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10월 31일 5년 만에 대규모 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스톰’을 시작하자 북한군 서열 1위 박정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입을 통해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북한이 11월 2~3일 대규모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북한은 11월 2일 오전 6시 41분 평안북도 피현군과 정주시에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을 시작으로, 8시 51분 강원 원산에서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3발을 쐈다. 9시 12분엔 평안남도 온천군과 황해남도 과일군, 함경남도 락원군, 신포시, 정평군에서 단거리탄도미사일과 중거리지대공미사일을 섞어 발사했다. 이어 오후 4시 38분 남포시와 과일군, 신포시와 정평군에서 지대공미사일을 추가로 쐈다. 이날 하루 발사된 미사일 수만 25발로, 역대 최대 규모다. 이튿날 3일에는 동해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을 발사하는 등 도발을 이어갔다.
北 도발, 전구 규모 대규모 종합훈련 성격
이번 도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 위협의 변화다. 지금까지 북한이 이처럼 다양한 미사일을 대량으로 동시 투발하는 형태로 도발한 전례는 없다. 과거에는 미사일을 여러 발 쏴도 특정 지역에 발사 플랫폼을 모아놓고 사격하는 방식이었다. 이번 도발은 동해안과 서해안 전역에서 공격용·방어용 미사일을 모두 동원해 이뤄졌다. 단순한 실험이나 개별 제대의 소규모 훈련이 아닌, 전구(戰區) 규모의 대규모 종합훈련 성격이다.
북한의 이번 훈련을 분석하기에 앞서 지난해 6월 11일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 의제였던 전략군 개편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 당시 북한은 독립 군종인 전략군을 동해사령부와 서해사령부로 나누고, 각 사령부 관할 구역 내 육해공군 미사일 전력을 전략군 동해·서해사령부에 이관하는 편제 개혁을 천명했다.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동해사령부는 공격 능력에, 서해사령부는 방어 능력에 초점을 두고 편제 개편·작전 계획 수립을 추진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김 위원장은 전략군 개편을 미·중 패권 경쟁 구도에서 북한의 전략적 지위를 제고하기 위한 조치로 설명했다. 또한 미국의 비핵화 압박 목적이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중국을 압박하고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미국이 중국을 공격할 경우 서해를 담당하는 전략군 지휘부가 이를 방어하고 대응 타격을 수행하라”며 구체적인 작전 계획 지침까지 하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미사일 도발이 동해안·서해안 축선 일대에서 이뤄졌고, 지대지탄도미사일과 지대공미사일 발사가 함께 이루어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 군의 북한 미사일 대응 전략은 한국국방연구원(KIDA)과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분석한 ‘미사일 벨트’ 개념에 바탕을 두고 수립됐다. 미사일 벨트 개념은 북한이 미사일 사거리에 따라 전술(tactical)·작전(operational)·전략 벨트(strategic belt)를 구분해 배치, 운용하고 있다는 가설로 2010년대 중반 등장하기 시작했다. 각 싱크탱크와 한국군 당국은 전술 벨트가 황해도와 강원도 일대 최전방 지역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해당 지역에 사거리 120㎞의 KN-02와 300~500㎞ 이내인 화성 5·6호 미사일이 6개소 안팎의 미사일 기지에 배치돼 운용되는 것으로 파악했다. 작전 벨트는 서쪽 평안남도 양덕군에서 동쪽 강원 문천시를 연결하는 선상에 화성 7호(노동)가 최소 5개소 이상 기지에 배치돼 운용되고 있다고 분석됐다. 전략 벨트의 경우 함경남도 검덕산과 자강도 중강 지역을 중심으로 한 북부 지역에 중거리탄도미사일 이상급 전략자산이 최소 15개소 이상 거점에서 운용되는 것으로 봤다.
‘3가지 벨트’ 벗어난 미사일 위협
한국군은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그간 큰 판단 착오에 빠졌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이동식 미사일 발사 플랫폼 수는 100~200기 안팎으로 평가됐고, 모든 미사일은 앞서 제시된 3가지 벨트에 따라 정해진 기지와 진지 일대에서만 발사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북한 미사일은 대부분 액체연료 방식이라 발사에 앞서 기립(erection) 후 연료·산화제 주입에 40분 이상 시간이 필요하다고 단정 지었다. 그 틈을 이용해 탐지→확인→추적→조준→타격→평가로 이어지는 킬체인 순환체계를 구현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번 도발을 통해 북한은 자신들의 미사일 운용 전략이 완전히 바뀌었고, 한국군의 킬체인 구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 이유를 찬찬히 살펴보자. 우선 미사일이 바뀌었다. 과거 북한의 남한 공격용 미사일 전력은 기껏해야 화성 5호(스커드 B)와 6호(스커드 C), 7호(노동) 정도였다. 그런데 이러한 전력은 5년 사이 10종 이상으로 늘어났다. 과거 전술탄도미사일 수준의 사거리를 가진 대구경 방사포 전력은 물론, 러시아의 이스칸데르(Iskander)나 한국의 에이타킴스(ATACMS), 전술지대지유도무기(KTSSM)를 모방한 듯한 전술탄도미사일 등 새로운 고체연료 방식의 단거리 발사체가 우후죽순 등장했다. 이들은 모두 고체연료 방식이라서 발사 전 기립과 연료·산화제 주입 절차가 필요 없다. 이동 중 사격 명령을 받고 정차하면 미사일을 모두 발사하고 현장을 이탈하기까지 길어야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북한의 이동식 발사차량(TEL)은 한국군 킬체인 순환체계 6단계 중 탐지·확인 단계가 끝나기도 전 탑재된 미사일을 모두 쏘고 발사 진지를 이탈해 몸을 숨길 수 있다.
TEL도 크게 늘어났다. 한미 정보당국이 북한 TEL 수를 100~200여 기로 평가한 이유는 북한이 대형미사일 탑재를 위한 대형트럭을 자체 생산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은 거의 모든 트럭을 수입에 의존했기에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북한군 TEL은 스커드미사일 발사용으로 수입한 옛 소련제 MAZ-547계열 정도에 불과했다. 2010년 무렵 중국에서 WS-51200 차량 6대를 밀수한 뒤 이를 KN-08, 화성-14형 발사용으로 개조해 돌려 쓸 정도였다.
北 역동적 미사일 운용 능력 과시
그런데 최근 5년 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다양한 유형의 대형트럭과 트레일러가 대량으로 식별되고 있다. 전차나 장갑차 차체를 개조한 궤도형 TEL도 대량 제작되고 있는 것이 탐지되는 등 북한 TEL 수는 추산이 불가할 정도로 급증했다. 북한의 TEL 급증에는 중국의 배후 지원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 10월 말 공개된 ‘중국해관총서’ 자료를 보면 9월 북·중 무역액은 1억427만 달러(약 1490억 원)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9월 한 달 동안 북한은 11만9565개에 달하는 대형차량용 타이어 1302만 달러(약 186억 원)어치를 수입했다. 이처럼 상당량의 타이어가 북한에 반입됐다는 것은 그 정도로 많은 대형차량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북한은 TEL 전용(轉用)이 가능한 대형차량을 여럿 확보한 데 이어, 최근 열차까지 TEL로 개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원점을 감시·추적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졌다.
TEL 급증과 함께 이제 미사일 기지가 발사 진지라는 개념도 사라졌다. 최근 몇 년간 북한의 미사일 도발 사례를 분석해보면 갱도 인근 발사 진지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사례는 거의 사라졌다. 대부분 일반 농지나 평야, 도로와 바닷가 등에서 발사됐다. 이번 11월 2일 미사일 도발에서 북한은 과거처럼 정해진 미사일 기지에서 정적(靜的)으로 미사일 전력을 운용하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역동적으로 미사일을 운용하고 있음을 과시했다. 이번 도발에서 북한은 유사시 한국군이 예측하지 못한 장소에서 예측하지 못한 물량의 미사일을 동원해 전후방 각지의 목표, 특히 공군기지를 집중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자랑했다. 더불어 이런 공격에서 생존한 한미 연합공중자산이 반격을 가하면 이를 격퇴할 수 있는 능력도 과시한 것으로 보인다.
한미 연합방위 넘어선 ‘융합방위’ 필요
지난 5년간 우리가 스스로의 손과 발을 묶고 평화를 외치고 있을 때 북한은 미사일 전력의 세대교체를 이루고 유례없는 장거리·다목표 동시 타격 능력도 구축했다. 그 첫째 목표는 남북 군사 경쟁에서 우위를 점해 한반도 문제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지난해 당 중앙군사위 회의 때 김 위원장이 천명한 바와 같이 유사시 중국에 위협이 되는 동북아 지역 내 미군 자산을 타격·제압하는 역할을 자처한 포석도 있다. 중국도 이에 화답하듯이 국제 제재를 위반하면서까지 북한에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우리를 겨냥한 북한의 위협이 ‘퀀텀 점프’ 수준으로 확대·강화되고, 그 위협 수준도 ‘한반도 분쟁 레벨’에서 ‘글로벌 패권 경쟁 레벨’로 격상됐다. 우리도 이에 맞춘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결심하고 TEL이 멈춰 기립을 시작했을 때 탐지·대응하는 것은 이제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졌다. 북한의 대남 타격 수단에 대한 제압이 불가능해졌기에 이제 남은 방법은 그 수단을 움직이는 ‘의지’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 의지의 주체는 물론 김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수뇌부다. 북한이 자신들의 군사력을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장기판의 기물(棋物)로 편입한 것처럼 대한민국도 미국과 ‘연합방위’ 체제를 격상해야 한다. 미군과 한 몸처럼 움직이는 ‘융합방위’ 체제로 말이다. 한국군이 충분한 수량과 성능의 정찰기·위성 등 감시정찰자산을 갖춰 북한 지도부의 의지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독자 정보망을 구축하는 데 얼마나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갈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아예 우리 스스로 장기판에 올라 미국으로 하여금 한국의 안전과 이익을 지키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미국이 북한의 단거리탄도미사일 위협을 자국의 전략적 이익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하게 하는 데 외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미국의 한반도 상시 배치 감시정찰·정보자산을 증강해 북한 지도부가 위험한 도발 의지를 드러내는 순간 예방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한다. 물론 국가 간 관계는 철저한 ‘기브 앤드 테이크’다. 한국 역시 미국의 동맹국이자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일원으로서 파트너 이익에 기여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필요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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