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전당대회 경선 레이스가 설 연휴 이후 본격화하고 있다. 최대 변수로 꼽히던 나경원 전 의원이 25일 불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차기 당 대표를 둘러싼 전당대회 판도가 바뀌고 있다.
나 전 의원은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 당의 분열과 혼란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막고 화합과 단결로 돌아올 수 있다면 용감하게 내려놓겠다”며 “이제 선당후사(先黨後私), 인중유화(忍中有和) 정신으로 국민 모두와 당원 동지들이 이루고자 하는 꿈과 비전을 찾아 새로운 미래와 연대의 긴 여정을 떠나려고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저의 물러남이 우리 모두의 앞날을 비출 수만 있다면 그 또한 나아감이라 생각한다. 저는 역사를 믿고 국민을 믿는다”며 “국민의힘이 더 잘 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영원한 당원의 사명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나 전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3월 8일 치러지는 당권 경쟁은 사실상 김기현 의원과 안철수 의원 간의 양강 구도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두 주자는 모두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강조하며 친윤(친윤석열) 당 대표를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당권 경쟁은 ‘친윤’ 대 ‘비윤(비윤석열)’ 구도로 전개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 당 안팎의 관측이다. 투표권이 있는 당원이 80만여 명에 달하는 가운데 친윤과 비윤 진영의 결집 여부에 따라 승부가 갈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당 주류인 친윤 진영은 투표 독려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미 친윤계 핵심인 장제원 의원의 지지를 받고 있는 김 의원은 ‘김장(김기현-장제원) 연대’를 통해 당내 대세론을 구축하고, 최근 연포탕(연대-포용-통합)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친윤계 지지를 확보한 만큼 외연 확대를 통해 굳히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반면 나 전 의원의 불출마 등을 계기로 친윤계를 향해 축적돼온 당내 불만이 비윤 표심을 자극시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안 의원은 상대적으로 계파 색채가 옅은 행보를 통해 중도보수 이미지를 갖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선에도 도전했던 그는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바탕으로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맡은 이력을 내세우고 있다.
벌써부터 김 의원과 안 의원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김 의원은 26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대선에 나가겠다는 분들이 사천이나 낙하산 공천을 하는 사례들이 많이 있었는데 안 의원의 입장이 전혀 밝혀진 게 없다”고 견제구를 날렸다.
앞서 안 의원은 24일 김 의원의 발언 등과 관련해 “연포탕을 외치다가 진흙탕을 외치니까 당혹스럽다”고 꼬집었다.
이런 가운데 나 전 의원의 지지층이 어떤 후보로 향할지가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그가 누구에게 힘을 실어주느냐에 따라 승패가 나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 의원과 안 의원도 나 전 의원을 지지하는 표심을 흡수하기 위한 메시지를 경쟁적으로 내놨다.
김 의원은 25일 페이스북을 통해 “고뇌에 찬 결단에 경의를 표한다. 총선 승리 및 윤석열 정부 성공이라는 국민 염원을 실천하려는 자기희생으로 이해한다”며 “당을 지키고 함께 동고동락해 온 나 전 원내대표와 함께 손에 손잡고 멋진 화합을 이루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안 의원도 페이스북에 “안타깝고 아쉽다. 출마했다면 당원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주고 전당대회에 국민의 관심도 더 모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나 전 의원이 밝힌 ‘낯선 당의 모습’에 저도 당황스럽다. 나 전 의원이 던진 총선 승리와 당의 화합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선 압도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주자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선투표제를 치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친윤계의 표 결집을 위해 친윤 후보에 유리하도록 도입된 것으로 평가받던 결선투표제가 당락을 가르는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결선투표제는 1차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1, 2위 후보끼리 한 번 더 겨뤄 최종 승자를 가리는 방식으로 이번 전당대회에서 처음으로 도입됐다.
당 안팎에선 최대 경쟁자였던 나 전 의원의 불출마가 당 주류의 지지를 받고 있는 친윤 주자인 김 의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김 의원이 나 전 의원이 가진 정통 보수층 등의 표심을 흡수해 1차 투표에서 과반을 확보한다면 결선투표제를 치를 필요가 없다.
하지만 김 의원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고 결선투표를 치르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와 관련해 나 전 의원은 특정 주자를 공개적으로 지원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제 불출마 결정은 어떤 후보라든지 다른 세력의 요구라든지 압박에 의해서 결정한 것이 아니다. 제 스스로 당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정을 했다”며 “앞으로 전당대회에서 제가 어떤 역할을 할 공간은 없다. 그리고 어떤 역할을 할 생각은 없다”라고 말했다.
앞서 그는 윤 대통령에 대한 사과 이후 잠행을 이어왔다.
그는 지난 17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후환경대사직 해임과 관련해 “대통령의 본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히면서 대통령실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여당 초선 의원들도 “대통령을 무능한 리더라고 모욕하는 건 묵과할 수 없는 위선”이라며 가세했고, 나 전 의원은 지난 20일 “저의 불찰이었다”며 공식 사과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대통령실과 마찰을 빚으면서 윤심에서 멀어졌다는 얘기가 나왔다.
또한 비윤계로 분류되는 유승민 전 의원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당대회 경선 규칙 변경 전까지 정치적 파급력을 보였던 유 전 의원이 당원 투표 100% 결정 등에 따라 출마를 선택하지 않고 ‘윤심(尹心‧윤 대통령의 의중)’ 색채가 옅은 주자를 지지할 경우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