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한반도로 재전개한 로널드레이건(CVN-76) 미국 핵추진항모강습단의 한미일 연합훈련 참가일(6일)에 맞춰 폭격기와 전투기를 동원한 무력시위와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발사 등 강대강 대결 의도를 노골화하고 있다. 항모와 같은 미 확장억제 전력도 막지 못할 정도로 북한의 핵무력이 커졌다는 위협이자 향후 한미 대응에 비례해 도발 강도를 높여갈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 대남 시위성 항공기 기동, 미 항모 겨냥 미사일까지
이날 오후 2시경 우리 군 레이더에 북한 군용기 12대가 빠르게 남하하는 항적이 포착됐다. 북한의 폭격기 4대와 전투기 8대는 편대비행을 하면서 거침없이 우리 군이 자체 설정한 특별감시선을 넘어 황해도 곡산과 황주 일대까지 남하했다.
대남 위협 목적의 시위성 비행으로 판단한 군은 즉각 대응에 나섰다. 공중 초계 전력(F-15K 전투기)과 긴급 출격한 후속 전력 등 30여대의 전투기가 전방지역으로 속속 투입됐다. 같은 시각 북한 군용기들은 곡산과 황주 일대를 1시간 가량 비행하면서 특정지역에서 공대지 사격을 한 뒤 돌아간 것으로 군은 파악했다.
10대 이상의 북한 폭격기·전투기가 특별감시선을 넘어와 시위성 비행과 사격훈련을 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군 관계자는 “북한의 이례적인 시위성 기동에 맞서 압도적으로 대응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공세적 비행과 사격훈련은 한미 공군의 공대지 폭격훈련과 지대지 미사일 무력시위에 맞대응하는 차원으로 분석된다.
앞서 이날 오전 6시경 북한은 로널드레이건 항모가 참가한 한미일 미사일 방어훈련이 진행된 동해상으로 SRBM 2발도 쐈다. 2발의 비행거리는 각각 350여km, 800여km인 것으로 탐지됐다. 800여km를 비행한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로 추정되는 1발은 발사 지점(평양 삼석) 기준으로 미 항모강습단이 참가한 한미일 미사일 방어훈련이 진행된 동해상 대부분이 타격권에 포함된다.
군 관계자는 “미 전략자산의 잇단 전개를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핵무력이 증강됐음을 한미에 각인시키려는 무력시위”라고 말했다. 다량의 핵탄두와 한국과 일본, 괌은 물론이고 미 본토까지 때릴 수 있는 투발수단(미사일)도 갖췄다고 판단한 북한이 강대강 대결을 위한 무력공세에 본격 나섰다는 분석이다.
대통령실은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개최해 미사일 도발 상황을 보고받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특히 북한 미사일 도발을 논의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가 진행되는 중에 도발한 점에 주목하면서 국제사회에 대한 묵과할 수 없는 도전이라고 강력 규탄했다.
● 한미일 대 북중러 갈등으로 대북 규탄 또 무산
북한 미사일 도발을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유엔 안보리 회의는 한미일과 북중러의 갈등으로 무기력하게 끝났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북한은 안보리 두 상임이사국(러시아 중국)의 전면적 보호(Blanket Protection) 속에 전례 없는 도발을 이어가고 있다. 두 상임이사국이 김정은의 (미사일 도발) 행동을 가능케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북한 미사일 당사국으로 안보리에 초청받은 황준국 주유엔 한국 대사는 “안보리의 침묵에 대해 북한은 빈번한 미사일 발사와 핵 법제화로 답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 탓”이라고 주장했다. 겅솽 주유엔 중국 부대사는 “미국이 아태지역에서 군사경쟁을 강화하고 있는데 한반도 긴장 고조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미국을 비난했다. 안나 옙스티그니바 러시아 부대사도 “평양의 미사일 발사는 미국의 근시안적이고 논란의 여지가 높은 군사 행동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안보리 공개회의 이후 비공개 회의에서 북한의 안보리 결의 위반을 규탄하는 성명을 내자고 미국 측이 제안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칠레를 방문 중인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도발의) 길을 계속 간다면 비판이 확산되고, 고립이 심화되며 대응 조치가 강화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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