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시한 내에 심사를 마쳐서 예산을 집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주시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 윤석열 대통령은 “어제 639조 원의 정부예산안을 제출하며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했다”며 이 같이 말했다.
윤 대통령은 “국민 혈세를 어떻게 쓸 것인지를 국회와 국민, 국내외 시장에 알렸다”며 “지금 건전재정 기조로 금융안정을 꾀한다는 정부의 확고한 정책 방향을 국내외 시장에 알림으로써 국제 신인도를 확고하게 구축한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윤 대통령은 법정 시한인 12월 2일까지 2023년 예산안을 확정해달라고 여야에 협조를 요청했지만 현실적으로 법정 시한 내 처리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당장 169석의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대폭 수정을 예고한 상태다. 여소야대 구도에서 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예산안 처리가 불가능하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재정 건전성을 들먹이며 시급한 민생예산은 칼질했다”며 “약자복지는 어불성설이자 약자무시이고 약자약탈일 뿐”이라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60조 원에 달하는 초부자감세와 1조 원이 넘는 대통령실 이전 예산을 반드시 막아서 제자리로 돌려놓겠다”며 “노인과 청년 일자리 창출 예산, 중소상공인과 지역 경제 회생 예산, 공공주택 확충 예산 등 국민 삶을 지키는 민생 우선 예산으로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성환 정책위의장도 전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민생예산이 삭감된 것만 대략 10조 원 정도 된다”고 밝혔다.
반면 국민의힘 성일종 정책위의장은 “국가 재정이 튼튼하지 못하면 위기를 대비할 수 없다”며 건전재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성 의장은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국가 미래와 다음 세대를 위해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49.8%로 낮추며 긴축하지만 쓸 곳에는 쓰는 예산”이라며 “노인, 장애인, 아동, 여성과 약자 지원에 대한 격차해소에 약 11%가 증가했다”고 말했다.
성 의장은 “반도체 등 첨단산업 R&D(연구개발) 예산도 3% 정도 증가시켰다. 불용예산을 줄이거나 무분별한 포퓰리즘 예산을 줄여서 생산적 일자리와 실질적 도움이 되는 부분을 늘렸다”며 “(민주당이) 수치 한두 개를 뽑아 전체인 것처럼 공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특히 이번 예산안 심사는 검찰 수사 시기와 맞물리면서 정국은 ‘시계제로’의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민주당은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 내 민주연구원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한 것과 관련해 사실상 전면전을 선포했고, 국민의힘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제안한 대장동 특검에 대해 의도적인 시간 끌기라며 거부하고 있다.
또한 민주당은 ‘대장동 특검’ 강행 의지까지 내비치고 있어 민주당 이 대표의 최측근인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에 대한 불법 대선자금 의혹 등과 관련한 검찰의 수사 상황에 따라 여야의 극한 대치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일단 여야는 다음달 4일 공청회를 시작으로 예산안 심사에 돌입하기로 합의했다. 이어 다음달 7일과 8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종합정책질의를 진행하고, 비경제부처와 경제부처 심사를 진행한 뒤 다음달 30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의결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선 벌써부터 준예산 편성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내년 예산안이 12월 31일까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할 경우 전년과 동일한 규모의 임시 예산이 편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준예산이 편성될 경우 윤석열 정부가 편성한 신규 예산 등은 사실상 집행할 수 없게 될 것으로 보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