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외교장관, 美뉴욕서 ‘우호적’ 대면… 尹·기시다 회담 사전 조율?

박진 외교부 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이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호텔에서 만나 팔꿈치를 맞대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과 일본의 외교수장이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대면하고, 상호 신뢰관계를 기반으로 앞으로도 다양한 계기에 양국 외교당국 간 대화와 협의를 지속해 나가자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날 오후 4시부터 55분간 미국 뉴욕의 한 호텔에서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무상과 한일외교장관회담을 개최하고 그간 4차례 개최된 외교장관회담 등 한일간 건설적으로 소통해 온 것을 평가하고, 이같이 공감했다고 외교부가 보도자료를 통해 전했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박 장관이 태풍 피해를 입은 일본 국민들에 대한 위로를 건네는 등 “회담은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됐다”고 전했다.

박 장관이 하야시 외무상과 만난 것은 지난 5월 취임 후 4번째다. 박 장관은 지난 7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 계기에 하야시 외무상을 처음 대면한 데 이어 같은 달 7월 일본을 방문해 2번째 회담을 가졌고, 지난 8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 계기에 3번째 대면한 바 있다.

이날외교장관 회담에선 양국 간 최대 갈등현안인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정부 당국자는 “이번 회담은 그간 양 장관간에 이런 다자회의 계기에 계속 만남을 갖고 긴밀한 소통을 통해 한일관계 개선, 복원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공감대에 따라 지난 8월 캄보디아 회담에 이어 한달만에 이뤄졌다”며 “양 장관은 한일관계의 조속한 복원 필요성에 대한 그간의 교감과 공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이날 회담에서 과거사 현안과 관련해 바람직한 해결방안을 조속히 도출하기 위해 진정성을 갖고 함께 노력해 나가자고 말했다.

박 장관은 하야시 외무상과 회담에서 강제징용 문제에 있어 외교장관으로선 최초로 강제징용 피해자를 직접 만나 목소리를 경청한 사례를 소개했고, 지난 7~8월 4차례 민관 협의회에서 제기됐던 각계 의견을 일본에 전달하고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을 촉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일본측은 윤석열 대통령의 8·15 광복절 경축사와 8월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밝혔던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강한 인식에 대해 다시 한 번 환영하고 평가한다는 언급을 했다고 정부 당국자는 전했다.

이 당국자는 “일본으로서도 앞으로 한일관계 개선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공감을 하기 때문에 ‘정부 당국간 협력을 해나가길 원한다’는 말을 했다”며 “(일본 측은) 저희들이 전달한 내용에 대해 충분히 진지하게 경청을 했고, 심도 있는 의견을 교환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최근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회복을 위한 ‘그랜드 바겐’(일괄타결) 접근법을 언급한 만큼 그에 대한 논의도 오갔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정부 당국자는 “(그랜드 바겐과 관련한) 구체적인 대통령의 말씀에 대해선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회담에선 강제징용과 관련해 일본 기업의 재산 압류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됐다. 한국 측에서 재산 압류가 되는 것이 현금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피해자들이 굉장히 노령이라는 점을 감안해 긴장감을 갖고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고, 일본측도 이에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재산 압류에 대한 일본 측의 직접적인 반응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호텔에서 취재진을 만나 질문에 답고 있다. 2022.9.20/뉴스1 ⓒ News1

박 장관과 하야시 외무상의 이번 회담은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의 제77차 유엔총회 참석에 앞서 개최된 것이어서 유엔총회 계기에 한일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사전 조율 성격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 박 장관은 회담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즉답을 피한 뒤 “여러가지 좋은 얘기를 많이 했고,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서 양측이 진정성을 갖고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고만 답했다.

박 장관은 ‘분위기는 어땠느냐’, ‘다른 회담은 열리느냐’ 등의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았다.

정부 당국자도 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한 논의 여부에 대해 “확인할 수 없다”, “언급을 하고 싶지 않다” 등 말을 아끼면서도 “정부가 추진하는 것이 외교 당국간 활발한 의사소통도 있지만, 정상간 이른바 ‘셔틀외교’의 추진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그래서 틀림없이 정상간 만남이 이뤄진다면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아주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다만 이번 회담이 정상회담의 사전 조율이 아니냐는 관측에 대해선 “이번 회담이 뭐를 염두에 두고, 조율을 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와 함께 양 장관은 최근 급변하는 국제정세 및 엄중한 한반도 상황 등을 감안해 한일 및 한미일 협력을 지속 강화해 나가자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핵무력 정책을 법제화한 것과 관련해 “한일간, 한미일간 협력과 상호 연대의 중요성에 대해 양국의 의견이 충분히 일치했다”고 설명했다.

박 장관은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일본의 입장을 지지해 달라는 일본측의 요청에 “매우 지지한다”고 언급했다고 정부 당국자는 전했다.

이 당국자는 이번 유엔총회 계기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 개최 가능성과 관련해선 “한미일간 계기가 있을 때마다 공조의 중요성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에 (의견이) 일치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양 장관은 한일관계 개선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국민간 교류와 이해가 바탕이 돼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고, 한일 상호간 무사증 입국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도 방역 등을 감안해야 하지만, 인적 교류가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는 데엔 공감했다고 정부 당국자는 전했다.

(뉴욕·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