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조사한 감사원이 5개 기관에 소속된 20명에 대한 수사 요청 방침을 밝히면서, 이 사건 당시 문재인 정부 안보 부서의 업무 처리 과정을 상세히 공개했다. 4~5개월 전부터 관련 수사를 이어오고 있는 검찰도 이런 내용을 토대로 주요 피고발인들이 ‘월북몰이’를 했다고 의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감사원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한 56일간의 감사 결과를 전날 공개하고 5개 기관에 소속된 20명에 대해 이날 검찰 수사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감사원이 공개한 조사 결과에는 피살 사건이 일어난 2020년 9월22일 이후 관련 기관의 초동대응과 사건 발표 등 업무처리 과정이 상세히 담겼다. 감사원은 서해 사건을 점검한 결과, 당시 문재인 정부 국가위기관리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봤다. 아울러 숨진 고(故) 이대준씨가 월북했다고 결론을 정하고 발표하는 등 이른바 ‘월북 몰이’를 했다는 취지의 결론도 내놨다.
이씨는 2020년 9월22일 북한 해역에서 발견됐는데, 감사원은 당시 국가안보실이 관련 사실을 전달받고도 유관 부서인 통일부를 제외한 채 해경 등에만 상황을 전파했다고 했다. 대응을 위한 ‘최초 상황평가회의’도 실시되지 않았고, 국방부에서는 군사대비태세 강화나 인질 구출을 위한 군사작전 검토도 없었다고 했다.
안보실은 청와대 내부보고망을 통해 대통령에 상황보고서를 서면 보고했지만, 상황이 종료되기 전인 오후 7시30분에 안보실장 등 주요 간부들은 모두 퇴근했다. 감사원은 이를 ‘국가위기관리 컨트롤타워’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했다.
통일부도 이씨가 해상 부유물을 잡고 표류 중이라는 상황을 파악했음에도 송환에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다가 국정원으로부터 추가 상황파악이 어렵다는 연락을 받고 상황을 종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당시 담당 국장은 통일부 장관의 저녁만찬 일정을 알고 관련 상황을 보고하지 않고 퇴근했다고 전했다. 사건 다음 날인 23일 안보실은 이씨와 관련해 확인된 추가 첩보를 대통령에게 보고하기로 하고 회의참석기관에 ‘보안을 유지하라’는 지침을 하달한 뒤 대통령에 보고할 안보보고서에는 이씨의 피살·소각사실을 제외했다.
감사원은 당시 정부가 월북을 단정할 수 없는 월북 의사 표명 첩보와 부정확한 사실을 근거로 이씨의 ‘자진 월북’을 속단했다고 봤다.
사건 초기 국방부와 국정원은 조류방향과 어선 조업시기 등을 이유로 이씨의 월북 가능성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국방부 장관을 통해 이씨의 월북 의사 표명 첩보가 보고되자 안보실은 국방부에 ‘자진 월북’ 내용을 기초로 종합분석 결과를 보고하도록 한 것으로 조사됐다. 안보실은 이 결과를 국방부가 그대로 언론에 발표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국방부는 ▲타 승선원과 달리 혼자 구명조끼 착용 ▲CCTV 사각지역에서 슬리퍼 발견 ▲발견된 당시 소형 부유물에 의지 ▲월북의사를 표명 등 4가지 월북 판단 근거를 들어 종합분석 보고서를 작성했지만, 감사원은 이 중 하나도 명확히 확인된 것이 없다는 결과를 내놨다.
감사원은 ‘자진 월북’ 결론과 맞지 않는 사실을 분석에서 의도적으로 제외한 정황도 발견됐다고 했다. 감사원은 사건 직후 열린 관계장관회의가 끝난 9월23일 새벽, 밈스(MIMS, 군사정보체계)에 탑재된 군 첩보 관련 보고서 60건을 삭제하라는 장관 지시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 부분은 현재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검사 이희동)에서 수사 중이기도 하다.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이 이 사건 피고발인으로 검찰 수사 대상에 올라있다. 서 전 장관이 전날 소환 조사를 받으면서, 장관급 첫 피고발인 조사도 진행된 상태다.
검찰 수사가 지난 6~7월부터 시작됐고, 주요 실무자 등에 대한 소환 조사가 이어져 온 만큼 수사팀은 감사원 발표 내용에 대해 이미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를 근거로 검찰은 주요 피고발인들에게 직권남용, 직무유기, 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가 있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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