北 호응이 관건
尹, 광복절 경축사서 ‘담대한 구상’ 밝혀 北비핵화 단계 맞춰 인센티브 제공… 식량-전기 등 6가지 지원 계획 유엔제재 부분 완화도 논의할 방침… “MB ‘비핵-개방-3000’과 유사” 평가 대통령실 “정치 군사 요소로 차별화” “비핵화 전제… 北 수용 가능성 낮아… 대북제재 완화 논의도 쉽지 않을듯”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6가지 경제 협력 방안 등 비핵화 로드맵을 담은 ‘담대한 구상(Audacious Initiative)’을 밝혔다. 이번 구상은 5월 10일 취임식에서 윤 대통령이 밝힌 ‘담대한 계획’을 한층 구체화한 것이다. 대통령실은 “군사와 정치 분야에 대한 계획들도 전부 마련해 뒀다”며 한껏 기대감을 높였지만,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어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 “군사·정치 계획도 마련”
윤 대통령이 밝힌 6가지 인센티브는 민생 개선과 인프라 구축에 초점을 맞춘 사실상 개발 원조에 가깝다. 북한의 비핵화 단계에 맞춰 △대규모 식량 공급 △발전과 송배전 인프라 지원 △국제 교역을 위한 항만과 공항의 현대화 △농업 생산성 제고를 위한 기술 지원 △병원과 의료 인프라의 현대화 지원 △국제 투자 및 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제시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담대한 구상’은 비핵화 논의와 경제 협력이 함께 진행된다는 게 특징이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북한이 진정성을 갖고 비핵화 협상에 나올 경우 초기 협상 과정부터 경제 지원 조치를 적극 강구한다는 점에서 과감한 제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포괄적 합의가 될 경우 단계적 조치에 상응해 남북 경제 협력을 위한 남북 공동경제발전위원회를 가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선 북한의 광물·희토류 등 지하자원과 연계한 ‘한반도 자원·식량 교환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북한의 풍부한 자원을 한국과 국제사회가 활용하는 대신 북한이 필요로 하는 대규모 식량과 생필품을 한국이 지원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 광물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대상에 포함된 것을 부분적으로 완화하는 것도 논의할 방침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우리 계획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진전 사항을 논의했다”며 “비핵화 협의 과정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면 안보리 (제재) 조치에 대해서도 당사국과 마음을 열고 논의할 의향이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날 로드맵에 북한의 최대 관심사인 안전보장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를 의식한 듯 대통령실 관계자는 “담대한 구상의 비전은 결국 경제, 군사, 정치 세 가지 분야에서 남북이 초보적인 협력을 논의하고 실천하고 심화하는 과정에서 비핵화도 동시에 합의되고 실천되는 것”이라며 군사, 정치 분야 계획도 있음을 알렸다. 다만, 선공개한 경제 협력에 북한이 호응하는지를 봐가며 두 분야를 논의하겠다면서 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 北 호응 없는데… ‘현실성 부족’ 지적도
문제는 북한의 수용 여부다. 대통령실은 핵무기 동결과 신고, 사찰 허용, 핵 프로그램 폐기 순으로 가는 단계적 비핵화를 설명하면서 경제 협력과의 동시 진행을 거듭 강조했지만 전문가들은 북한의 수용 가능성을 낮게 봤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한국이 경제적 인센티브를 줘서 핵을 포기하게 한다는 주장을 북한 체제 부정으로 간주한다”며 외려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대진 한라대 교수도 “북측의 호응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에서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 때 성과 없이 끝난 ‘비핵·개방·3000’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넘어야 할 산이다. 북한 매체는 이미 “쓰레기통에 처박힌 휴지조각을 꺼내들었다”며 담대한 구상을 비난했다. 대북제재의 부분적 완화 논의도 쉽지만은 않다. 식량 프로그램을 빼면 공히 유엔과 미국의 크고 작은 제재 매듭을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특히 항만과 공항 현대화는 공사 범위나 규모 면에서 허용 수준을 장담할 수 없고, 국제 투자 및 금융 지원은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등 풀어야 할 문제가 많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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