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뭉스러운 섬 여의도에선 오늘도 진심을 숨긴 속내, 사실에 가까운 거짓말들이 쏟아집니다. 정치인들의 능글맞은 말과 미묘한 글 뒤에 숨겨진 진의, 그들이 공개적으로는 말하지 않는 진짜 뒷이야기, ‘언락’(Unlock) 해드리겠습니다. 지난주엔 ‘안방 여포’란 신조어에 꽂히신 분이 계셨죠. 그 분에 대한 정치권의 뒷담화입니다. 로그인해서 잠금 해제!!
“북한 무인기가 휴전선을 넘어서 서울 인근까지 비행했는데 격추도 못 하고 다 되돌아간 것 같습니다. 정말 ‘안방 여포’가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달 28일 광주광역시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북한 무인기 영공 침공 사태에 대해 핏대를 올리며 윤석열 대통령을 ‘안방 여포’라고 비난했습니다.
안방 여포(‘방구석 여포’라고도 함)는 자기 집 안에서만 큰소리 떵떵 치는 사람을 삼국지 속 캐릭터인 여포에 빗대 부르는 인터넷 용어입니다. 주로 오프라인에선 제대로 말도 못 하면서 온라인상에서만 싸움박질하고 다니는 악플러를 지적할 때 많이 쓰죠.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국가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의 태도가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대오각성하길 촉구한다”라고 매섭게 꾸짖었습니다. 윤 대통령이 사태 당일 NSC(안전보장회의)를 열지 않고 그 다음날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정부에 책임을 돌린 것을 두고 ‘입만 살았다’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 대표가 누군가를 ‘안방 여포’라고 저격할 자격이 있을까요?
이 대표가 광주에 머물던 이날 오후 서울 국회에선 이 대표가 소속된 상임위원회인 국방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렸습니다. 무인기 사태와 관련해 여야가 군 수뇌부로부터 긴급 현안보고를 받겠다며 아주 모처럼 합심해서 만든 자리였습니다. 이 자리엔 이 대표를 제외한 여야 국방위원 전원(국민의힘 이헌승 위원장, 신원식 임병헌 성일종 한기호 의원, 민주당 김병주 김영배 설훈 송갑석 송옥주 안규백 윤후덕 정성호 의원, 정의당 배진교 의원)이 참석했습니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청가(請暇·의회에 출석하지 못할 경우 미리 불참 사유와 기간을 적어 제출하는 것)를 냈으니, 무단 결석자는 이 대표뿐이었습니다.
이날 회의에선 “국민을 안심시키고 국민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 최우선을 두는 작전이 돼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민주당 김영배 의원)는 질타부터 “여야가 합의해 대북 규탄 결의문을 채택해 본회의에 상정하자”, “소형무인기 방공작전을 실질적으로 보강하기 위해 국회가 예산을 뒷받침해야 한다”(국민의힘 신원식 의원) 등 대안들이 이어졌습니다. 국회 차원에서 나름 할 수 있는 일들은 다 해보자는 취지였습니다.
이 대표는 왜 안 왔을까요?
“이 대표도 국회 밖에서만 소리칠 게 아니라 국방위 회의장에서 대책을 고민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 대표의 최측근 의원은 “그것도 좋은 방법이었겠다.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고 답했습니다. 황당합니다. 물론 사전에 잡힌 지방 일정을 소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번처럼 이례적이고 심각한 안보 위기 상황엔 국방위 소속 의원으로서의 책무가 더 우선이지 않을까요.
사실 이 대표의 국회 무단결석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닙니다. 참여연대가 운영하는 ‘열려라 국회’ 사이트의 상임위 출석부에 따르면, 이 대표는 지난해 6월 보궐선거로 국회의원 배지를 단 이후 정기국회가 종료된 12월까지 총 17번 열린 회의(국정감사 포함) 중 7번만 출석했습니다. 출석률 41.18%로 상임위 ‘꼴찌’입니다. 12월 28일 긴급 현안 질의에도 불참한 것까지 포함하면 이 대표의 출석률은 38.89%로 더 떨어집니다. 같은 기간 이 대표를 제외한 다른 국방위 소속 의원들의 평균 출석률은 95%였습니다.
혹시 양보다는 질로 승부하는 스타일인가 싶어 그의 회의 석상 발언도 다 찾아봤습니다만, 그것도 아닌 듯합니다. 국감 기간을 제외하면 6개월 넘게 활동하는 동안 8월 1일 첫 회의 때만 질의를 했고, 두 번째 회의에선 신상발언을 한 게 전부였습니다. 그마저도 “빼곡한 일정 때문에 지금 바로 이석해야 한다“고 양해를 구하는 멘트였습니다.
당 대표라 상임위 활동이 쉽지 않다는 점은 인정합니다만, 같은 당 박홍근 원내대표나 여당 지도부와 비교해 보면 이 역시 비겁한 변명입니다. 아래 표 속 차이를 한 번 직접 비교해 보시죠.
동료 의원들도 그의 ‘불성실함’이 못마땅한가 봅니다. 민주당 소속의 한 국방위원은 통화에서 “아무리 당 대표라 해도 국회의원이면 국회에서의 기본적 책무는 해야 한다. 이 대표는 본회의만 오고 상임위 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다. 역대 다른 당 대표들도 이러진 않았다. 이 대표는 자신이 국회의원이란 걸 아직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했습니다. 역시 국방위 소속인 한 여당 의원도 “이 대표는 지난해 11월부터 국방위 전체 회의엔 한 번도 안 나왔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사실 국회의원 활동을 이렇게 대충 할 거였으면 이 대표가 굳이 주변 반대를 무릅쓰고 지난해 보궐선거에 나와 원내에 들어올 이유도 없었습니다. 원외 인사도 당 대표는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가뜩이나 ‘이재명 방탄 국회’라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 상임위 활동마저 제대로 안 하니 같은 민주당 내에서도 ‘뒷말’이 나오는 겁니다.
이 대표는 민주당 안방인 광주에서 윤 대통령더러 안방 여포라고 비판하기 전에 본인부터 국회에서 열리는 본업에 제대로 임했어야 합니다.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하는 기자들과의 백브리핑이나 즉석 질의응답 자리에선 침묵으로만 일관하면서, 자신의 강성 지지층인 ‘개딸’들과의 온라인 유튜브 방송에선 유독 활발한 그야말로 안방 여포 같습니다. 대체 누가 누구더러 안방 여포라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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