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초유의 ‘장관 탄핵’… 대통령실 “의회 독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9일 03시 00분


이상민 행안 탄핵소추안 가결
李, 헌재 결정 때까지 직무정지
野 “이태원 참사에 무책임 일관”
與 “이재명 방탄용… 꼼수 연속”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사진)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8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국무위원 탄핵소추안 가결은 75년 헌정사상 처음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기본소득당 등 야 3당이 주도한 탄핵안 처리에 대통령실은 “의회주의의 포기” “의회 독재”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도 “이재명 방탄용”이라고 거세게 반발하는 등 ‘탄핵 정국’ 후폭풍이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진표 국회의장(왼쪽)이 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진행된 탄핵소추안 의결에 반발하며 국민의힘 의원들은 “169석 협박정치를 중단하라”며 야당을 규탄했다.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은 75년 헌정 사상 처음이다. 뉴스1
김진표 국회의장(왼쪽)이 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진행된 탄핵소추안 의결에 반발하며 국민의힘 의원들은 “169석 협박정치를 중단하라”며 야당을 규탄했다.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은 75년 헌정 사상 처음이다. 뉴스1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에서 이 장관에 대한 탄핵안을 재석 293 명 중 찬성 179명, 반대 109명, 무효 5명으로 가결시켰다. 의석수176석을 차지한 야 3당의 몰표였다. 이날 국회가 보낸 탄핵소추 의결서가 행안부에 도착해 이 장관의 직무가 정지됐다. 공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헌재가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서를 접수한 뒤 심리가 시작되고 180일 이내에 선고하도록 돼 있다. 야 3당은 앞서 6일 “이 장관이 재난·안전관리 업무를 총괄하는 위치에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전후 재난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아 헌법과 재난안전법,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했다”며 탄핵안을 발의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8일 표결 후 기자들과 만나 “당 의원들은 이 장관의 책임을 국민을 대신해 묻는 것에 예외 없이 동참했다”고 했다. 정의당 김희서 수석대변인도 브리핑에서 “본회의에서 소속 의원 전원이 참여해 찬성 표결했다”고 밝혔다.

사상 초유의 국무위원 탄핵을 두고 여야는 서로에게 책임을 돌렸다. 박 원내대표는 탄핵안 통과 직후 국회에서 이태원 참사 유족과 만나 “윤석열 대통령과 이 장관이 결자해지했어야 할 일인데, 무책임으로 일관했다”며 “결국 국회가 국민을 대신해 책임을 묻게 됐다”고 했다. 이에 맞서 국민의힘은 탄핵안 강행 처리를 ‘이재명 방탄용’이라고 비판했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국회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민주당이 대한민국 헌정사에 씻을 수 없는 반헌법적, 의회주의 파괴의 오점을 남겼다”며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어떻게 하면 피해 볼까 하는 꼼수의 연속”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실은 탄핵안 가결 직후 입장문을 내고 “의회주의의 포기”라며 “의정사에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민주당의 탄핵소추야말로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거야(巨野)의 폭거’”라며 “탄핵 사유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이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는 사실상의 ‘대선 불복’ ‘의회 독재’와 같다”고 했다.

이날 국회 국무위원실에서 대기하다 탄핵소추안 가결 뒤 국회를 떠난 이 장관은 입장문을 통해 “국민이 국회에 위임한 권한은 그 취지에 맞게 행사돼야 한다”고 비판하며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176석 野3당 전원 참석해 탄핵 몰표… 115석 與 결집 역부족




초유의 장관 탄핵
찬성 179표-반대 109표로 가결
野, 의사일정 바꿔가며 표 단속野성향 일부 무소속도 찬성표
與 박진-권영세 장관도 표결 참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8일 오전부터 더불어민주당은 여론의 역풍을 우려하는 야권 내 이탈표를 막기 위해 막판까지 긴장감을 놓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탄핵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해 조사하자고 제안하는 등 마지막까지 저지에 나섰지만 176석의 야 3당 앞에선 역부족이었다. 무기명으로 진행된 탄핵소추안 표결 결과 찬반은 국민의힘(115석)과 탄핵안을 발의한 민주당(169석), 정의당(6석), 기본소득당(1석) 의석수와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지도부의 표 단속에 민주당에서 반란표가 나오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이 장관의 사퇴를 요구해온 권은희 의원 정도만 찬성표를 던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 장관 탄핵안에 여야가 결집했고 양 진영으로 갈려 표결이 이뤄진 것이다.

●野 3당 전원 참석·與 권은희 찬성표

이날 오후 2시 개의한 본회의에서는 국민의힘에서 요구한 ‘탄핵소추안의 법사위로의 회부 동의의 건’이 부결되자마자 민주당에서 요구한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이 상정됐다. 대정부질문에 앞서 탄핵안을 처리할 수 있도록 안건 순서를 변경해 달라는 것이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대정부질문을 먼저 하고 탄핵안을 표결하겠다고 이날 오전 공개적으로 밝혔음에도 민주당이 반발하며 일정 변경안을 올렸다. 국회 관계자는 “저녁 늦게 끝나는 대정부질문 이후 표결에 부치면 이탈표를 관리할 자신이 없으니 의사일정 변경 압박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의사일정 변경안 가결 이후 표결이 진행된 탄핵소추안은 재석 293명 중 찬성 179명, 반대 109명, 무효 5명으로 통과됐다. 의결정족수인 150명(재적 의원 과반수)을 무리 없이 넘긴 것을 두고 야권은 “불참자 없이 전원 참석했다. 이탈표가 없었다”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공동 발의한 야 3당 외에 범야권 성향 무소속 7명 중 일부가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의원을 겸한 박진 외교부 장관, 권영세 통일부 장관까지 표결에 참여했다. 이태원 참사 직후 이 장관의 사퇴를 주장했던 당권 주자 안철수 의원도 오후 계획했던 지방 방문 일정을 막판에 취소하고 본회의에 참석했다. 뇌물 혐의로 법정 구속 중인 정찬민 의원 외에 조경태 정운천 임병헌 의원 등은 지역 일정 등의 사유로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표결 전 다른 일정을 이유로 이석했다.

본회의장에선 내내 여야 의원들 간 고성이 이어졌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수석부대표가 ‘이재명 방탄용 탄핵’이라며 30분 넘게 발언을 이어가자 야당 의원석에선 “내려와라”라는 반발과 야유가 터져 나왔다. 송 원내수석부대표는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손바닥을 보이며 “반사”라고 외쳤다.

이어 탄핵안 제안 설명에 나선 민주당 김승원 의원은 “이태원 거리를 걸었다는 이유만으로 희생자들은 목숨을 잃었다”며 희생자 100여 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했다.

●與 “의회권력 남용” 野 “헌정사 부끄러운 정권”

여야는 탄핵안 가결 후 본회의장 밖에서도 ‘장외 공방’을 이어갔다. 국민의힘은 탄핵안 가결 직후 곧장 본회의장에서 퇴장해 국회 로텐더홀에서 규탄대회를 열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브레이크가 없거나 고장 난 대형 트럭은 흉기로 변한다. 민주당이 지금 딱 그 모습”이라고 했다. 박정하 수석대변인도 “오늘은 (민주당이) 국민이 부여한 의회 권력을 남용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표결 뒤 “윤석열 정권이야말로 헌정사에 가장 부끄러운 정권이 될 것”이라며 “정부가 감당해야 할 일을 국회가 수습했는데,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아무 말이나 하면 안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이날 탄핵안이 처리된 직후 이태원 참사 유족을 만나 위로했다.

다만 민주당 내에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헌재가 탄핵소추안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릴 경우 정치적 파장이 클 것이란 우려가 여전하다. 한 재선 의원은 “헌재 결정이 언제 나올지가 관건이 될 텐데, 지금도 정부 여당에서 명확한 탄핵 사유가 없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만약 기각될 경우 야당이 숫자를 앞세워 정치적 공세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상민 장관 탄핵#가결#의회 독재#헌정 초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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