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첫 예산안을 심사하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등조정소위(예산소위)가 17일 시작되면서 여야는 일제히 예산 전쟁의 기선 잡기 경쟁에 돌입했다. 국민의힘은 최대한 정부안을 유지해 12월 2일까지인 법정 처리 시한 내에 예산안을 처리하겠다는 목표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실 이전 예산 등을 대폭 줄여 그 돈을 민생 예산에 쓰겠다는 계획이다.
이날 예산소위는 첫 회의를 열고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소관 부처 예산 심사에 착수했다. 여야 의원들은 악수를 나누며 회의를 시작했지만 곧바로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개발사업 예산을 두고 충돌했다.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SMR 개발 예산을 두고 국민의힘은 “원안 유지”를 주장했지만 민주당은 “관련 예산 31억 원을 전액 삭감해야 한다”고 맞섰고, 결국 심사를 보류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정부 핵심 사업 예산을 지키려는 여당과 이를 삭감하려는 민주당 간 격돌의 예고편”이라는 말이 나왔다.
국민의힘은 정부 예산안 원안을 사수하면서 연말정산 장바구니 소득공제 7667억 원 등 민생을 위한 예산을 반영하겠다는 계획이다. 반면 민주당은 대통령실 이전 비용과 행정안전부 경찰국 등 권력기관 예산을 삭감하는 대신 지역화폐 등 ‘이재명표’ 민생 예산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이날 행정안전위원회는 경찰국 기본경비 예산을 정부안 대비 10% 감액하고, 지역화폐 예산을 5000억 원 증액한 예산안을 처리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예산결산기금소위원회에서 단독으로 전액 삭감했던 경찰국 예산을 일부 되살리는 성과를, 민주당은 정부가 한 푼도 편성하지 않았던 지역화폐 예산을 증액하는 목표를 각각 얻어낸 것.
정치권에서는 이런 여야 협상 과정에서 최대 8조 원가량의 예산을 손보는 쟁탈전이 벌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국회는 지난해 2022년도 예산안 심사에서 5조6000억 원을 감액하고 8조9000억 원을 증액했다. 올해도 예산안 예비심사를 마친 상임위 10곳의 증액 규모를 집계한 결과 10조4000억 원에 달했다. 국민의힘은 정부안에서 2조 원 정도까지만 손보겠다는 계획이지만 민주당은 “5조∼7조 원가량 삭감해 민생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처럼 여야 간 큰 이견으로 법정 시한 내 예산안 처리 불발은 물론이고 사상 첫 준예산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도 언급되면서 여야의 갈등도 고조되고 있다.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지낸 김기현 의원은 이날 “민주당은 예산안에 윤 대통령의 ‘윤(尹)’자만 들어가도 경기를 일으키며 닥치고 삭감 중”이라며 “말이 좋아 삭감이지 지금 벌이고 있는 작태는 민생 파탄을 꾀하기 위한 ‘예산 테러’ 수준”이라고 성토했다. 반면 박 원내대표는 “대통령실은 국회의 예산안 심사 전에 준예산까지 연동한 비상계획을 검토했다고 한다”며 “예산안을 원활하게 처리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다수 의석인 야당에 책임을 떠넘기려고 벌써부터 준예산을 언급하는 건 너무 무책임하고 정략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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