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안하는 국회]
상임위, 대립 사안 ‘일단 넘기고 보자’
16일 심사 88건중 42건 의결 못해
법사위장 “관행 고쳐야” 공문 보내
“국가기관에 중요한 새 기구를 설치하는 과정이면 관계부처 간에 좀 협의를 하고 법안을 추진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국민의힘 유상범 의원)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이례적으로 여당 의원이 정부를 질타하는 일이 벌어졌다. 해양경비 활동 지원을 위한 ‘해양경비정보상황센터’ 신설을 담은 해양경비법 개정안을 두고 부처별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해양경찰청은 해상 재난 등을 분석할 별도의 정보센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기획재정부는 예산상의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지난해 4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를 통과한 개정안은 결국 부처 간 이견으로 법사위 법안심사제2소위로 회부됐다.
이처럼 부처별 의견 조율이 되지 않은 법안을 법사위로 넘기는 일이 빈번해지자 법사위가 결국 이런 관행에 공개적으로 제동을 걸고 나섰다. 법사위는 21일 김도읍 법사위원장 명의로 각 상임위원장들에게 공문을 보내 관계 부처 등과 이견이 있는 법안의 경우 쟁점을 해소한 후 보내줄 것을 당부했다. 법사위는 공문에서 △법안 제정·개정에 따라 예산 편성·조정이 수반되는 등 재정 문제가 예상되는 안건 △다른 상임위 또는 행정기관 간 이견이 제시된 법안의 경우 “관련 쟁점이 정리·해소된 후 체계·자구 심사를 의뢰”해 줄 것을 요청했다. 공문에는 법사위 여야 간사의 서명이 담겼다. 법사위 관계자는 “쉽게 말해 상임위에서 교통 정리가 안 된 법안을 법사위로 떠넘기지 말라는 것”이라고 했다. 각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은 본회의에 회부되기 전 법사위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실제로 16일 법사위에서는 부처 간 대립이 극명한 법안이 여러 건 논의되면서 여야 모두 난처한 상황이 발생했다. 사학진흥기금이 운영하는 대학생 기숙사에 재난 등으로 손실이 발생할 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손실금의 일부를 지원할 수 있게 한 한국사학진흥재단법 개정안의 경우 기재부가 “기숙사 운영 손실이 재난에 따른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들어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또 발전소 온배수 배출량에 따라 수산자원조성금을 부과하는 수산자원관리법 개정안도 해양수산부의 찬성에도 산업통상자원부의 반대에 부딪쳐 계류됐다. 이날 법사위는 다른 상임위에서 의결된 88건의 법안을 심사했지만 42건이 부처 간 충돌 등으로 의결되지 못했다.
법사위 소속 한 의원은 “상임위 단계에서 부처 간 이견이 조율되지 않고 법사위로 법안이 넘어오는 것에 법사위 소속 여야 의원 모두 문제 의식을 갖고 있다”며 “법사위가 ‘국회 내 상원 노릇을 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각 상임위에서 ‘일단 넘기고 보자’며 법안을 통과시키는 관행을 고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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