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5쪽 정영학 녹취록에 21번 등장한 이재명 대표, 그 진실은?

  • 주간동아
  • 입력 2023년 1월 28일 16시 44분


이 대표 “어처구니없는 일” vs 유동규 “이 대표에게 대면 보고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동아DB]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동아DB]
“어처구니없는 일… 사필귀정할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과 관련해 검찰 출석을 사흘 앞둔 1월 25일 ‘정영학 녹취록’을 들고 나왔다. 정영학 녹취록을 토대로 쓴 한 기사를 페이스북에 공유하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 것이다. 해당 기사는 천화동인 1호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몫이라는 취지로 쓰였다. 남욱 변호사가 지난해 11월 21일 대장동 공판에서 “2015년 2월부터 천화동인 1호 지분이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실 지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증언한 내용을 반박한 것이다.

“1000억 원만 만들어”
이 대표의 두 번째 검찰 출석일이 1월 28일로 정해진 가운데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에 대한 논의를 끌어냈던 정영학 녹취록이 다시금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정영학 녹취록은 천하동인 5호 소유주인 정영학 회계사가 대장동 개발 사업이 추진되기 전인 2012년부터 2021년 사이 사건 주요 관계자들과 나눈 대화 및 통화를 토대로 작성한 녹취록이다. 1325쪽 분량의 정영학 녹취록에는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과 관련된 인물들의 대화 내용이 대거 등장한다. 정 회계사 본인을 비롯해 남 변호사, 유 전 본부장, 김만배 씨, 이성문 전 화천대유 대표 등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가 1월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 관련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동아DB]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가 1월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 관련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동아DB]
녹취록에는 이재명 대표가 화자로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다. 이 대표에 관한 내용은 주로 남 변호사가 정 회계사에게 자신이 유 전 본부장으로부터 들은 말을 옮기는 식으로 나온다. 녹취록에는 이 같은 방식으로 이 대표가 21번 언급된다. 주로 ‘시장님’ ‘성남시청 2층’ 등으로 간접적으로 표현되는 식이다. 검찰이 해당 녹취록을 이 대표의 배임 및 제3자 뇌물 혐의에 대해 유죄를 입증하는 주요 증거로 채택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야권에서는 녹취록을 토대로 이 대표의 무고를 주장하기도 한다. ‘주간동아’는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정영학 녹취록에서 이 대표와 관련된 주요 부분들을 발췌해 정리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이 대표는 ‘대장동 일당’의 사업 논의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 변호사는 정 회계사에게 유 전 본부장과의 대화 내용을 자주 전했는데, 이 가운데 이 대표가 등장하는 경우가 몇번 있었다. 유 전 본부장이 이 대표에게 대장동 개발 사업에 대해 자주 보고했다는 것이다. 유 전 본부장이 “시장님(이재명)한테 보고해야 하니까 구조들을 한 번 브리핑해달라” “그냥 너(남욱)가 다 알아서 짜갖고 완판만 나(유동규)한테 얘기해줘라. 내가 시장님(이재명)한테 보고할 테니까”라고 말했다고 남 변호사가 전하는 식이다. 유 전 본부장은 1월 24일 언론 인터뷰에서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남 변호사 등이 사업 입찰에 참여하면 된다는 얘기를 먼저 꺼냈다”고 녹취록 내용을 뒷받침하는 말을 했다.

“2층도 알아서는 안 되고”
검찰 수사 과정에서도 이에 부합하는 진술이 확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일보’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3부(부장검사 엄희준·강백신)는 유 전 본부장으로부터 “대장동 개발에 따른 민간업자들의 택지 분양 수익만 4000억 원 이상이라는 내용을 성남시장실에서 당시 이 시장에게 대면 보고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이 밖에도 유 전 본부장이 “민간업자에게 유리한 건설사 배제 방침을 공모 지침서에 담는 내용, 공동주택 부지 용적률 상향과 서판교 터널 개설 등 특혜 사안들도 시장실에서 이 시장에게 대면 보고를 통해 결재가 이뤄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영학 녹취록에는 대장동 개발과 관련해 이 대표가 민간업자들에게 비자금을 요청했다는 취지의 진술도 나온다. 남 변호사가 정 회계사에게 유 전 본부장의 말을 전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내용이다. 남 변호사에 따르면 유 전 본부장은 “시장님(이재명)이 나(유동규)한테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1000억 원만 있으면 되잖아. 그러면 해결돼. 나는 대장동이든 뭐든 관심 없어, 네가 알아서 해. 그것(1000억 원)만 만들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정영학 녹취록에 따르면 유 전 본부장은 대장동 일당을 통해 금전적 이익뿐 아니라, 정치적 이익도 함께 얻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2014년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할 때 유 전 본부장 등이 대장동 개발 이슈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했다는 것이다. “내년(2014년) 6월 선거를 앞두고 대장동을 그 전에 터뜨릴지, 후에 터뜨릴지 고민을 같이해서 너네(남욱)는 돈벌이가 되고 시장님(이재명) 재선을 위해 어떤 식의 도움이 될지 서로 상의해 조율하자” “시장님을 선거에서 어떻게 당선시킬 건지에 너(남욱)랑 나는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고 말한 부분이 대표적이다. 녹취록에 따르면 유 전 본부장은 남 변호사에게 “선거관리위원회 쪽에 사람 한 명만 붙여놔봐라. 결정적 순간에 절대 시장님(이재명)이 배신 못 하게 나도 만들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라고 말하기도 했다.

야권에서는 역으로 정영학 녹취록을 토대로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의 몸통은 이 대표가 아니라 유 전 본부장”이라고 주장한다. “유 전 본부장이 소설 쓰듯 없는 얘기를 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녹취록에는 사업이 한창 준비되고 있던 시기 유 전 본부장이 남 변호사 등 민간업자들로부터 수차례 금품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2층도 알아서는 안 되고, 우리 둘만 평생 가지고 가자”고 말한 대목이 나온다. 성남시청 2층 시장실과 별개로 유 전 본부장이 민간업자들과 교류했다는 정황이 담긴 진술인 것이다. 김만배 씨가 정 회계사에게 “사건 터지면 나는 이제 남욱을 변호하지 않는다. 남욱이랑 너(유동규)랑 주범이다”라고 말한 부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인용된다.

앞서 이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인용한 내용 역시 이와 유사하다. 이 대표가 공유한 녹취록 내용은 김만배 씨가 2020년 10월 30일 유 전 본부장과 나눈 대화다. 김 씨는 유 전 본부장에게 “(천하동인 1호는)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라며 “아무도 몰라 너라는 거”라고 말한 부분이다. 검찰 출석을 앞둔 이 대표가 정영학 녹취를 꺼내 든 것은 검찰 논리를 반박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천화동인 1호의 절반은 그분 것”
이 대표의 검찰 출석일이 다가오면서 관련 의혹이 밝혀질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검찰은 대장동 개발 과정에서 남 변호사, 김만배 씨 등 민간업자들이 막대한 이익을 가져간 것에 당시 성남시장이던 이 대표의 책임도 있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이 대표가 ‘제1공단 공원화’ 공약 이행을 위해 민간업자들의 요구를 대장동 개발 사업에 반영했다고 본다. 검찰은 녹취록 외에도 관계자들의 진술 등 관련 증거를 충분히 확보했다는 입장이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민주당 정진상 전 당대표 정무조정실장(구속기소)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구속기소)도 조사한 상태다.

검찰은 이 대표가 김만배 씨의 대장동 지분 절반을 추후 건네받는 안을 승인했다고 파악한 것으로 전해진다. 2015년 2~4월 민간업자들이 이익 배당을 논의하면서 김만배 49%, 남욱 25%, 정영학 16% 등 방식으로 분배 비율을 정했는데 김만배 씨 지분의 절반이 이 대표 몫이었다는 것이다. 정영학 녹취록에 김만배 씨가 “천하동인 1호의 절반은 그분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담기면서 한때 “‘그분’이 이 대표를 가리키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다만 김 씨는 천하동인 1호는 자신이 실소유주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야당은 정치 탄압을 즉각 중단하라며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제1야당 대표에 밥 먹듯이 소환 통보를 날리고 하루 조사면 되는 것을 이틀로 쪼개겠다며 쪼개기 소환까지 한다”면서 “공포정치를 통치 수단으로 삼는 모습이 영락없는 독재”라고 주장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74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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