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극작가 페터 한트케의 희곡 ‘관객모독’. 십수년 전에 본 이 연극을 떠올린 건 독자들과 소통하는 방법 때문입니다. 신성한 관객에게 물을 뿌리고 말을 걸어도, 그가 연극의 기존 문법과 질서에 저항했든, 허위를 깨려했든, 모독(冒瀆)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법조팀장을 맡고 있는 필자는 정치부와 사회부에서 10년 넘게 국회와 청와대, 법원·검찰, 경찰 등을 취재했습니다. 이 코너의 문패에는 법조계(法)와 정치권(政)의 이야기를 모아(募) 맥락과 흐름을 읽어(讀)보겠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가끔 모독도 하겠습니다.
어떤 음악을 듣거나 어떤 영화를보거나 어떤 음식을 먹을 때. 오감이 자극될 때 추억으로 소환되며 함께 했던 사람이 떠오를 때가 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을 떠올릴 때 강렬하게 느꼈던 순간의 감각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그는 처음 술자리부터 강렬한 인상을 줬다. 어느 날 저녁 한 식당에서 ‘1차’가 끝날 무렵 누군가 한잔 더 하러 가자며 2차를 제안했다. 말석에 앉아 ‘소맥’을 잇따라 마시고 알딸딸하게 취한 상태였다. 귀가할 분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길을 걸어가며 지하에 있는 위스키바에 들어갔다.
그는 전혀 취한 기색이 없었다. 위스키(아마 싱글몰트 위스키였을 것이다)를 주문한 뒤 야구공 같은 얼음을 위스키 잔에 넣었다. 온 더 락으로 위스키를 가득 채워 넣었다.훗날 손바닥에 ‘王(왕)’ 자가 그려져있어 논란이 된 그 큰 손이었다. 잔을 부딪친 뒤 입에 털어 넣었다. 그 많은 위스키를 원샷한 것은 그날이 거의 처음이었다. (이날인지 다른 날인지 모르겠지만 화채그릇에 위스키 등 남은 술을 담아 나눠마시는 폭탄주도 처음이었다.)
● 고시생들 “저 선배랑 놀면 시험 못 붙는다…후배들 피해다녀”
그는 대학시절부터 ‘호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사법시험 9수를 하며 많은 책을 읽고 달관할 줄 알아서 ‘신림동 신선’으로 불렸다. ‘말술’을 하며 어울리기 좋아하는 성격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을 만나고 사귀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 것. 최근 만난 서울대법대 1년 후배이자 검찰 출신 변호사의 전언이다.
압구정동에 독서실이 좋은 데가 생겨서 사시 준비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다녔다. 나랑 그도 다녔다. 아침에 오면 신문을 쭉 읽고 점심에 공부하는 후배들 불러서 정치 사회 이런거 쭉 토론을 해. 그러면 논쟁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그는 지지를 않았다. 자기 주장이 왜 맞는지 계속 토론을 해. 그러다가 저녁시간까지 가고… 그러고 술을 마시고 떡이 돼서 다음날 공부를 못하게 되고. 그런 게 계속 반복됐다. 그래서 ‘저 선배랑 놀면 시험 못 붙는다’고 다들 피해 다녔다. 안 마주치거나 다른 독서실로 가거나. 나도 다른 데로 독서실을 옮겼다.(웃음)
그는 신림동과 연희동, 압구정동 등 여러 곳에서 공부하며 9수 끝에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지난해 4월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저는 시험에 붙고 사법연수원을 마칠 때까지도 검사 한다는 생각을 안 했다”며 “저는 바로 변호사 개업을 하려고 했는데 친구들이 짧은 기간 동안이라도 공직 생활을 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조언을 해줘서 검찰에 발을 디뎠다”고 말했다.
1994년부터 2001년까지 검사로 일하다 옷을 벗고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변호사 생활을 했다. 하지만 대검찰청에 들렀다가 엘리베이터에서 배달시킨 짜장면 냄새를 맡고 검사 시절이 그리워 1년 만에 검사로 돌아왔다. 이후 그는 2003년 눈에 띄는 수사를 이어갔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연구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맡아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구속기소했다.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 씨도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2011년엔 부산저축은행 사태 수사를 맡아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을 구속기소하기도 했다.
그의 수사 스타일을 두고 ‘일단 밀어붙인다’거나 ‘터프하게 몰아간다’는 식의 이야기가 있지만 아니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그와 가까운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의 말이다.
론스타 수사할 때 그가 책을 갖다주더라. “광주에서 배임 수사할 때 참고했다”며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세계화의 그늘(번역본의 제목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을 줬다. 노벨경제학상을 받고 세계은행 부총재했던 사람이다. 그가 ‘썰을 잘 푼다’고 하지만 내공없이 말하는 게 아니다. 이런 책을 읽고 의견서를 쓸 정도로 정교하다.
그 시절부터 그는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았다. 그가 직접 했던 이야기다.
김한길 전 민주당 대표가 2014년에 메신저를 통해서 재보선에 나오라고 하길래 ‘정치 안 합니다’라고 했어. 2016년에도 민주당, 국민의당(안철수 의원이 주도해 만들었던 정당)에서도 전화가 오더라고. 근데 내 적성도 아니고 국정원 사건 재판 진행 중인데 정치판 간다는 게 말이 안 돼서 좋게 거절했어. 재판 진행 중인데 성향이 그래서 기소한 거 아니냐는 말 나오니까 당에 부담될 거라고 말했어. 2004년에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에서 총선 나오면 원하는데 공천 준다고 했다. 대선자금 수사하면서 삼성 돈이 민주당, 한나라당 간 수사하고 하니까. 대검에서도 내가 왜 이거 제대로 수사 안하냐고 하니까 휴가 갔다 오라고 해서 휴가 중인데도 찾아오고 그랬어. 그때 했으면 내가 지금 4선은 하고 있지.
2016년 국민의당 창당을 앞두고 안철수 대표와 정대철 고문이 대전고검 검사로 좌천됐던 윤 검사장을 불러 만났다고. 비례대표 후보를 제안했는데 윤 지검장이 큰 절을 하면서 “아직은 검찰에 하고 싶은 게 많다”며 제안을 거절했다고. -당시 취재메모
● 후배들 술값 내느라 결혼 전 전 재산 2000만 원
그는 호탕하고 술도 잘 마셔서 후배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후배들 술 사주느라 검사 월급은 거의 탕진했다. 52세의 나이에 김건희 여사와 결혼하던 2012년,전 재산은 2000만 원에 불과했다. 수사와 관련해 지휘부가 주저하거나 외압을 행사하면 들이받았다. 후배들에게 쪽 팔리는 선배가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영화 베테랑 대사처럼. 대검 중앙수사부 검사 시절 한 가지 일화는 다음 칼럼에서 다룬 적이 있다.
이후 국정원 댓글 수사팀장으로 활동하다 윗선과 부딪히면서도 수사를 밀어붙이다 한직을 전전했다. 그는 거침없는 강골 검사이자 대표적인 특수부 검사로 이름을 떨쳤다.
그러다가 국정농단 사건이 벌어지면서 수사팀장에 임명되며 ‘국민 검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문재인 정부가 탄생하자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파격 임명됐다.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적폐 청산’ 수사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를 지휘했다.
특별히 그의 성향이 민주당에 맞거나 문재인 정부와 가까웠던 건 아니었다. 가끔 방에 차를 마시러 갈 때마다 정치뉴스를 보고 있었다.
보수가 제대로 서야 된다. (2018년 6월 지방선거 패배 이후 보수 진영이 내분이 지속되던 시기였다.) 자유한국당이 전당대회 시기로 싸울 게 아니라 물갈이 등 쇄신부터 하자고 했어야 된다. 3선 이상 못하게 하는 규정 만들어야 돼. 미국 대통령도 봐라. 대부분 주지사나 상원의원 한 두 번하고 대선 주자가 된다. 민주당도 경제정책 바꿔야 된다. 주52시간, 최저임금 정책 수정해야 돼. 중산층이 잘 되게 해야 되는데 이러다 중소기업 다 망한다.
신자유주의자로 분류되는 ‘밀턴 프리드먼’ 신봉자인 그는 미국 이야기를 많이 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9수를 하는 동안 석사 학위도 땄다. 그의 석사 논문의 주제는 ‘클래스 액션(class action)’, 즉 집단소송이라고 한다. 반독점(antitrust) 분야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공교롭게 그의 자택 인근 단골가게 이름도 미국의 한 주(州) 이름이다. 미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등 전직 대통령이태어난 지역이다. 당선인 시절 서초동 자택 옆 단골가게에서 술자리를 갖다 사진이 찍혔던 곳 중 하나다. 요즘엔 지지자들이 ‘성지순례’를 다닌다고 한다.
서울중앙지검장으로서 탄탄대로를 걷던 그가 시련을 겪은 건 검찰총장으로 임명된 뒤조국 전 법무장관 수사를 하면서부터다. 조 전 장관을 수사하며 문재인 정부와 ‘맞짱’을 뜨기 시작했고 뒤이어 추미애, 박범계 전 장관과 각을 세우다 총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결국 “국민이 불러서 나왔다”며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출마해 대통령이 됐다.
그는 검사 때 뒤돌아보지 않고 직진하는 스타일이었다. 국정원 댓글 수사팀장 때 지휘부에들이받았고 검찰총장 때 추미애 당시 법무장관에게 ‘항명’했다. 옳다고 믿으면 상사에게도 거침없었던 그를 국민들이 선택했다.
이제 그의 위엔 그를 불러낸 국민밖에 없다. 국민에게는항명해선 안 된다.
1·2화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 대한 글이 나가자 어떤 유튜버는 “정부 지지율이 떨어질 때마다 한동훈 장관을 띄워주는 기사가 나온다”는 음모론적 평가를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칼럼에선 ‘핫 피플’을 다뤄야 된다는 대선배의 조언을 따라 인물을 골랐고 평소 쓰고 싶었던 한 장관을 다룬 것 뿐입니다. 이 코너는 제가 총감독입니다. 동아일보의 편집 방향 등과는 무관합니다. 저희 회사는 구성원의 다양한 생각을 존중하는 조직입니다. 3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그 분’에 대한 마음을 담아 썼을 뿐입니다. 쓰다보니 글이 길어졌습니다. 설 연휴가 지난 뒤 26일 4화에선 요즘 제가 가지고 있는 국정운영에 대한 아쉬움과 생각을 담아보고자 합니다. 5화부턴 야권과 법조계 인물도 다루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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