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과 관련해 현행 소선거구제 손질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더라도 확고한 양당 체제를 깨뜨리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비례성과 국민 대표성을 늘릴 방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정치관계법개선소위원회는 이날 오후 국회 본관에서 선거구제 개편을 위한 전문가 공청회를 열었다.
전문가들은 현행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더라도 양당 승자독식 구조를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신 의원정수와 비례대표 의석 확대를 통해 비례성과 대표성을 늘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승진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방선거 기초의회선거는 이미 중대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양대 정당이 거의 모든 의석을 독차지하고 있다”며 “선거제도 개혁 목표가 지역주의 완화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다당제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면 중대선거구제 도입만으로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지역구 의석수를 줄이는 게 쉽지 않아서 전체 의원 총수를 늘리며 비례를 대폭 확대하고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는 게 현실적”이라며 “중대선거구제도 253개 소선거구제를 합치는 과정에서 법이 정한 시한 안에 선거구 획정이 이뤄질까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차라리 국민들에게 의원 수 확대, 비례대표 확대에 대한 필요성을 설득하는 게 더 현실적”이며 “비례제 확대를 통해 양당 위주의 정치가 완화되고 국회 내에 안착되면 현재 한국정치가 겪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형철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교수는 “중대선거구제와 다수대표제 결합이 사표를 줄이고 군소정당 당선 가능성을 높여 대표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하지만, 오히려 비례성을 낮추고 거대정당의 과다대표 현상이 나올 수 있다”며 “4~9인까지 다인 선거구를 제안하는데, 1위와 4위 또는 9위 당선자의 표의 가치 불균형이 심각하게 왜곡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특히 비례성 강화 대안으로 꼽히는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대해 “권역이라는 지역대표성을 보장하므로 지역 이익의 과다대표가 이뤄질 수 있다”며 “계층·계급, 직능, 세대, 여성, 사회적 약자 등 전문성을 높일 수 없게 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대신 비례대표 의석 및 국회의원 정수 확대,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시하며 “지역대표성과 전국대표성을 보장하면서 정치적 대표성과 비례성을 높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문우진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다당제를 산출해도 시민사회의 다양한 집단을 대표할 수 있는 정당이 만들어지고 정책 대결을 할 때 의미가 있지 기존 정당 의원들이 당을 쪼개 여러 군소정당을 만들어 기존 정치 엘리트들처럼 똑같이 정쟁하면 양당 체제보다 더 낫다고 보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문 교수는 “현행 선거제도가 소선거구제를 주로 채택해서 더 문제가 되는 건 유권자들이 정책을 보고 투표하지 않고 자신에게 정책적으로 해를 끼칠 수 있는 정당과 지역감정 때문에 투표하는 행태”라면서도 “중대선거구제는 유권자들이 행사한 표가 같은 정당 다른 표에 이양되지 않는다. 같은 정당 후보끼리 경쟁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문은영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 전임교수는 “선거구가 커지면 선거권자 수가 증가하고 지리적 크기가 확대되면서 야기되는 후보자 난립, 선거비용 증가 등 고비용·저효율 문제를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있다”며 “동일한 정당 후보자가 경쟁하는 과정에서 혈연, 학연, 지연 등에 의존하고 매우 낮은 득표율에도 당선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 발제 이후 비공개로 진행된 토론에서는 중대선거구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을 두고 같은 정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배 민주당 의원은 공청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안건 자체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개선의 건”이라며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중대선거구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결합해 발의한 안이 안건 범위에 속한다. 비례제 개선 없이 중대선거구제만 바꾸자는 건 범위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비례제와 지역선거구제 혼합형으로 채택하고 있는데, 윤석열 대통령도 비례제를 없애고 중대선거구제만 전환하자는 건 아닐 것”이라며 “여야가 논의 진행 범위에 큰 문제가 없다는 판단에서 정치적으로 논의가 나올 것이라 본다”고 전망했다.
지역구가 있으면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의미가 없다는 지적에 대해선 “아니다. 비례제가 확대되지 않는 조건에서 중대선거구제든 소선거구제든 현재 47석 비례대표로 묶어놓은 상태에서는 논의에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의원정수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전문가들은 비례대표를 늘리는 게 최고의 전제라 했다”면서도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를 늘리는 게 300석을 그대로 둔다는 뜻이다. 현실적으로 국회에서 못 받아들여져서 만일 개선한다면 국민을 설득해서라도 비례대표를 확장하는 연장선상에서 전체 의석수를 확대하는 게 현실적이지 않겠나 싶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같은 정당 내에서도 조금씩 다른 의견이 있고, 정당과 정당 간에도 차이가 있었다”며 “현재 있는 제도 내에서 변화시켜야 할 것은 분명한데, 변화의 지표로 할 기준가치, 기준목표가 무엇인지를 더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준목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비례성을 확대하거나 대표성을 확대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비례성을 줄이면 사표방지를, 대표성을 높인다면 비례대표제 확대”라면서도 “비례성, 대표성, 다당제, 지역균형 등을 어떻게 우선순위로 배치할지 논의가 있었다”고 답했다.
여야는 다음 주부터 정개특위 정치관계법개선소위원회를 한 차례 열고 본격적인 논의를 할 것 같다. 이와 함께 워크숍도 계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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