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형 대법관 6년의 족적(足跡)…“저는 여전히 법적 이성을 믿습니다”[법조 Zoom In]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3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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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 중간도 아닙니다. 사법 적극주의와 사법 소극주의 가운데 어느 한 쪽을 선택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김재형 대법관(57·사법연수원 18기)은 2일 오전 대법원에서 열린 본인의 퇴임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 대법관은 “저는 여전히 법적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며 “제가 한 판결이 여러 의견을 검토해 최선을 다해 내린 타당한 결론이기를 바랄 뿐”이라고 했다.

김 대법관은 1992년 사법연수원을 마치고부터 서울서부지법, 서울민사지법에서 판사로 일했다. 이후 1995년 서울대 법대로 옮겨 21년 동안 민사법을 연구하고 강의했다. 학계를 대표해 민법 등 여러 입법 과정에 개정위원으로 참여했고, 민사판례연구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며 학계와 실무의 가교 역할도 했다. 이후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대법관으로 지명됐다.

취임 이후 김 대법관은 6년의 임기 동안 다른 대법관들과 마찬가지로 임명 시기나 그가 내놓은 판결을 놓고 진보냐 보수냐, 혹은 중도냐 하는 세간의 평가를 받았다. 김 대법관이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등에서 보인 면모를 두고서는 김 대법관은 ‘사법 적극주의자’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김 대법관은 이날 원고지 18장 분량의 퇴임사를 통해 6년 만에 이 같은 외부 평가에 응답했다. 하지만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다. 퇴임사 곳곳에는 김 대법관이 대법원 판결문의 다수의견 외에도 별개의견·보충의견 등 소수의견을 집필하며 여러 차례 직접 사용했던 표현이 그대로 옮겨져 있다. 김 대법관은 그동안 판결을 통해 “진보냐 보수냐”에 가둘 수 없는 법원과 판사의 역할에 대한 그의 고민과 생각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법은 입법자보다 현명하다”
김 대법관은 2018년 11월 양심적 병역거부를 비(非)범죄화하는 첫 대법원 판단을 내렸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앞선 2004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뒤집고 진정한 양심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병역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14년 전과 달라진 것은 병역법상 ‘정당한 사유’에 대한 해석이었다. 병역법 88조 1항은 입영 통지서를 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이에 응하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004년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니 처벌해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2018년 대법원은 정당한 사유가 맞다고 해석했다. 병역법 개정 등 입법 논의를 기다리지 않고 법원이 법률해석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무죄로 만든 것이다.

당시 김소영 조희대 박상옥 이기택 대법관은 기존 판단을 뒤집어 정당한 사유의 범위를 확장해야 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라며 반대의견을 냈다. 특히 김 대법관이 선 다수의견에 대해 “입법목적의 범위 내에서 문언·논리·체계에 입각해 이뤄져야 하는 법률해석의 원칙과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한 사유는 질병이나 재난 발생 등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대법관은 권순일 조재형 민유숙 대법관과 함께 낸 보충의견에서 아래와 같이 밝혔다.

“법을 해석할 때에 입법자의 의도를 고려해야 하지만 그에 구속될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구속돼야 할 것은 법 그 자체이다. 그런데 바로 그 법이 ‘정당한 사유’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법은 입법자보다 현명하다.”(2016도10912, 김재형 대법관의 보충의견 중)

김 대법관에 따르면 병역법상 정당한 사유라는 문구는 애초에 사회의 변화에 따라 여러 사유를 포함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둔 일종의 입법적 장치다. 따라서 법을 만든 이가 추상적 표현인 ‘정당한 사유’에 양심적 병역거부가 포함될 가능성을 예상했었는지 여부는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헌법에 맞게 법률을 해석해 구체적 해석과 판단을 내리는 일은 법원의 몫이라는 것이다.

“다수의견은 (중략)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집총과 군사훈련을 포함한 병역의무의 이행을 강제하고 불이행할 경우 이들을 군대도 사회도 아닌 교도소로 보내는 조치를 계속한다면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을 함께 고려하면 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법 제88조 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2016도10912, 김재형 대법관의 보충의견 중)

이 판결 이후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무죄 선고가 뒤따랐다. 정부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보다 4개월 먼저 나왔던 헌법재판소의 병역법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2020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병역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했다.

●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법원은 ‘법률’이 아닌 ‘법’을 선언해야 한다”
2020년 9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박근혜 정부 당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법외노조 통보 처분을 한 것은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김 대법관은 법외노조 통보를 취소해야 한다는 다수 의견과 같은 결론에 섰지만 그 근거에 있어서는 한발 더 나갔다.

당시 다수의견의 요지는 헌법상 노동3권에 중대한 제약을 가하는 법외노조 통보 제도를 법률이 아닌 ‘시행령’에 규정한 것은 헌법상 법률유보원칙에 위반돼 무효라는 것이었다. 법률유보원칙이란 행정작용이 행해짐에 있어서 국회가 제정한 형식적 법률이나 법률의 위임에 의한 법규명령 등 법적 근거가 요구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김 대법관은 별개의견에서 이 같은 다수의견에 대해 “문제의 핵심을 비켜가는 것이고 실질적 판단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법관이 볼 때 문제의 핵심은 노동조합법 시행령이 아니고 전교조가 노동조합법상 노동조합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김 대법관의 별개의견에 따르면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는 노동조합법과 ‘이 경우 노동조합이 아니라고 통보한다’는 노동조합법 시행령은 명확하다. 문언에 따라 해석할 경우 당시 전체 조합원 약 6만 명 중 9명이 해직 교사인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는 적법하다는 결론이 당연하게 도출된다. 김 대법관은 “이러한 판단이 법령의 규정을 이 사건에 그대로 적용하는 법률적 삼단논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김 대법관이 볼 때 이 같은 결론은 “헌법상 노동3권의 충실한 보장을 위해 존재하는 노동조합법이 결사의 자유마저 침해하게 되는 결과”를 낳기에 헌법을 비롯한 법질서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부당한 것이었다. 김 대법관은 “이 사건의 어려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법령의 문언에 따른 해석과 그 적용이 과연 정당한 결론인지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별개의견에는 김 대법관이 이 ‘어려운 사건(hard case)’을 놓고 법의 문언을 넘어서지 않는 해석을 통해 부당함을 교정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시도한 과정이 상세히 기재돼 있다. 하지만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서의 ‘정당한 사유’와 같은 장치가 이 사건에는 없었다. 김 대법관은 “해석론으로써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에 관해 다른 결론을 내릴 여지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김 대법관은 이어 아래와 같은 견해를 밝혔다.

“법을 해석·적용할 때는 그 결과를 고려해야 한다. 만약 해석의 결과 심히 불합리하거나 부당한 결론이 도출된다면 그러한 해석을 배제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통상 이를 위해 (중략) 여러 해석방법이 동원된다.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불합리와 부당함이 교정되지 않는다면 법원은 법의 문언을 넘어서는 해석, 때로는 법의 문언에 반하는 정당한 해석을 해야 한다.”(2016두32992, 김재형 대법관의 별개의견 중)

김 대법관에 따르면 법률은 문언에 충실하게 해석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법률의 명문 규정의 엄격한 적용만 고집한다면 사회의 변화와 발전에 대한 적응성이 떨어져 부당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 경우 예외적으로 법원은 실질적인 법 형성적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즉 “헌법을 비롯한 법질서 전체의 관점에서 정당한 해석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법규범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안을 완벽하게 규율할 수는 없다. 법은 그 일반적·추상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본질적으로 흠결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법률의 해석은 단순히 존재하는 법률을 인식·발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일정한 경우 유추나 목적론적 축소를 통해 법률의 적용범위를 명확히 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법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실질적 법치주의의 요청이다. 법원은 ‘법률’이 아닌 ‘법’을 선언해야 한다.”(2016두32992, 김재형 대법관의 별개의견 중)

당시 전교조는 교사가 아닌 사람의 가입을 허용하거나 모든 해직 교사의 조합원 자격을 무제한 인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조합원으로 활동하다가 해직된 교사의 조합원 자격이 유지되도록 한 것 뿐이었다. 김 대법관은 “전교조의 이러한 행위는 헌법상 기본권의 보장 범위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며 “노동조합법이 위와 같은 행위까지 금지한다고 보는 것은 헌법 규범에 반하는 해석”이란 견해를 밝혔다.

김 대법관의 결론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에 ‘원래 조합원이었던 자가 해직되더라도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도록 하는 경우’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 대법관이 볼 때 이것이 헌법에 부합하는 동시에 헌법의 원리와 가치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의미를 선택한 해석이었다. 따라서 전교조는 애초에 법외노조가 아니고 법외노조 통보도 당연히 잘못이라는 것이다.

● 군형법상 추행죄 사건 “법률해석은 현시대에 맞는 법률의 정당한 의미를 밝혀내는 것”
김 대법관의 견해는 법원이 구체적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음대로 법률의 해석과 적용 권한을 휘둘러도 된다는 것이 아니다. 법원의 법률해석 권한은 무제한이 아니다. 김 대법관은 올해 4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의 ‘군형법상 강제추행 사건’ 보충의견에서 “정치의 영역에서 입법으로 해결해야 할 모든 문제를 사법부가 나서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고 했다. 김 대법관은 퇴임사에서도 정확히 같은 말을 했다.

김 대법관은 법률을 해석할 때는 법률의 입법 취지와 목적, 다른 법령과의 관계, 법질서 전체와의 조화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봤다. 김 대법관은 “여기서 말하는 ‘법질서 전체’란 최고규범인 헌법을 중심으로 해 형성된 사회 일반의 법의식을 포함한다”고 했다. 법원은 헌법과 법률, 그리고 양심에 따라 법적 안정성을 침해하지 않는 한도에서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률해석은 제정 당시 입법자의 주관적 의사에 얽매여서는 안 되고 문언의 가능한 의미를 탐구해 최고규범인 헌법의 내용과 가치를 반영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현재의 법상황과 법의식의 변화를 고려해 현시대에 맞는 법률의 정당한 의미를 밝혀내는 것이 돼야 한다.”(2019도3047, 김재형 대법관의 보충의견 중)

하지만 이는 법원의 법률 해석과 적용 권한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까지 “국회 입법을 기다려야 할 문제”라며 미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김 대법관은 “구체적인 사건에서 법률의 해석과 그 적용 범위를 정하는 권한은 사법권의 본질적 내용을 이룬다”고 했다. 법원은 사법권 안에서 구체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 최대한의 고민을 해야 한다.

근무시간이 끝난 뒤 부대 밖 독신자숙소에서 서로 합의 하에 성관계를 한 남성 군인들이 기소된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최초로 ‘부대 밖 사적 공간’에서 ‘합의’에 따라 이뤄진 동성 군인 간의 성관계는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남성 군인 간 항문성교를 포함한 성행위가 그 자체로 군형법상 ‘추행’이기에 처벌해야 한다는 취지의 2008년 대법원 판결을 뒤집은 것이었다.

군형법 제96조의 2항은 ‘군인 등에 대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말 그대로 해석한다면 피고인들은 당연히 처벌 대상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규정을 ‘일방의 의사에 반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거나, 군기를 직접적·구체적으로 침해하는 다른 사정이 있어 실질적인 법익 침해가 있는 경우’에만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시대와 사회적 인식의 변화에 따라 합의된 동성 간 성행위를 계속해서 처벌하기 어렵고 이것이 헌법 정신에도 어긋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다수의견의 판단은 군형법상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엄격하게 해석해 적용 범위를 제한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조재연 이동원 대법관은 “현행 규정은 행위의 강제성이나 시간과 장소 등에 관한 제한 없이 남성 군인들 사이의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처벌하는 규정이라고 봐야 한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다수의견과 같은 제한해석은 법원의 법률해석 권한을 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대법관은 보충의견에서 “다수의견은 법원의 법률해석 권한 내에서 이뤄진 정당한 해석”이라며 “이는 헌법규범의 의미와 가치를 반영하고 지금 우리 사회의 법의식을 고려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문언 그대로만 적용한다면 남녀 군인이 합의해 항문성교를 한 경우도 처벌할 수밖에 없다. 법원의 법률해석 권한은 무제한이 아니지만 법원은 그 한도 내에서는 구체적 타당성 있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해야 한다고 김 대법관은 판단한 것이다.

김 대법관에 따르면 군형법 조항을 사적 공간에서 합의에 따라 이뤄진 동성 군인 간의 성관계에까지 적용해 처벌 대상으로 삼는 것은 합리적 이유 없이 특정한 성적 지향을 가진 사람을 차별해 평등권을 침해한다. 이 사건에서 헌법정신에 어긋날 수 있음을 알면서도 기존 판례를 유지하는 소극적 자세를 취한다면 그것은 사법부의 역할을 다하지 않는 것이 된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 문제는 헌법과 법률의 틀 안에서 법률의 해석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 다수의견의 입장이다. (중략) 법률의 위헌성을 인식하고서도 만연히 법률 개정을 기다려야 한다는 이유로 법원 앞에 있는 당사자를 구제할 수 있는 길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바로 국민이 사법부에 부여한 권한이자 임무이다.”(2019도3047, 김재형 대법관의 보충의견 중)

● 6년 임기 마치며 “사법적 해결 힘닿는 데까지 고민했다”
김 대법관은 이외에도 그동안 여성,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판결을 여러 건 내렸다. 또 그는 일관되게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해왔고 아이의 복리에 부합한다면 조부모의 입양도 가능하다거나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의 정자를 통해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자녀에게도 민법상 친생자추정원칙이 적용된다는 법리를 제시하는 등 법치주의 확립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퇴임 직전에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금되거나 처벌받은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본인의 마지막 전원합의체 판단을 이끌었다.

대법관은 취임 당일에만 즐겁고 임기 내내 괴롭다는 말이 있다. 6년 내내 전국에서 밀려오는 사건기록을 읽고 판결문을 쓰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대법관은 6년간의 임기를 마치는 퇴임사에서 “저는 재판을 하고 판결문을 쓰는 데서 즐거움과 보람을 찾고자 했다”고 했다.

김 대법관은 퇴임사를 통해 자신이 6년 간 강조해온 생각과 고민을 다시 한 번 마지막으로 밝혔다. 김 대법관은 “입법과 사법의 경계가 분명한 것은 아니다. 입법과 사법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절대적인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입법과 사법은 정의라는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는 두 수레바퀴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입법적 해결은 주로 장래에 일어날 일을 규율하기 위한 것이므로 당사자들이 법원에 가져온 바로 그 문제까지 해결해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물론 법률의 해석과 적용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법원이 해결할 수 없다고 당당하게 밝혀야 하겠지만 저는 너무 쉽게 문제를 넘기지 않고 사법적으로 해결할 수 잇는지에 관해 힘닿는 데까지 고민을 했다”고 했다.

김 대법관은 그 고민의 방식에 대해 “법관은 입법자가 선택한 법률 문언의 의미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입법목적을 비롯해 법해석에 영향을 끼치는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면서 “필요한 경우에는 헌법을 비롯한 전체 법질서에 비춰 올바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고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형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주요 대법원 판결]
△2017년 8월 대법원 3부(2015두3867)
삼성전자에 입사해 액정표시장치(LCD) 공장에서 근무하다 희귀질환인 다발성 경화증에 걸린 근로자에게 업무상 재해를 인정한 판단. 대법원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

△2017년 12월 대법원 3부(2016다202947)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와 그를 도운 동료 직원에게 근무시간 위반 등을 이유로 불리한 인사조치를 한 르노삼성자동차에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단. 대법원 “회사의 불리한 인사조치가 성희롱 사건에 대한 문제 제기와 근접한 시기에 있었는지, 종전 관행이나 동종 사안과 비교해 이례적이거나 차별적인 취급인지 등을 고려해 불법성을 따져야 한다.”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2014다61564)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등이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회의원 등 공적 인물에게 종북, 주사파라는 표현을 쓴 것은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 대법원 “정치적 표현에 대하여 명예훼손이나 모욕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인정하거나 그 경계가 모호해지면 헌법상 표현의 자유는 공허하고 불안한 기본권이 될 수밖에 없다.”

△2018년 1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2016도10912)
진정한 양심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병역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단. 대법원 “진정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집총과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의 이행을 강제하고 그 불이행을 처벌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된다.”

△2019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2016므2510)
아내가 남편의 동의를 얻어 다른 사람의 정자로 인공수정을 해 아이를 낳은 경우에도 민법상 친생자추정원칙을 적용해 남편의 친자식으로 추정해야 한다는 판단. 대법원 “인공수정 자녀를 둘러싼 가족관계도 다른 자녀와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 출생과 동시에 안정된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자 한 친생추정 규정의 취지는 인공수정 자녀에 대해서도 유지되어야 한다.”

△2021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2018스5)
친부모가 생존해 있어도 조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이의 복리에 더 부합한다면 조부모가 손자·손녀를 자녀로 입양할 수 있다는 판단. 대법원 “가정법원이 미성년자의 입양을 허가할 것인지 판단할 때에는 ‘입양될 자녀의 복리에 적합한지’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2022년 4월 대법원 전원합의체(2019도3047)
부대 밖 사적 공간에서 합의에 따라 이뤄진 동성 군인 간의 성관계는 처벌할 수 없다는 판단. 대법원 “현행 규정의 문언 변경과 함께 동성 간의 성행위에 대한 법규범적 평가가 달라진 점을 고려하면 동성 간의 성행위가 그 자체만으로 ‘추행’이 된다고 본 종래의 해석은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

△2022년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2018다212610)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5년 발령한 ‘긴급조치 9호’ 자체가 위헌이므로 당시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금되거나 처벌받은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단. 대법원 “긴급조치 9호는 위헌·무효임이 명백하고 발령으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는 강제 수사와 공소 제기, 유죄 판결 선고를 통해 현실화됐다.”

#법조 zoom in#김재형#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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