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가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시대, 흩어져 있는 데이터를 모으고 씨줄날줄 엮어 ‘나’와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정보를 만들어 드리는 동아일보 온라인 전용기사입니다.
동아일보의 온라인 설문조사 ‘금요일엔 POLL+(www.donga.com/news/poll)’에는 매회 평균 3만 여 명이 설문에 응하고 의견을 달며 열띤 토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데이터톡은 POLL+ 설문 결과에 포털 기사의 댓글 분석을 추가해 민심의 지표를 알아보는 ‘댓글민심’ 코너를 매주 토요일 선보이려고 합니다.
이번 주 POLL+ 이슈는 윤석열 대통령의 도어스테핑 중단 조치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윤대통령의 ‘도어스테핑 중단’ 결정이 잘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3만842명이 응답했습니다. 89%(3만954명)가 “잘했다”고 한 반면 “잘못했다”는 응답은 10%(3475명)에 그쳤습니다. ‘잘했다’는 독자는 “대통령의 흠만 잡으려는 기자들 앞에 서서 좋은 말을 해봐야 소용없다”는 의견을 전했습니다.
● ‘슬리퍼’는 ‘예의 없음’을 의미
좀더 다양한 독자층이 접속하는 포털 사이트에서 댓글 민심은 어땠을까요? 데이터톡은 대통령이 도어스테핑 중단을 선언한 11월21일부터 12월1일 기간 중 도어스태핑 중단을 다룬 기사와 해당 기사에 달린 댓글을 네이버 뉴스 섹션에서 끌어와 분석을 시도했습니다. 분석 대상은 기사 278개, 댓글 1851개 입니다.
댓글 분석에 흔히 사용되는 기법이 ‘연관성 분석’입니다. 한 문장, 혹은 한 단락 안에서 특정한 두 단어가 자주 등장하면 두 단어의 연관성이 높다고 할 수 있는데요, 도어스테핑 댓글을 뜯어보니 “슬리퍼-기자” 단어 조합이 상위에 올라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슬리퍼’와 ‘기자’가 함께 언급된 댓글이 많았다는 의미죠. ‘슬리퍼’ 단어빈도 역시 상위 10%에 속해 있을만큼 ‘슬리퍼’는 이번 사태의 주요 키워드였습니다.
‘슬리퍼’ 단어를 사용한 댓글들은 대개 ‘기자의 예의 없음’을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것들입니다.
-zigu**** 기자가 기본 예의도 없이 슬리퍼 질질 끌고 시비 터니까 중단 할 수 있지 -ykw0**** 슬리퍼 끌고 와서 쌈질하겠다는 말투와 태도! 이게 기자냐?
슬리퍼처럼 사소한 것에 연연하는 것이 ‘쪼잔해 보인다’, ‘괜한 트집 잡는다’는 의견도 없지 않았지만 이런 의견은 2~3개에 그쳤습니다.
kweo**** 슬리퍼 신은 기자들 한둘이 아니더만. SNS에 사진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트집 그만 잡고. 다른 언론사들 어떻게 하나 한번 보겠다. 이건 전형적인 언론길들이기 언론 탄압인데.(하략)
● “하지 마, 그냥”은 누구를 탓하는 말?
‘그냥’이라는 단어가 언급된 단어 조합도 연관성 상위에 올라있습니다. ‘그냥’은 “하지 마”라는 말과 함께 주로 쓰였는데요, 우리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고 더 이상 신경쓰고 싶지 않을 때 툭 내뱉듯 “하지마, 그냥”이라고 하죠.
그런데 ‘그냥’이 ‘기자’, ‘대통령’과 각각 쌍을 이뤄 여러 차례 언급된 점이 눈길을 끕니다. “하지마, 그냥” 앞에는 보통 “이럴 거면”이라는 조건문이 축약돼 있는데, 이 조건문에 갈등의 원인 제공자가 ‘기자’라는 의견과 ‘대통령’이라는 의견이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죠.
step**** 대통령이 문제가아니라 기자들 수준이 저질이라 도어스테핑이 의미가 없다. 질문도 싸우자는 식의 말투의 시장 잡배수준. 그냥 안 하는 게 답이다“
이런 의견은 “MBC에 밀리지 말라”는, 윤 대통령 지지층의 주문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반면 아래 의견은 “국민을 더 이상 실망시키지 말고 도어스테핑도 중단하라”는 비지지층의 주문으로 해석됩니다.
ybr8****그냥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게 대부분의 국민들의 여론입니다. 나타나서 문제만 일으키는 모습을 국민들은 보기가 싫다는 것입니다.
데이터톡은 이번 분석에서 댓글민심이 어느 쪽을 더 무겁게 질책하는지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포털 기사 댓글에 특정 집단의 의견이 과도하게 반영돼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단어 연관성만 살펴봤습니다.
● ‘용산’은 ‘소통’의 상징이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용산-소통’ 단어 조합입니다. ‘용산’을 언급한 댓글은 대개 “계속 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는데 여기에는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긴 것이 소통 강화를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gyu9**** 소통하려고 용산 간 거 아니었냐? -ring****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용산으로 간 거라더니, 아무도 못 보게 아예 셔터 내려버리는 거냐?
용산의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시민, 기자들과의 접촉이 많은 ‘소통의 대통령’이고 도어스테핑은 용산 시대 개막의 상징이니 중단해서는 안된다는 메시지입니다.
‘용산-소통’ 조합보다 2단계 아래 랭킹된 ‘언론–탄압’ 단어조합은 대통령의 ‘불통’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skyj**** 자유를 강조하던 대통령이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는 대통령이라니 전혀 앞뒤가 안 맞네요. 윤석열 대통령이 생각하고 말하는 자유는 도대체 무엇인가요? hgju**** 문대통령이 독재고 불통이라고 떠들던 국힘아, 제멋대로 용산 이전, 언론탄압, 무책임, 여론무시, 영수회담도 안하는 윤석열은 뭐라고 할래? 독재에 불통은 너희가 하는 것 아니니?
우리는 상대방과 화해, 화합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 때 “하지마, 그냥”이라고 말해 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도어스테핑이라는 새로운 소통 방식을 이어가려는 노력이 더 이상 필요치 않은 것은 아니겠죠. 네티즌은 “하지마, 그냥”이라고 했지만 여기에 담긴 민심은 정말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닐 겁니다. “하지마, 그냥” 앞에 있는 “이럴 거면”이라는 조건문을 잘 해석한다면 현명한 해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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