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 선거구 분석]
인구 하한기준 못미치는 지역구 비상 “순천 떼오자” “예천 받아오자”
선거구 경계조정 움직임에 지역 갈등 “영호남 타협해 하한선 조정” 주장도
현행 소선거구제로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 인구의 상·하한선을 정하는 근거는 2014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다. 당시 헌재는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구와 가장 적은 지역구의 편차가 2 대 1을 넘을 수 없다”고 밝혔다. 기준은 총선 직전 해 1월 31일 인구다.
이 기준에 따라 내년 총선에서 선거구 획정 기준 인구 하한선(13만5588명)에 미달하는 영호남 일부 지역구에서는 어떻게든 자신의 지역구를 지키려는 현역 의원들의 필사적인 움직임이 한창이다. 특히 하한 기준에 못 미치는 지역구들 사이에서는 “우리 지역구를 중심으로 옆 지역구 일부를 가져오자”는 주장이 맞붙어 지역 갈등으로 번질 태세다. 지역 정치권에서는 “야당은 호남, 여당은 영남이 위기이니 서로 타협해 인구 하한선을 낮추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영호남은 ‘시군구 쪼개 붙이기’ 전쟁 중
2일 동아일보 분석 결과 내년 총선에서 선거구 획정 기준 인구 하한선에 미달하는 지역은 총 11곳이다. 전남(여수갑) 전북(익산갑, 남원-임실-순창, 김제-부안) 경북(군위-의성-청송-영덕) 등 인구가 급감하는 지역이 대부분이고 부산(남갑, 남을, 사하갑) 경기(동두천-연천, 광명갑) 인천(연수갑)에도 일부 있다.
지역구가 갑·을로 나뉘어 있는 전남 여수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현역 의원 2명이 내년 선거구 획정 문제를 두고 충돌 중이다. 주철현 의원의 지역구인 여수갑은 지난달 31일 기준 12만5749명으로 4년 전보다 인구가 1만 명 이상 줄어 하한에 못 미쳤다. 그러나 주 의원은 여수에 지역구 2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인구 하한선을 넘긴 여수을의 김회재 의원은 여수와 인접한 순천을 합쳐 3개 지역구(여수-순천 갑·을·병)로 삼는 안을 제시했다. 이를 두고 순천 지역에서 “게리멘더링(특정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기형적으로 선거구를 획정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지역 간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7월부터 대구로 편입되는 경북 군위가 포함된 경북 군위-의성-청송-영덕 지역구(국민의힘 김희국 의원)도 선거구 문제로 인근 지역들과 다투고 있다. 이 지역은 군위가 대구로 편입되면 다른 나머지 군의 인구가 11만 명 남짓이라 단일 선거구 유지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 이에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지난해 12월 “안동-예천 지역구(국민의힘 김형동 의원)에서 예천을 받아오면 된다”고 했다가 호된 반발을 샀다. 김 의원은 “경북도청 중심의 신도시가 안동과 예천의 경계에 형성되는 등 두 지역은 같은 생활권”이라고 했다.
결국 지역 정가에서는 “경북 영주-영양-봉화-울진(국민의힘 박형수 의원)에서 울진을 떼오자”, “포항북(국민의힘 김정재 의원)에서 옛 영일군 지역을 떼오자”는 각종 주장이 난립하고 있지만 이 역시 대상 지역구들이 “절대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합구 예상 현역끼리 옆 지역구 선점 경쟁
무조건 인구수를 기준으로 하면 농어촌이 많은 영·호남의 지역구는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기에 “인구 급감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10곳의 지역구를 가진 전북은 익산갑, 남원-임실-순창, 김제-부안 등 3곳이 인구 기준 하한에 미달됐다. 전북 정치권의 한 인사는 “전국을 똑같은 인구 기준으로 정하면 경기 등 수도권은 총선 때마다 지역구가 늘고 영·호남은 계속 준다”며 “지역 대표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인구 급감 지역은 인구 하한선을 예외로 하는 등 별도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합구가 예상되는 지역에서는 현역 의원들이 옆 지역구 문제에 직접 나서는 경우도 있다. 잠재적으로 자신의 선거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일찌감치 표심 챙기기에 나서는 것. 부산 남구는 갑(12만6976명·국민의힘 박수영 의원)과 을(12만9214명·민주당 박재호 의원) 모두 인구가 하한선에 미달해 합구가 유력한 지역이다. 이에 따라 박재호 의원은 부산 동구에 있는 주한미군 55보급창의 이전 후보 지역이 박수영 의원 지역구(남구 용당동)인데도 앞장서서 반대하고 있다.
이처럼 지역구를 둘러싼 갈등이 곳곳에서 불거지면서 22대 총선 선거구 획정 역시 여야의 정치적 타협으로 졸속 결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대 총선 당시 국회 선거구획정위원회 위원을 지냈던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기본적으로 인구수 기준으로 합·분구를 살펴보겠지만 국회에서 정치적으로 인구 범위를 조정할 것”이라며 “합·분구가 아닌 구역·경계조정을 할지도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이제 막 논의가 시작된 중대선거구제가 현실화될 경우 지역구를 둘러싼 혼돈은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국회 관계자는 “소선거구제를 전제한 상황에서도 이렇게 갈등이 큰데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면 모든 정국을 빨아들이는 메가톤급 이슈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