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못넘는 국정과제 법안]
尹정부 9개월간 발의 법안들… 5건중 4건꼴 국회 문턱 못넘어
스타트업 지원 복수의결권 등 야당 반대로 법안 심의 파행
새 정부 출범 후 약 9개월 동안 정부 국정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발의된 법안 5건 중 4건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됐지만 새 정부가 국정과제로 이어받은 복수의결권 제도 도입 등도 국회에 계류돼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7일 동아일보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등을 통해 분석한 결과 지난달 말까지 국정과제 실현을 위해 국회에 제출된 법률 제·개정안은 총 276건이다. 이들 가운데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57건(20.7%)에 그쳤다. 나머지 219건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정부가 국정과제 실현을 위해 임기 내 제정하거나 개정해야 하는 법률은 모두 488건이다. 3개월 후면 출범 1년이 되는 상황에 국회를 통과한 국정과제 관련 법안은 약 12%에 불과한 셈이다.
반면 정부가 자체적으로 고칠 수 있는 시행령, 시행규칙 등은 빠르게 제·개정이 이뤄지고 있다. 국정과제를 구체화하기 위해 필요한 하위법령 제·개정안은 총 223건이다. 이 중 정부는 지난달 말까지 52%에 달하는 115건의 정비를 마쳤다. 정부는 올해와 내년 각각 79건, 29건을 추가로 제·개정할 계획이다.
국회에 계류된 국정과제 법안 중에는 한국 경제의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고 민생과 안전을 더욱 두껍게 보호하기 위한 법안들이 있다. 벤처, 스타트업 창업자의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1주당 여러 개의 의결권을 허용하는 복수의결권 도입 법안은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여전히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해당 사항은 2020년 민주당의 총선 공약이기도 했다. 전세 사기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 중 하나인 ‘악성 임대인 명단 공개’ 역시 지난해 국회 파행으로 제대로 심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의 본질이 타협과 협력인데도 현재 국회에서 이 부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경제위기를 포함해 국가가 전환기적 위기에 봉착한 상황에서 국회가 능동적으로 역할을 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국회에선 “정부가 법안을 정기국회 끝무렵에 너무 늦게 상정하거나, 정부 내 조율을 이유로 시간을 끄는 경우가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벤처 경영권 방어法 국회 2년 계류… AI-양자기술 육성法도 묶여
〈상〉국회서 멈춘 미래 먹거리
혁신성장 힘 싣는 복수의결권法 “세습 우려” 일부 반대에 발 묶여 업계 “이달 국회서 반드시 처리를”
신선 배송 플랫폼인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컬리는 계속된 투자 유치로 김슬아 대표의 지분이 5%대로 떨어졌다. 지난해 기업공개(IPO)를 추진했지만 김 대표가 경영권을 방어하기 힘들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최근 불황 속에 기업가치도 떨어졌다. 결국 지난달 IPO를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혔다.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인 ‘왓챠’도 창업자 박태훈 대표의 지분이 1년 만에 반 토막 났다. 2020년 총 36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고 이듬해 전환사채(CB) 490억 원어치를 발행하면서 30.0%였던 박 대표의 지분은 15%대로 떨어졌다. 벤처기업들은 1주에 2개 이상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복수의결권’ 도입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관련법의 국회 통과는 기약이 없다.
●벤처기업계 “2월 임시국회서 반드시 처리해야”
첨단산업 기반 조성, 벤처기업 육성 등 미래 먹거리에 대한 법안들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7일 관계부처와 국회에 따르면 복수의결권을 허용하는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은 2020년 12월 발의됐지만 2년 넘게 국회에 계류 중이다. 21대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공약이었고 문재인 당시 대통령도 통과를 촉구했지만,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반대하고 있다.
벤처기업육성법은 1주당 최대 10개의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벤처기업이 투자를 많이 받아 창업자 지분이 낮아져도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2021년 3월 쿠팡이 한국이 아닌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한 이유 중 하나도 경영권 방어다.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은 상장 당시 지분이 10.2%에 불과했지만 1주당 29개의 의결권을 가지는 복수의결권을 설정해 76%가 넘는 의결권을 인정받았다.
복수의결권에 반대하는 야당 의원들은 대주주에 지배력이 집중되거나 대기업 세습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주요 의결사항에는 복수의결권이 제한되는 등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벤처기업계는 6일 성명을 내 “복수의결권은 혁신성장을 꿈꾸는 벤처기업이 안정적인 혁신활동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라며 “2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되길 간곡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美 반도체에 350조 원 지원, 국내선 법안 계류 중
글로벌 기술패권 시대에 국가 차원에서 전략기술을 육성하겠다는 ‘국가전략기술 육성에 관한 특별법’도 시급한 입법 과제로 꼽힌다. 인공지능(AI), 양자, 반도체 등 경제·안보적 가치가 높은 과학기술에 우선 투자하고 인재를 키우겠다는 목표가 담겼다. 지난해 민주당 조승래 의원(2월)과 국민의힘 김영식 의원(8월)이 각각 발의해 소관 상임위를 통과한 뒤 12월부터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주요 국가들이 기술 주도권 확보를 위해 각종 투자와 법적 지원을 내놓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입법 속도가 더디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8월 국가 핵심기술인 반도체에 2800억 달러(약 351조 원)를 지원하는 내용의 ‘반도체와 과학법’에 서명했다. 일본은 지난해 11월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1조3000억 엔(약 12조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도 430억 유로(약 58조 원)를 반도체 산업 육성에 투입하는 ‘유럽 반도체법’을 추진하고 있다.
국가전략기술 육성법 제정안이 지연된 건 정권교체로 인해 정부 방침을 조율하는 데 시간이 걸린 영향이 크다. 국회 과방위 관계자는 “여야 모두 환영하는 법이라 반대할 이유는 없다”며 “해당 법안이 제정법인 데다 전략기술 범위가 굉장히 넓어 법사위 상정 전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타 부처와 이견을 더 조율하겠다고 국회에 보고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도 “지난해 초 처음 법안이 발의된 후 정권이 바뀌면서 부처 의견과 대외 변화를 반영하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세종=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세종=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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