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는 글로벌 시장 경쟁에서 족쇄로 작용하는 규제를 걷어내 달라고 아우성이지만 정치권이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지 않은 법안에 뒷짐을 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당장 급한 민생법안이 아니더라도 다수당의 이해관계에 맞는 법안은 정국 경색을 감내하고 신속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5월 3일 당시 여당이자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의 수사·기소권을 분리하는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을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했다. 4월 16일 법안을 발의한 지 약 2주 만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일(5월 10일) 전에 ‘검수완박’을 완성하기 위해 이른바 ‘셀프 탈당’ ‘회기 쪼개기’ 등 편법을 대거 동원해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 법안도 빨리 처리된다. 지난해 10월 이른바 ‘카카오톡 먹통 사태’가 발생하자 정치권은 재발을 막기 위한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개정안’을 즉각 마련해 그해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한 초선 의원은 “유권자들의 관심이 쏠린 법안은 여야가 속도를 내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반면 민생 법안임에도 다수당이 미는 법안이 아니면 무작정 미뤄지는 경우도 많다. 정부가 지난달 반도체 투자 활성화를 위해 내놓은 ‘K칩스법’(반도체산업강화법)의 핵심인 조세특례제한법은 아직 논의의 첫발도 떼지 못하고 있다. 여당은 조특법을 최우선으로 처리하겠다고 했지만, 야당은 “재정 건전성과 다른 산업과의 형평성을 따져봐야 한다”는 태도다.
2020년 11월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낙태 허용 범위 확대의 내용을 담은 형법 개정안도 2년 2개월 넘게 계류 중이다.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 처벌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 개정안이 나왔지만 국회에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입법 공백’이 이어지고 있다. 채권추심자가 채권 소멸시효를 채무자에게 알리도록 의무화하는 채권추심법 개정안도 2년 넘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정쟁으로 소위원회부터 제대로 열리지 않으니 법안 검토가 많이 지연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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