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차기 당 대표 선거에 1차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1, 2위 후보끼리 한 번 더 겨뤄 최종 승자를 가리는 ‘결선투표제’를 도입한다. 친윤(친윤석열)계 후보들이 난립해 1위를 거머쥐지 못할 때를 대비해 ‘필승 장치’를 두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이번 주 내 전국위원회 의결까지 마무리하는 속전속결로 당헌당규 개정을 완료할 계획이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는 19일 결선투표제와 ‘책임당원 100% 투표’를 담은 당헌당규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2004년 당시 박근혜 대표를 선출했던 전당대회에서 정당 사상 처음 도입했던 ‘국민여론조사 반영’을 18년 만에 폐지하는 것이다. 개정안에는 대선, 총선 등에 나설 당내 후보를 선출하는 경선 여론조사를 국민의힘 지지자와 지지 정당이 없는 유권자를 대상으로만 실시하는 ‘역선택 방지 조항’ 규정도 담겼다.
보수 정당이 당 대표 선거에 결선투표를 적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결선투표제는 그간 공개 논의가 없다가 이날 전격 도입이 결정됐다. 책임당원 100% 투표에 대해선 지난주 초·재선 의원을 대상으로 한 의견 수렴을 비롯해 당 내부 공론화 과정을 거친 것과도 비교된다.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당원 총의를 거듭 확인해서 당 대표의 대표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는 결선투표제가 권성동, 김기현 의원과 나경원 전 의원 등 이른바 친윤 당권 주자들이 후보 단일화를 이루지 못하고 본경선까지 뛰는 경우를 대비해 사실상의 단일화 효과를 내기 위한 ‘보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비윤(비윤석열) 진영은 속전속결로 당 대표 선출 방식을 개정하는 것에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당헌당규 개정을 나흘 뒤까지 마칠 계획이다. 20일 상임전국위원회를 소집하고, 규정상 최단 기간인 사흘간의 공고일을 거쳐 23일 전국위원회에서 의결하는 일정이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1월 초쯤은 모든 준비가 끝나고 후보 등록이 시작돼야 한다”며 “이번 주 빨리 100m 달리기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與 전대, 당심 100%에 결선투표까지… 당내 “친윤 승리 안전장치”
‘당대표 선거 룰’ 변경 속전속결 당내 “묘수냐 꼼수냐 두고봐야” 안철수, 당심 100% 반영에 날세워 유승민 “윤핵관의 유승민 죽이기”
“사실상 친윤(친윤석열) 진영 후보 단일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 아니겠느냐.”
국민의힘이 보수 정당 사상 처음으로 당 대표 선거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 당 내부에선 이 같은 반응이 나왔다. 여러 명의 친윤(친윤석열) 후보들이 경선 과정에서 단일화에 이르지 못할 경우에 대비한 안전장치라는 뜻이다.
하지만 당원 투표 100% 선거 방식 등 전당대회 룰 개정이 실제 선거 결과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결선투표제 도입이 묘수가 될지, 꼼수가 될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의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올 경우 여권이 또 한 번 혼돈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 지도부 내 이견에도 속전속결 도입
이날 오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선 결선투표제 도입을 놓고 비대위원 간 찬반 의견이 맞붙으며 논의가 길어졌다. 비당원을 대상으로 한 국민여론조사를 배제하고 당원 투표 100%로 당 대표를 선출하는 방식에는 공감대가 일찍 형성됐지만 결선투표제 도입이 돌발 변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부 비대위원은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2, 3일 후에 다시 한 번 전당대회를 치러야 해 국민적 관심을 끌 수 있다”며 이른바 ‘컨벤션 효과론’을 내세워 도입을 주장했다. 반면 “실무적으로 복잡한 결선투표제 대신 예비경선(컷오프) 규정을 두면 된다”며 난색을 표한 비대위원들도 있었다. 결선투표제를 당헌당규에 명시하는 대신 전당대회 선거관리위원회 차원에서 실시하도록 하는 방안도 절충안으로 제시됐다. 하지만 비대위는 논란을 줄이기 위해 이날 결선투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당규 개정을 의결했다. 추후 구체적인 사안은 전당대회 선관위가 정하도록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난해 전당대회처럼 나경원 전 의원과 주호영 원내대표 간 단일화 논의가 ‘나주곰탕’으로 희화화되는 부작용을 막자는 취지”라며 “후보별 유불리를 따진 건 아니다”라고 도입 취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친윤 진영의 한 의원은 “권성동 김기현 의원과 나 전 의원이 끝내 단일화에 실패할 경우 친윤 표심이 갈라지는 걸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말 아낀 주자들 속내는 복잡
당권 주자들은 이날 결선투표제 도입에 대해 말을 아꼈다. 김기현 의원은 “선수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경기에 임하면 된다”며 “유불리를 계산할 만큼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나 전 의원은 “따로 말씀드릴 입장은 없다”면서도 “현재 거론되거나 출마를 준비 중인 어느 당권 주자와도 이른바 연대라는 것을 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안철수 의원은 결선투표제 도입에 대해선 언급이 없었지만, 당원 투표 100% 방식에 대해선 “골목대장이나 친목회장을 뽑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날을 세웠다. 안 의원은 이날 KBS 라디오에서 “당헌을 18년 동안 유지한 이유가 있는데 자칫 국민 여론이 악화되고 대통령께도 부담이 될까 봐 우려된다”면서도 “나는 누가 나와도 자신 있다”고 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이날 KBS 라디오에서 “당원 투표 100%는 대통령 명령에 따라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이 유승민 하나를 죽이기 위한 폭거”라며 “전대가 막장 드라마 비슷하게 가지 않겠느냐”고 반발했다. 윤상현 의원은 “당원과 국민들의 의견 수렴 없이 속전속결로 밀어붙여야만 했는지 안타깝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룰 개정 논란에 대해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지금 고민해야 할 문제는 유권자 자격이 아니라 후보의 자격, 당 대표의 자격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여당은 대통령의 꼭두각시가 아니다”라고 날을 세웠다. 황명선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당무에 개입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반드시 지키기 바란다”고 했다. 이재명 대표도 “대통령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여당 경선과 정적 제거가 아니라 민생 그 자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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