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열리고 있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3(한중일)‘ 정상회의에서 북핵 이슈가 단연 부각되고 있습니다. 13일 한일-한미-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부터 북핵 위협의 당사국인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과 중국, 일본 등 관련국 고위 당국자들이 북핵 이슈를 공개적으로 언급했습니다.
가장 강력한 발언은 미국 측에서 나왔습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1일 “시진핑 주석에게 북한이 한미일 뿐만 아니라 지역 전체의 평화와 안정에 위협이 된다는 견해를 전할 것”이라며 “북한이 도발을 계속한다면 이는 역내에서 미국의 안보·군사 주둔(military and security presence) 강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얘기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발언이 ‘주한미군 증강’을 시사한 것으로 12일 알려지면서 국제사회의 관심이 커졌습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미군 증강이 아닐 것이고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와 관련해 보다 적극적인 조치를 얘기한 것이 아닐까 생각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도 12일 현지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북한의 도발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중국이 건설적인 역할을 해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대통령실은 전했습니다. 북한을 두둔하는 중국도 최근 상황이 엄중하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입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탄도미사일 문제와 관련해 ‘CVID’ 원칙을 강조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습니다. 북핵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방식으로 폐기하도록 국제사회의 협력을 호소했다는 겁니다.
관련국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에 대해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지만 이보다 더 시급하게 ‘현존하는 위협’으로 떠오른 것은 ‘한국과 일본 등을 상대로 한 전술핵무기 공격능력’이라는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9월 이후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대응 훈련을 핑계로 전술핵을 탑재할 수 있는 단거리 미사일 공격 능력은 물론 이와 결합된 공군 전투기 공격능력, 남북한 접경지역에서의 방사포 등 재래식 무기 공격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과시했습니다.
한미연합공중훈련인 ‘비질런트 스톰’에 대응해 실시한 11월 3일 훈련에서는 “적의 작전지휘체계를 마비시키는 특수기능전투부의 동작믿음성 검증을 위한 중요한 탄도미싸일시험발사를 진행했다”고 노동신문을 통해 공개했습니다. 한미 군 당국은 화성-17형 장거리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 실패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화성-15형 탄도미사일을 활용한 전자기충격파(EMP)탄 시험발사를 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하루 전인 2일 동해상으로 단거리미사일을 발사해 동해 해상분계선(NLL)을 넘긴 것입니다. 북한은 노동신문을 통해 이를 부인하는 취지로 주장했습니다. 우리 군이 동해에서 인양한 미사일의 잔해가 당초 예상했던 단거리탄도미사일이 아닌 러시아제 SA-5 지대공 미사일로 드러나면서 일각에서는 북한의 오발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만, 전문가들은 북한이 수명이 다된 지대공 미사일을 활용해 대남 공격에 활용하겠다는 의도로 풀이했습니다. 남북 군사경계의 약한 지점인 NLL을 건드린 겁니다.
북한의 NLL 인근 무력충돌 시도는 이미 서해에서 있었습니다. 9월 24일 새벽 3시 42분경 북한 상선 한 척이 서해 백령도 서북방 약 27km에서 NLL 이남으로 월선했습니다. 우리 군이 이에 경고사격을 한 것에 대해 북한 군도 NLL 이북 완충구역으로 포를 쏘며 대응했습니다. 새벽 3시는 우리 해군이 근무 교대를 하는 취약시간대입니다. 사실상 의도적으로 상선을 월선시켜 9·19 남북군사합의를 노골적으로 위반했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이 사건 이후 전문가들은 북한이 서해에서 NLL을 무력화하는 일련을 도발을 할 것을 우려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습니다. 9일 뒤인 11월 2일 동해 NLL로 단거리미사일을 넘긴 것이 의도적인 도발이라면 그야말로 ‘성서격동(聲西擊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미 군 당국과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것은 전술핵 공격능력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북한이 이를 토대로 6·25 전쟁 이후 지켜져 온 한반도 군사경계를 허물겠다는 야욕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의 ‘고립압살 정책’에 대응해 자신들의 자주권을 지킨다는 방어적 목적이라며 핵과 미사일을 개발했지만, 이제는 이를 공격적으로 활용해 접경지역의 군사경제를 허무는 전혀 다른 목표를 세우는 게 아니냐는 겁니다.
국제정치학에서는 이를 ‘현상유지’와 ‘현상타파’로 엄격하게 구분합니다. 미국 국제정치학의 태두 한스 J. 모겐소 시카고대 교수는 ‘국가간의 정치’에서 이렇게 갈파했습니다.
“기존의 권력을 유지할 뿐 자국에게 유리한 권력분포상의 변화를 바라지 않는 정책적 입장을 취하는 나라는 현상유지정책(a policy of the status quo)을 택하고 있다. 기존의 권력관계를 뒤집어 현재의 상태보다 더 큰 권력을 얻으려는 정책을 추구하는 나라는, 즉 권력관계에서 유리한 변화를 추구하는 외교정책을 택한 나라는 제국주의 정책(a policy of imperialism)‘을 따른다.“ 한스 모겐소(이호재 역), 『현대국제정치론』(박영사, 1987), 53쪽.
주로 강대국 사이의 정치를 논한 모겐소 교수에게 현상유지의 반대말은 제국주의 정책이었지만, 지금의 한반도 상황에서 북한이 추구하는 정책은 ‘현상타파’로 일반화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지금도 6·25전쟁을 자신들이 저지른 것이 아니라고 강변하면서 전쟁 이후 정전상태에서 지켜진 동서해 NLL 등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대한 전술핵 공격능력을 가지고 이를 법제화했다고까지 주장하는 북한이 이를 활용해 영토변경에 나서는 상황은 지금까지의 북한 문제와는 전혀 다른 상황을 의미합니다.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이어지고 있는 주변국들의 심각한 논의는 바로 이런 상황변화를 반영한 것일 수 있습니다.
최근 북한 도발에 대한 심층분석은 동아일보 유튜브 [중립기어 라이브] 방송(https://youtu.be/UxIihSQV9Ho)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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