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은행은 국가 재정시스템의 기초이자 ‘공공재’의 측면이 있다”며 이같이 강조하자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정부가 은행에 대출을 지시하고 운영 방향에 관여하는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관치금융’과 선을 그으면서도, 소유가 분산된 일부 금융지주회사와 KT, 포스코 등 민영화된 공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정부가 개입할 여지를 열어뒀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발언에는 일부 금융지주 회장들의 ‘셀프 연임’ 문제를 둘러싼 부정적 인식이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금융지주 회장들이 길게는 3연임을 이어가며 10년 가까이 지나가면, 내부 견제장치가 무력화하고 사실상 내부에 ‘왕국’이 마련된다”며 “윤 대통령도 일찌감치 이런 문제의식을 경청했다”고 전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금융지주 회장 연임 국면에서 불거진 ‘관치’ 논란에 대해서도 “정부 실세들을 위한 사모펀드를 만들어주는 것이 관치금융이지, 경쟁력을 높이고 투명한 지배구조를 만들자는 시도를 관치금융으로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여권 실세 개입 의혹이 제기되고 내부 감시 체계가 사실상 무력화됐던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태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여권 관계자는 “‘셀프 연임’은 일부 금융권 모피아들의 일자리만 만들어주고 정작 청년들의 일자리는 줄어드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 경쟁력 약화가 곧 산업 경쟁력의 약화로 연결되는 만큼 이번 기회에 지배구조 개선의 틀을 갖추기 위해 윤 대통령이 작심하고 발언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이 “소유가 분산돼 지배 구조에 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수 있는 경우에는 절차와 과정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해줘야 된다”며 스튜어드십(주요 기관투자자가 투명한 경영을 위해해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 관여) 행사를 거론한 것도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포스코와 KT 등 공기업에서 민영화한 기업을 염두에 뒀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공교롭게도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과 구현모 KT 대표는 윤 대통령이 참석한 지난달 경제계 신년회에 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해 12월 윤 대통령이 처음으로 국빈으로 맞이한 응우옌쑤언푹 당시 베트남 국가주석에 대한 국빈 만찬에도 포스코는 참석하지 않았다. 베트남에서 활발한 사업을 벌여온 포스코가 제외된 것을 두고 “대통령실과 불편한 기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나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정기관의 수사선상에 오르내리는 소유분산 기업의 도덕적 해이 문제를 검찰총장 출신인 윤 대통령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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