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지도부가 차기 당대표의 조건을 제시하고 나섰다. 포문을 연 것은 주호영 원내대표다. 주 원내대표는 12월 3일 대구·경북 지역 언론인 모임 ‘아시아포럼21’ 초청 토론회에서 “차기 당대표는 MZ세대에 인기 있는 대표여야 하고 공천에서 휘둘리지 않는 안정적인 공천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지역구 의석 절반이 수도권인 만큼 수도권에서 대처가 되는 대표여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당대표의 세 가지 조건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도 뒤질세라 가세했다. 그는 12월 5일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회의 뒤 “차기 지도부가 상식·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바탕으로 시시비비를 가려내는 MZ세대, 젊은 세대에게 공감하는 그런 지도부가 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대통령과 만찬 사흘 후 “다음 회의 때 전당대회 시점에 대해 의견을 모아보자”고 말해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을 유발한 바 있다.
만찬 자리에서 대통령과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여당 지도부가 차기 전당대회 시점에 관해 논의했다는 보도가 잇따랐지만 부인했던 그다. 실제로 비대위 차원에서 전당대회 관련 논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당대회에 대한 관심이 식어가는 와중에 주 원내대표의 발언이 나왔다. 그것도 전당대회 개최 시점보다 훨씬 민감한 차기 당대표의 조건에 관한 이야기다.
주 원내대표가 강조한 당대표의 조건은 세 가지다. 첫째, MZ세대에 인기 있는 대표여야 한다. 둘째, 중립적 공천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수도권에서 반응이 좋으면 금상첨화다. 정 위원장은 이 중 첫째 조건만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 수립 후 MZ세대, 특히 남성의 이탈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 지지층이었지만 집권 이후 국정운영 방식에 대한 거부감과 이준석 전 대표를 당대표에서 끌어내린 것에 대한 반감으로 돌아선 상태다. 2030 남성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다면 차기 총선 승리는 쉽지 않을 테다.
주 원내대표가 수도권 반응을 강조한 까닭은 이곳이 22대 총선의 최대 격전지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차기 당대표는 총선을 지휘해야 한다. 이때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높다면 당대표 역할은 크게 줄어든다. 반면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30% 전후에 머무른다면 당대표 역할이 중요하다. 당대표가 개인기로 상황을 돌파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도 녹록지 않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대표는 지난 대선 당시 윤 대통령과 치열하게 경합한 이재명 의원이다. 대통령 인기도 높지 않은 상황이다. 당대표가 차기 대선 주자급이 아니라면 총선을 개인기로 돌파하기는 쉽지 않다. 이 대표는 경기도지사 출신으로 수도권 득표력이 상당하다. MZ세대 중 여성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이 대표와 대척점에 섰으면서 압도할 만한 인물이 필요한 이유다.
정 위원장과 주 원내대표가 언급한 조건에 부합한 국민의힘 내 인물은 누가 있을까. 이준석 전 대표가 조건에 부합하지만 어렵게 대표직에서 몰아낸 그를 다시 불러들일 생각은 없을 것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염두에 둔 발언이 아니냐”는 설이 확산하는 이유다. 한 장관과 이 전 대표의 차이는 한 가지다. 윤석열의 사람이냐 아니냐는 것이다. 정 위원장과 주 원내대표가 윤 대통령으로부터 모종의 하명을 받고 움직이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까닭이다.
한 장관은 12월 7일 ‘차기 여당 대표 차출설’에 대해 “중요한 할 일이 많기에 장관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분명히, 단호하게 말씀드린다”며 거리를 둔 상태다. 이와 별개로 한 장관은 당대표로 적합할까. 가능성과 한계가 공존한다. 한 장관은 장점이 많다. 첫째, 젊다. 둘째, 말을 잘하고 특히 임기응변에 능하다. 셋째, 판단력이 뛰어나다. 이 전 대표만큼 젊지는 않지만 1973년생으로 아직 40대다. 동안이어서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기도 한다. 말을 잘한다는 부분은 이미 민주당 의원들과의 설전을 통해 충분히 입증했다. 임기응변에도 능해 자주 민주당 의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법률적 사고에 기초하지만 상황 판단을 잘하는 점도 긍정적이다.
정치력 검증이 관건
최대 단점은 정치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윤 대통령도, 정치를 10년 이상 했다는 이 전 대표도 어려워하는 부분이다. 정치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검사는 법률적 사고가 필요하지만 정치인은 정치적 사고를 해야 한다. 한 장관은 판단력이 뛰어나 학습 속도가 남보다 빠를 수 있다. 하지만 당대표직은 두어 달 공부해서 수행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참모진이 탄탄하면 모르겠지만 윤 대통령처럼 검사 후배들에게 의존하면 곳곳에서 허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대선 주자 역할로 국민의힘에 영입됐기에 그나마 당에 연착륙한 경우다. 국민의힘 당대표로 정치 생활을 시작했다면 운명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검사 출신에 유력 대선 주자였던 황교안 전 대표가 21대 총선에서 참패한 뒤 대표직에서 사퇴한 것도 정치력 부족 때문이었다. 한 장관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수 진영 차기 대선 주자 중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여권 일각에서 당장 그 인기를 끌어다 쓰려는 모습을 보이는데, 앞선 이유 등을 고려할 때 성공 여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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