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국민 다수는 걱정이 태산이다. 주가가 떨어지고 부동산 가격도 하락하고 있다. 무엇인가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어제보다 오늘 내 자산이 더 줄어든다. 국민은 남의 부인 감옥 보내는 것보다 이 문제들을 더 중요하게 여기지 않겠나. 정치권에서도 관련 담론들이 나와야 한다.”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 9월 27일 ‘주간동아’와 인터뷰에서 “여야가 합의해 민생을 챙겨야 하는데 개딸들이 무서워 못 하고 있다”며 한 말이다. 조 의원은 시대전환의 유일한 원내 인사지만 존재감이 남다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캐스팅보터로 활약하면서다. 패스트트랙 지정을 위해서는 법사위 재적위원(18명) 5분의 3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소속 법사위원이 10명인 만큼 조 의원의 동의 없이는 사실상 패스트랙 지정을 위한 최소 정족수(11명)를 채우기가 불가능하다. 조 의원은 ‘김건희 특검법’에 거듭 반대 의사를 밝히며 패스트트랙 지정을 반대했다.
조 의원은 9월 23일 개딸로 불리는 민주당 열성 지지층과 만남도 추진했다. 김건희 특검법 국면에 접어들면서 정치권 갈등이 가열되자 이를 식히기 위해서다. 조 의원은 “개딸들이 온도를 1도만 낮춰준다면 그만큼 정치 공간이 생긴다”고 말했다. 당일 간담회 현장에는 개딸들이 참석하지 않아 만남은 불발됐지만 조 의원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이날 개딸들에게 “오기가 부담된다면 부르시라. 어디든 가겠다”고 말했다.
“김 여사 의혹 해명됐다고 생각지 않지만…”
불발된 개딸 간담회 현장에서 어떤 말들이 오갔나.
“(개딸이 아닌 다른) 한 방문객이 ‘정치가 약자의 편에 서야 하지 않냐’라고 이야기했다. ‘약자의 편에 서려면, 정말로 (정치인을) 아낀다면 쓴소리도 해줘야 한다’고 답했다. 동의하더라. 지금 정치 팬덤은 연예인 팬덤 같다. 방탄소년단(BTS) 팬덤 아미들이 있는 곳에서 ‘춤의 합이 안 맞는다’는 식으로 말하면 많은 비판을 받지 않겠나. (정치인이) 우상화되고 있다. 팬덤은 비판적 시각을 견지해야 한다. 지지자들 잘못이 아니다. 정치인들의 선동이 문제다.”
찬성 여론이 과반이라며 김건희 특검법 패스트트랙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다.
“김 여사에 관한 의혹이 아직 해명되지 않았다는 국민적 여론을 존중한다. 나 역시 끝났다고 생각지 않는다. 다만 추석 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추진할 일은 아니었다. 민주당의 내로남불이 나오기도 했다. 몇 달 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대한 반대 여론이 65%였다. 당시 누구도 ‘신중하게 추진하자’고 말하지 않았다. ‘역사는 우리 것’이라며 밀어붙였다. 편리할 때는 여론조사를 이야기하고 불리할 때는 입을 싹 닦는다. 여론조사를 근거로 나를 압박하는 대신 내 주장에 대해 반박했으면 한다. ‘법무부와 검찰을 못 믿겠다’면서 ‘민주당이 배타적으로 특검을 임명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믿나.”
그 역시 내로남불로 보일 여지가 있겠다.
“여야 합의 없이 진행된 특검은 없다. 합의의 핵심은 특검을 어떻게 구성하느냐다. 지금처럼 패스트트랙으로 (특검법을) 밀어붙이려 하면 민주당은 역풍을 맞을 것이다.”
여론이 반전될 것이라고 보나.
“역풍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탄핵하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다지만 실패한 대통령을 원하는 국민은 없다. 윤 대통령의 실패가 한국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서도 윤 대통령이 성공해 나라가 잘되길 바라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민주당 의원들, 어쩌면 지도부만 탄핵 등을 얘기하고 있다. 나 역시 문재인 정부가 잘되길 바랐다. 박근혜 정부가 실패하면서 국민이 얼마나 고생했나. 대통령 임기가 5년이니 1년이라도 대통령이 하자는 대로 할 수 있게 해보자. 이후 결과가 좋지 않으면 엄중하게 책임을 묻자.”
“민주당, 너무 호흡이 짧다”
민주당은 김건희 특검법과 민생을 투트랙으로 다룬다는데.
“투트랙보다 양다리에 가깝다. 하나에는 진심이 담겼고 다른 하나는 껍데기다. 원치 않아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 민생이고, 다른 하나가 사정 정국이다. 후자에 민주당의 진심이 담겨 있다. 이재명 의원이 당대표가 될 때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 예상 못 했을까. 민주당은 민생을 위해서라도 ‘1년이라도 휴전하자’고 먼저 제안해야 한다. 민생 때문에 화난 국민을 이길 수 있는 정치인은 없다.”
이재명 대표 관련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휴전의 실효성이 적을 것 같다. 양당이 합의하더라도 여권에 유리하게 사안이 흘러가지 않을까.
“이 같은 상황에서 휴전하면 누가 더 양보했는지 국민은 안다. 짧게는 총선, 길게는 다음 대선에서 보상받을 것이다. 민주당은 너무 호흡이 짧다.”
금태섭 전 의원은 “차라리 야당이 하자는 특검법을 담대히 받는 것이 맞지 않나”라는 입장인데.
“금 전 의원의 생각은 존중하지만 제삼자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배우자를 손절하라는 소리 아닌가. 스스로 그렇게 하겠다면 박수 받을 일이지만 주변 사람이 할 말은 아니다. 옛날 영웅들은 (공익을 위해) 자식을 희생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럴 수는 없다. (윤 대통령이) 영웅이 되길 바라기보다 보통의 사람이 할 수 있는 선에서 기대하자. 정치인에게 배우자의 혼인 전 사건까지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연대책임을 지우는 일일 수 있다. 학력 위조가 문제라지만 기소할 정도의 사안은 아니다. 논문을 위조했다고 특검하면 얼마나 많은 특검이 필요하겠나. 수단이 너무 극단적이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배우자 관련 의혹을 “퉁치자”고 말했는데 야합으로 비칠 수 있다.
“모든 사안을 법대로 처리하면 정치가 필요 없다. 정치는 기존에 없던 방법을 새로 찾아내 길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본인을 건드리는 것보다 배우자를 건드리는 것이 더 자극적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싸우면 열기가 가라앉지 않는다. ‘내가 죽더라도 너는 죽인다’는 식으로 흘러간다. 온도를 낮추기 위해 서로 양보해야 한다. 의혹이 끝내 해결되지 않는다면 다음 정부에 수사를 넘기는 것은 어떨까. MB(이명박) 역시 임기 후 시간이 지나고서 법정에 서지 않았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과 관련해 관계자들이 기소된 상황이다. 기소 기간 만료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 타협이 잘 되지 않을까.
“패거리 정치 때문이다. 한국 정치는 스크럼에 너무 익숙하다. 민주당 의원들 입장에서는 학생운동 당시 스크럼을 짜가며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것이 자랑스러운 경험이다. 당시 ‘경찰과 좀 상의해보겠다’고 말하면 배신자 취급밖에 더 당했겠나. 정치는 상대가 미워도 일단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국 정치에는 타협하는 사람들이 없다. 민주당은 조금이라도 타협하자는 얘기가 나오면 수박이라며 괴롭힌다. 이를 보면서 즐기는 일부 민주당 지도자는 빨리 정치판을 떠나야 한다. 판사들에게 운명을 맡기는 국민의힘은 말할 것도 없다.”
“도장 받으러 오지 마라”
김건희 특검법 이외에도 민주당이 협조를 구해온 일은 없었나.
“최근 민주당이 (7대) 중점 법안을 정했는데 이와 관련해 생각을 물었다. ‘상임위원회(상임위)에서 여야가 합의했으면 (찬성)한다’고 원칙적으로 답했다. 상임위에서 합의했다면 법사위를 통과 못 할 이유가 없다. 상임위를 파행 처리하고 패스트트랙을 걸고 나와서 문제다. 패스트트랙은 건건이 보려고 한다. 세부적으로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
어떤 부분이 걱정되나.
“민주당은 옳다고 생각되면 정신없이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조급한 느낌이 든다. 법을 전광석화로 만들면 잘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기초연금 관련 법안은 재원이 감당되겠나.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역시 취지는 동의하지만 당초 대우조선해양 문제의 핵심이던 정규 노조와 비정규 노조의 이중 구조 문제와는 맥락이 다르다. 향후 2년 동안 법사위 캐스팅보터가 됐는데 반대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맡고 싶다.”
민주당이 법안을 원만하게 통과시킬 수 있는 팁이 있을까.
“법안을 다 만들어놓고 도장 받으러 오지 마라. 처음부터 함께 얘기해보자. 진보 정치, 노동 중심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기업 영역을 적대시하면서 추진할 이유는 없다. 정치는 타협의 역사다. 중대재해처벌법도 너무 급하게 제정해 부작용이 꽤 나타나고 있다. 타다 금지법(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 임대차 3법(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등) 등도 마찬가지다. 급하게 가지 말자. (입법 과정에서) 속도를 조절하는 데 기여하려 한다. 끊임없이 질문하겠다. 단, 1+1이 3이라고 우기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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