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반의사불벌죄’ 규정 삭제 개정안 논의하고도 결론 미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18일 15시 41분


"충분히 많은 논의를 해서 반의사불벌죄로 했던 건데 시행 두 달도 안 돼서 바꿀 필요까지는, 시기상조인 것 같고요. 추이를 본 다음에 결정하자는 의견을 개진하는 바입니다." (지난해 12월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록)

법무부가 14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발생한 여성 역무원 피살 사건 관련 대책으로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 처벌법)'상 반의사불법죄 규정을 폐지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이와 관련된 논의가 있었지만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결론을 내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지난해 6월 발의한 스토킹 처벌법 개정안이 상정됐다. 해당 개정안은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밝힌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반의사불벌죄' 규정을 삭제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기소할 수 없다. 지난해 3월 제정된 스토킹 처벌법에 반의사불벌죄 규정이 포함되면서 여성 단체를 중심으로 해당 규정을 삭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가해자들이 형사 처벌을 피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처벌 불원 의사를 밝히도록 압박하는 등 2차 피해가 우려된다는 것.

해당 개정안에 대한 국회 법안심사소위 논의에서도 이 같은 우려가 제기됐다. 당시 회의록에 따르면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언론 보도를 봐도 반의사불벌죄로 해놓으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자꾸 압력을 넣는 수단이 된다는 지적이 있다”며 반의사불벌죄 규정의 삭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에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은 “추이를 본 다음에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라며 “시행된 지가 올 10월부터 만 두 달이 안 된 상태이고 이걸로 인해서 조사나 기소까지 이르는 예도 좀 봐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스토킹 범죄의 개념에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라는 것이 들어가 있는 것이 문제”라며 “반의사불벌죄 문제는 아니다.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스토킹행위를 했을 때 여러 가지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 여성단체나 다른 사회단체의 요구”라고 말했다.

이후 개정안에 대한 논의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당시 법안심사소위는 당시 정부가 준비하던 '스토킹 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스토킹피해자보호법)'이 발의된 이후 해당 개정안을 추가로 논의하기로 했지만, 스토킹피해자보호법은 예상보다 늦은 올해 4월에야 국무회의 의결을 거치면서 아직 추가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다.

해외에선 스토킹 범죄와 관련해 친고죄나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하는 추세다. 독일은 2007년 스토킹 범죄를 처벌하는 법안을 만들 때 친고죄 조항을 넣었다가 지난해 해당 조항을 삭제했다. 처벌 이후에도 계속될 스토킹에 대한 두려움으로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문제가 제기돼 피해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처벌하도록 법을 바꾼 것이다. 일본 역시 2016년 친고죄 규정을 삭제했다.

지난해 스토킹 처벌법 발의 과정에 참여했던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초안에는 반의사불벌 조항이 없었는데, 경찰 최종안에 해당 조항이 포함됐다. 스토킹 범죄를 가정폭력의 연장선으로 본 것"이라며 "반의사불벌 조항이 삭제됐다면 수사기관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 이번 신당역 사건과 같은 비극을 사전에 막을 기회가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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