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 정부가 실효적 대북 확장억제를 위해 “미국의 핵전력을 ‘공동 기획(Joint Planning)-공동 연습(Joint Exercise)’ 개념으로 운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밝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미 간 관련 논의는 이른바 ‘나토식 핵공유’와는 다른 ‘한국형 핵공유’ 모델 도입을 시사하는 것으로서, 정부 안팎에선 이 모델이 정립되면 미국의 기존 ‘확장억제’ 개념에서 한계로 지적돼온 미국에 대한 ‘일방적 의존’에서도 일정 부분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2일 보도된 조선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미군 핵전력 운용에 대한 한미 간 ‘공동 기획·연습’을 논의 중이라며 “핵무기는 미국 것이지만 정보 공유·계획·훈련을 한미가 공동으로 해야 한다. 미국도 상당히 긍정적인 입장”이라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과거의 ‘핵우산’ ‘확장억제’ 개념은 북한이 핵을 개발하기 전, (옛) 소련·중국에 대비하는 개념으로서 ‘미국이 알아서 다 해줄 테니 한국은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그러나) 지금은 그런 정도로 국민을 납득시키기 어렵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윤 대통령은 “한국은 물론, 미 조야에서 ‘한국도 핵을 보유하고 북한과는 핵군축 개념으로 접근하자’는 얘기가 나오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국제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유지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언급, 우리의 ‘독자 핵무장’론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윤 대통령이 이번 인터뷰에서 소개한 미 핵전력 운용에 관한 한미 간 ‘공동 기획·연습’ 논의는 사실 작년 11월 미 워싱턴DC에서 열린 제54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 당시 채택된 공동성명 내용을 재확인한 것이기도 하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당시 SCM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억제·대응하기 위한 동맹의 능력과 정보공유, 협의절차, 공동기획·실행 등을 더 강화해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이 우리 측에 제공하는 확장억제의 모든 과정에서 우리 발언권을 제도화한다는 것이어서 SCM 당시에도 사실상 “‘한국형 핵공유’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단 평가가 나왔다.
‘확장억제’란 미국이 적대국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동맹국을 보호하기 위해 핵능력과 재래식전력, 미사일 방어능력 등의 억제력을 미 본토 방위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제공한다는 개념을 말이다.
게다가 정부 안팎에선 한미 양국이 나토와 달리 ‘양자동맹’이란 사실에 주목, 우리 영토 내에 굳이 미국의 핵무기를 두지 않더라도 ‘나토식 핵공유’를 뛰어넘는 수준의 운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를 테면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미군 전략폭격기나 원자력추진 잠수함 등이 한반도 주변이나 지근거리의 미군기지에 상시 전개하고 우리 측의 요청 등에 따라 필요시 즉각 출격할 수 있도록 하는 태세가 갖춘다면 우리 영토 내에 미군의 핵무기를 배치해두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단 것이다. 실제 한미는 SCM에서 미군 전략자산을 ‘상시 배치’에 준하는 수준으로 한반도에 전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현재 나토는 벨기에와 독일, 이탈리아(2곳), 네덜란드, 튀르키예 등의 6개 공군기지에 미군의 전술핵탄두를 배치해두고 있다. 또 나토의 유럽 동맹국들은 ‘핵기획그룹’(NPG)을 통해 표적 추천, 옵션 선택·실행, 평가 등 업무기획에 협력하고 있으나, 핵무기 사용 자체에 대해선 미국이 독점적·배타적이며 최종적인 권한을 갖는다.
따라서 윤 대통령이 이번 인터뷰에서 작년 11월 SCM 공동성명 내용을 직접 확인한 사실은 한미 간 합의사항에 대한 우리 정부의 기대와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우리 정부는 앞으로 미국과 △핵 관련 정보를 공유할 뿐만 아니라 △미국이 핵사용을 결심할 때 우리 입장을 고려하는 절차를 만들고, 또 △북한의 핵사용에 대비한 전략 또한 공동으로 기획해 그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한미는 이미 북한 정권의 특성과 발전하는 핵·미사일 위협 수준을 고려한 ‘맞춤형 억제전략’(TDS) 개정 작업을 진행 중인 상황. 국방부에 따르면 TDS란 북한 지도부의 특성과 핵·대량살상무기(WMD) 위협 등을 고려해 한반도 상황에 맞게 최적화한 한미 공동의 대북 억제전략이다.
TDS는 북한발(發) 핵·WMD 위기 상황을 △위협과 △사용 임박 △사용 등 단계로 나눈 단계별 대응전략을 제시하며, 여기엔 그 억제 수단엔 한미의 외교·정보·군사·경제(DIME) 요소가 모두 고련된다.
한미 국방부는 앞서 2013년 10월 열린 제45차 SCM에서 이 같은 TDS에 서명한 뒤, 작년 8월 제13차 한미억제전략위원회(DSC)에서 그 ‘개정’을 확인했다. 그리고 작년 11월 SCM에서도 한미는 “TDS 개정을 통해 고도화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대응하기 위한 기본 틀을 구비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한미 양측은 북한의 핵사용 시나리오를 상정한 확장억제운용연습(TTX)도 올해 DSC부터 매년 정례화한다는 계획이다. 한미 간 TTX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방식의 도상훈련(CPX)으로 진행되지만 유사시 대북 선제타격을 포함한 북핵 대응에 좀 더 특화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군 당국은 앞서 2011년 11월 나토 이외 국가와는 처음으로 우리 군과 TTX를 실시한 이래 현재까지 총 7차례 진행했다. TTX는 미국의 확장억제와 관련해 ‘가장 긴밀한 수준의 협력’으로 꼽힌다.
군 관계자는 “한미통합국방협의체(KIDD), DSC, 한미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등 안보협의체를 보다 강화해 북한 핵·미사일에 대한 억제 대응능력 또한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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