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의 자유, 평화, 번영을 추구하는 데 있어 중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윤석열 대통령)
“한중 양국은 이사 갈 수 없는 가까운 이웃이고, 떼려야 뗄 수 없는 협력 파트너다.”(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한중 정상이 15일(현지 시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전격 머리를 맞댔다. 2019년 12월 문재인 전 대통령과 시 주석 간 회담 이후 2년 11개월 만이다. 윤 대통령은 북한의 잇단 도발과 7차 핵실험 준비 속에 ‘중국의 중재 역할’이 긴요해진 상황이다. 시 주석으로선 대(對)중국 견제 전략을 펴는 미국에 한층 가까워진 한국을 ‘광범위한 이익 교집합’을 앞세워 멈춰 세워야 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동상이몽 속에 전격적으로 만난 두 정상은 주요 현안을 놓고 명확한 견해차를 드러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 북핵, 공급망 재편 등에서 시각차 뚜렷
한중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북한의 고강도 도발이었다. 윤 대통령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인접국으로서 중국이 더욱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7차 핵실험을 비롯한 벼랑 끝 도발을 포기하도록 시 주석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설득해 달라는 뜻을 에둘러 전한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이에 대해 “한국이 남북관계를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가기를 희망한다”며 거리를 뒀다. 윤 대통령의 비핵화 로드맵 ‘담대한 구상’에 대해서도 “북한의 의향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중은 지역 평화 수호와 세계 번영 촉진에서 중요한 책임을 지고 있다”며 “광범한 이익 교집합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대만 남중국해 등 미중이 갈등하는 안보 분야에서도 한중이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정부는 회담 결과를 발표하며 북핵 문제를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그 대신 공급망 협력을 비롯한 한미일의 대중 공조 전선을 직격했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시 주석은 윤 대통령에게 “경제협력을 정치화하고 범(汎)안보화하는 것을 반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중) 양측은 함께 국제 자유무역 체계를 수호하고, 글로벌 산업 공급망의 안전과 안정, 원활한 흐름을 보장해야 한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에게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미국의 정책에 동참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한미일 3국 정상은 13일 처음 중국을 겨냥해 발표한 포괄적 성명에서 ‘3국 경제안보대화’ 신설은 물론이고 “경제적 강압에 대항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시 주석이 윤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한미일 공동성명을 비판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 전격 성사된 한중 회담… 현안은 산적
한중 정상회담은 이날 오전 전격적으로 성사됐다. 당초 순방 전까지만 해도 한중 정상이 ‘스탠딩(standing·선 채로 하는) 환담’이나 약식회담 형태로 만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앞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순방 전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시 주석과는 자연스럽게 회의장에서 만날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국이 정상회담에 전격 나선 것은 양측의 이해가 맞물렸기 때문이다. 3연임뿐만 아니라 1인 장기 집권의 길을 연 시 주석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한미일 3국 공조가 강화되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다. 25분이란 짧은 시간이었지만 윤 대통령과 직접 대면 회담에 나선 것도 한국을 미국의 대중 견제 전선에서 이탈시키려는 의도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윤석열 정부도 본격적인 한중 외교에 시동을 걸고 있다.
이날 두 정상은 한중 간 고위급 대화 활성화에 공감대를 나타냈다. 윤 대통령이 먼저 “팬데믹과 글로벌 경기 침체, 기후변화 같은 복합적 도전을 함께 극복하기 위해 한중 양국 간 고위급 대화를 정례적으로 활발히 추진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시 주석은 “한중 양국 간 1.5트랙 대화 체제도 구축하자”면서 “정치적 신뢰를 쌓아 나가자”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회담에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2단계 협상의 조속한 마무리와 양국 국민 간 반중·반한 정서를 극복하기 위한 민간 교류 활성화를 제안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