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50, 美 레이더·미사일 달고 ‘프리덤 파이터’ 도약 초읽기

  • 주간동아
  • 입력 2022년 10월 2일 10시 15분


미국 정부, 자국 첨단무기 탑재 승인… 우방 공급용 전투기로 낙점한 듯

FA-50 전투기. 사진 제공 · 공군
FA-50 전투기. 사진 제공 · 공군
지구 반대편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이 세계사를 다시 쓰고 있다. 9월 대공세가 성공해 우크라이나가 승기를 잡은 듯하던 전황은 러시아의 동원령 선포로 다시 안갯속으로 흘러가고 있다. ‘부분적 동원’이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러시아의 동원령 선포는 역사 흐름을 바꿀 중대 사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이번 동원령과 사실상 국가 총력전 체제로 전환은 제정 러시아 말기 로마노프 왕조가 보인 실책과 닮았다. 이를 두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물론, 러시아의 역사, 더 나아가 세계사 흐름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이어지고 있다.
‘K-방산’에 쏟아진 ‘민주주의 무기고’ 찬사

지금 세계는 격동의 시대를 맞고 있다. 냉전 붕괴 후 불안정하나마 이어지던 평화 시대가 막을 내리고 진영 대결 시대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세계는 미국, 유럽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러시아, 중국 등 권위주의 진영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당장 중국이 외교적 거리두기에 나서면서 러시아가 기대한 중·러 연대는 어렵게 됐지만, 미국과 유럽은 ‘반(反)러시아’라는 기치 아래 빠르게 세력을 정비하고 있다. 아시아에선 미국, 일본, 호주가 중국을 겨냥한 포위망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한국은 글로벌 정세 재편 과정에서 강대국 그룹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 중국을 겨냥한 인도·태평양 전선에선 반도체라는 전략물자를 생산하는 강국으로 부상했다. 러시아를 향한 유럽 전선에선 최고 가성비를 앞세운 ‘K-방산’ 돌풍을 일으키며 ‘민주주의 무기고(Arsenal of Democracy)’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한국이 자유 진영 우방들 앞에 선보인 무기체계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것이 바로 FA-50 전투기다. 국제 정세에서 대결 구도가 가시화할수록 FA-50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전투기다. 유사한 안보 환경에서 이른바 ‘대박’을 거둔 전투기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미국 F-5다. FA-50의 특성과 개발 후 여정은 냉전이 한창일 당시 F-5와 놀랍도록 닮았다. 미국은 냉전 시절 동맹국의 공군력 현대화라는 글로벌 전략을 위해 F-5를 대량 보급했다. 그 덕에 F-5는 ‘자유의 투사(Freedom Fighter)’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F-5는 노스롭이 자체 개발한 초음속 제트기 모델 N-156에서 출발했다. N-156은 미 공군의 초음속 고등훈련기 사업을 수주해 T-38이라는 이름으로 대량 도입됐다. T-38을 기반으로 제작된 전투기가 바로 F-5다. F-5는 베트남전쟁 때 소량 납품된 것을 빼면, 미 공군이 정식 전투장비로 대량 채용한 적이 없는 기종이다. 그럼에도 미국이 주요 동맹과 우방국에 대량 수출한 이유는 싸고 튼튼한 F-5가 전투기로서 기본기는 충실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과 서독처럼 경제적 여유가 있는 나라는 고가의 대형 전투기 F-4 팬텀 II를 구입해 사용했다. F-4는 대당 240만 달러(약 34억3700만 원)가 넘는 비싼 전투기라 어지간한 부자 나라가 아니면 대량 구입이 어려웠다. 반면 F-5A는 F-4의 4분의 1 수준인 60만 달러에 살 수 있었다. F-5 스펙을 살펴보면, 레이더는 없지만 초음속 비행 능력과 우수한 공중 기동성을 갖춘 데다, 열추적 공대공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었다. 폭탄 탑재 능력도 준수해 지상군을 위한 공중 지원 임무에도 적합했다. 당시 공산권 주력 전투기인 MIG-19나 MIG-21과 충분히 싸울 수 있는 역량이었다.

낮은 생산·정비 비용… F-5, FA-50 닮은꼴
냉전 시대에 활약한 미국 F-5 전투기. 사진 제공 · 공군
냉전 시대에 활약한 미국 F-5 전투기. 사진 제공 · 공군
F-5의 단순한 구조도 큰 장점이었다. 우선 생산과 정비에 모두 큰돈이 들지 않았다. 단순한 구조는 전투 상황에서 전투기의 큰 미덕이기도 하다. 긴급 출격 임무가 하달되면 복잡한 레이더나 기계장치를 예열하는 과정 없이 곧바로 출격 가능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대량 배치된 F-16 전투기는 이륙에 3~5분 이상 시간이 소요된 반면, F-5는 숙련된 팀의 경우 47초 만에 띄울 수 있었다. 정비에 필요한 인력과 비용, 시간도 적어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나라가 운용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미 공군의 제식 채용 기체가 아님에도 F-5 시리즈가 2600대 이상 팔린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한국 FA-50가 직면한 상황은 1960~1970년대 F-5와 상당히 유사하다. 당시 세계 전투기 시장에선 초음속 엔진, 레이더, 미사일 등 첨단기술이 출현하며 기술 혁신이 일어나고 있었다. 정작 전장의 요구는 이런 최첨단기술 발전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다. 야전에선 이른바 하이급(high class) 전투기는 물론, 이를 보조할 싸고 단순한 ‘마구 굴리기 쉬운’ 전투기를 요구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세계 방산 시장은 스텔스(stealth), 센서 융합(sensor fusion), 적응형 사이클 엔진(adaptive cycle engine), 협동교전(cooperative engagement capability) 등 이름도 복잡한 첨단기술이 적용된 5~6세대 전투기 시대를 맞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전장에선 50년 전 F-5처럼 운용하기 쉬운 전투기를 요구한다. 현재 자유민주주의 진영에서 그런 조건에 부합하는 기종은 FA-50뿐이다.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으로 시작해 전투기로 진화한 FA-50 개발 역사는 F-5의 궤적과 비슷하다. F-5의 기반 기체인 T-38은 ‘부자 나라의 훈련기’로 인식될 만큼 높은 성능을 가진 당대 최정상급 고등 훈련기였다. FA-50의 기초가 된 T-50도 동급 훈련기 시장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체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T-50은 전술 입문기 모델인 T/A-50이나 경공격기형 FA-50으로 발전하면서 F-5처럼 ‘대박’을 칠 수 있다는 전망이 꾸준히 나왔다. 정작 그간 한국 공군이 FA-50에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으면서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FA-50이 세계 각국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미 공군의 고등전술훈련기(ATT) 사업이 본격화된 2021년부터다. 그 전까지 전투기로서 그저 그런 성능을 가진 모델로 평가받았지만 ATT 사업을 계기로 본격적인 성능 개량이 이뤄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FA-50 제조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FA-50의 수출 상품성 제고를 위한 성능 개량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추진했다. 이른바 ‘블록 20 개량’ 계획이 알려지자 세계 여러 나라가 FA-50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FA-50 개량 서둘러달라” SOS
전투기에 장착된 AIM-120C7 암람(AMRAAM) 미사일. 사진 제공 · 레이시온
전투기에 장착된 AIM-120C7 암람(AMRAAM) 미사일. 사진 제공 · 레이시온
당초 FA-50 블록 20 개량 계획은 KF-21 개발 과정에서 완성한 한국형 능동형위상배열레이더(AESA) 축소판을 탑재하고 전자장비, 무장 능력을 개선하는 게 핵심이었다. 그런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국제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자 각국은 FA-50 블록 20 개량 일정을 앞당겨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러한 요구에 한국과 미국이 내놓은 해답이 바로 FA-50에 미국산 AESA를 장착하는 것이었다.

노스롭 그루먼의 AN/APG-83(왼쪽)과 레이시온의 팬텀 스트라이크 레이더. 사진 제공 · 노스롭 그루먼, 사진 제공 · 레이시온
노스롭 그루먼의 AN/APG-83(왼쪽)과 레이시온의 팬텀 스트라이크 레이더. 사진 제공 · 노스롭 그루먼, 사진 제공 · 레이시온
미국 정부는 9월 FA-50에 자국산 AESA 탑재와 중단거리공대공 무장 통합을 승인했다. 레이더 기종은 노스롭 그루먼의 AN/APG-83 축소형 모델과 레이시온의 팬텀 스트라이크가 경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사일의 경우 AIM-120C7 암람(AMRAAM)이 유력하다고 한다. FA-50은 이제 공대공·공대지 능력 면에서 어느 경쟁 모델도 따라올 수 없는 4.5세대 경량 전투기로 거듭나게 됐다. 미국이 수출을 승인한 AN/APG-83은 F-16V ‘바이퍼’에 탑재되는 레이더다. FA-50은 F-16보다 레이돔(레이더 안테나 덮개)이 작아서 레이더 모듈 수를 줄인 축소형이 탑재될 전망이다. 그럼에도 AN/APG-83은 현용 AESA 가운데 최정상급 성능을 갖췄기에 FA-50의 작전 능력은 비약적으로 향상될 것이다. 팬텀 스트라이크 레이더는 아직 양산 실적이 없어 구체적 성능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함께 수출이 승인된 AIM-120C7 미사일의 사거리에 맞춰 100㎞ 이상 거리에서 여러 표적을 동시에 추적·공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FA-50은 이미 미국산 공대지 표적 탐지·추적·조준 장비인 ‘스나이퍼 타기팅 포드’가 탑재돼 원거리 지상 목표물을 정밀 타격할 수 있다. 폴란드 수출 모델엔 공중급유시스템이 더해져 작전 반경과 무장 탑재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될 예정이다. 여기에 미국산 AESA까지 갖춘 FA-50 블록 20은 F-16C/D 블록 50/52급에 필적하는 강력한 경전투기가 될 가능성마저 있다.
저강도 임무용 4.5세대 전투기 각광
미국이 민감한 군사기술이 담긴 자국산 레이더를 외국 전투기에 통합하는 것을 승인했다. 이는 FA-50을 ‘제2의 프리덤 파이터’로 육성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경제 사정이 넉넉지 못한 주요 우방국에 준수한 성능의 4.5세대 전투기를 대량 공급하겠다는 움직임이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폴란드 외에도 슬로바키아, 아일랜드가 FA-50을 도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기존에 F-35를 도입한 일부 국가도 저강도 임무에 투입할 염가형 4.5세대 전투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FA-50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과연 FA-50은 21세기 프리덤 파이터로 비상(飛上)할 수 있을 것인가. 민주주의 무기고로서 대한민국 위상을 더욱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될 FA-50의 미래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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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주간동아 1358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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