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본부장 “상황 악화땐 유연 대처”…美와 유사한 무역보복 가능성 시사
“반도체 규제 美와 이견” 발언도
대통령-관계부처 주내 잇달아 방미…美 중간선거 전 보조금 타협 난망
한미 연쇄회동, 충격 최소화 나설듯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통과에 따른 한국산 전기차 차별 문제가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가운데 정부가 미국을 상대로 유사한 보복 조치를 취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 조 바이든 행정부가 반도체·과학법을 통해 향후 10년간 중국 반도체에 투자를 금지하는 이른바 ‘가드레일’ 조항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도 “한미 간 이견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사진)은 18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유사한 보복 조치를 시행해 문제를 악화시키고 싶지 않지만 상황이 심각해지면 우리도 유연하게 대처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전기차 보조금 차별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경우 한국도 보복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번 주 유엔 총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예정인 가운데 정부가 미국을 압박하는 듯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다만 미국의 11월 중간선거까지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보복 대응은 후순위 대책이고, 최대한 협상을 통해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대체적인 기류다. 한미 간 불협화음이 커지면 바이든 행정부와의 여러 협상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고, 미국의 경제안보 정책을 맹비난하는 중국에 동조하는 모양새로 비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이 때문에 피해가 예상되는 국내 산업계 달래기 측면이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 미국산 전기차 보조금 제외 거론
우리 정부가 검토할 수 있는 대응 조치로는 국내에서 판매되는 미국산 전기차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방안이 거론된다. 이도훈 외교부 2차관은 지난달 3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미국산 자동차 보조금을 국산 전기차 개발 보조금으로 쓰자는 주장에 대해 “그 문제를 제기하고 의견을 만들어 보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 등 해외 시장에서 한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전기차 등 주요 분야 국내 수출 기업들에 수출 보조금 명목으로 직·간접적인 재정 지원을 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우회적인 보복 조치로 국내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하려 할 때 정부가 심사 과정에서 이를 통제할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해 14일 산업부가 국내 2차전지 양극재 제조업체의 미국 공장 건설 계획을 기술 유출 우려로 불허한 조치를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미국에 대한 강경 메시지는 경제안보 현안에 대한 한미 간 연쇄 회동을 앞두고 나왔다. 20일 유엔 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 뉴욕을 방문하는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 두 번째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이도훈 차관도 관련 논의를 위해 18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 역시 20일 미국을 방문한다.
○ 대미 협상이 먼저, 보복 대응은 후순위
우리 정부는 11월 중간선거 전에 IRA를 개정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고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미국과 조율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16일 시작된 한미 국장급 실무협의를 시작으로 연말까지 IRA 개정을 최대한 설득하고 실질적 변화가 없으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대응 카드를 동원할 것으로 보인다. 안 본부장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미국도 IRA와 관련해 한국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IRA에 대한 유럽연합(EU) 등과의 공조를 위해서도 보복 조치를 당장 고려하진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BBC(배터리 바이오 반도체) 산업 전반으로 한미 간 긴장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안 본부장은 FT 인터뷰에서 중국에 대한 반도체 투자를 금지하는 미국의 ‘가드레일 조항’에 대해 “한국 반도체 업계는 미 정부 움직임에 많은 우려를 갖고 있다”며 “미국은 (첨단 반도체와 저사양 반도체의) 회색지대로까지 (규제를) 확대하려 하는데 그 경계에 대해 한미 간에 종종 이견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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