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존 노동조합에 지원하던 국고보조금 액수를 줄이는 대신 전체 예산의 절반을 비(非)노조 근로자 단체와 ‘MZ노조’ 등 신규 노동단체에 지원한다고 밝혔다. 노조 가운데 회계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곳은 지원 대상에서 원천 배제된다.
고용노동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23년 노동단체 지원사업 개편방안’을 확정해 23일 발표했다. 이달 중 행정예고를 거쳐 3월에는 이를 토대로 보조금 지원 공고를 낸다.
개편안은 노동단체 지원사업 대상을 노조법상 ‘노조’에서 ‘근로자로 구성된 협의체 등 기타 노동단체’, 즉 일반 근로자 단체까지 확대했다. 예를 들어 배달라이더 노조 같은 플랫폼 근로자나 비정규직으로 구성된 단체, 지역별·업종별 근로자협의체 등의 단체도 새로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고용부는 이들 신규 지원 단체에 사업 예산 44억7200만 원의 절반(22억 원)을 별도로 할당하기로 했다. 반면 기존 노조에 지급되던 지원금은 줄였다. 그간 지원 항목에서 큰 금액을 차지했던 ‘노조 간부 교육’이나 ‘국제 교류 사업’ 등은 앞으로 지원하지 않는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노조는 국가로부터 다양한 혜택을 지원받는 만큼 회계를 투명하게 운영할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지고 있다”며 “정부 또한 국민 혈세로 지원된 보조금이 자격을 갖춘 단체를 통해 책임 있게 운영될 수 있도록 관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계 자료 안낸 노조엔 지원금 안줘… 사용내역 전수 현장 점검
非노조-MZ노조도 국고보조금
비정규직-플랫폼 근로자 단체 등 정식 노조 아닌 곳까지 지원 정부 “회계자료 제대로 내라” 통보 노동계 “돈으로 노조 겁박” 반발
23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노동단체 지원 사업 개편 방안’은 노동조합 국고보조금 사업의 잘못된 관행을 시정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전체 근로자 중 소수가 가입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등 대형 노조가 정부의 지원을 독식하지 못하도록 지원 범위를 넓혔고, ‘깜깜이 사업’ ‘눈먼 돈’이었다는 지적에 따라 지원 대상에 대한 선정 기준과 검증을 강화했다.
● 기존 노조 지원금 대폭 축소
지난해까지는 노동단체 지원 사업 대상이 ‘총연합단체인 노조 및 지역단위 본부, 산별 연합, 산업별 단위노조, 중소 노조’와 같이 관할 시군구에 정식 설립 신고를 한 노조로 국한됐다. 고용부는 이날 자료를 통해 “그간 노동단체 지원 사업 대상이 노조로 한정됐다”며 “국내 노조 조직률이 낮고 대기업 중심으로 조직돼 다수의 미조직(비노조) 근로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기관들이 참여하기 어려웠다”며 대상 확대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 2021년 기준 노조 조직률은 14.2%다. 노조법상 정식 노조에 가입된 근로자가 전체 근로자 10명 중 한두 명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그나마 노조가 있는 사업장도 대부분 대형 사업장이라 30명 미만 사업장의 조직률은 0.2%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다수의 비노조 근로자들은 정부의 지원에서 소외됐고, 사업 신청이 가능했던 소수의 대형 노조들만 혜택을 입어 왔다는 게 고용부 생각이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이번 사업 개편을 통해 MZ 노조, 근로자 협의체 등 다양한 노동단체가 사업에 참여해 취약 근로자의 권익 보호 강화와 격차 완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보조금을 비롯해 기존 노조의 예산 사용 내용이 불투명하다는 점도 이번 개편안의 배경이다.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 고용부와 광역자치단체 17곳으로부터 제출받은 노조 지원 명세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고용부와 지자체가 한국노총과 민노총에 지급한 지원금은 총 1521억 원이었다. 여기에 양대 노총은 각각 조합원 수가 100만 명이 넘어 조합비 예산만 최소 수백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고용부가 이달 1일부터 15일까지 노조에 회계 자료를 제출토록 한 결과 대상 노조 327곳 중 정부 요구에 맞게 자료를 제출한 노조는 120곳(36.7%)뿐이었다.
고용부는 올해 지원 예산(44억7200만 원)의 절반인 22억여 원을 신규 참여 기관 전용으로 할당한다. 자연히 기존 노조에 주어지는 지원금 규모는 줄어든다. 기존 노조 입장에서 보면 지난해 35억 원에서 올해 22억 원으로 40%가량 줄게 됐다. 회계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은 노조는 3월 내로 자료를 다시 내야 한다. 자료 제출을 계속 거부하면 올해 정부 지원 사업에 참여할 수 없다. 고용부는 “노동단체 지원 사업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고보조금 사업이다. 회계가 투명한 단체여야 책임 있게 운영할 수 있으며 사업 목표 달성과 함께 재정 낭비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 해외 출장 지원 사라져… 노동계 “돈으로 노조 겁박”
지원금 사용 내역 관리도 강화한다. 그동안 보조금 정산보고서는 고용부가 자체 검증해 왔지만 올해부터 회계 전문기관에 맡겨 검증하도록 할 예정이다. 일부 노조에 한해서만 실시했던 현장점검도 전수 점검으로 확대한다. 지원할 수 있는 사업의 종류도 바뀐다. 다른 목적으로 유용될 가능성이 높았던 간부 교육, 국제 교류 사업은 앞으로 지원하지 않고 취약 근로자 권익 보호, 산업안전 중심 내용으로 재편할 예정이다.
노동계는 “돈으로 노조를 겁박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어 앞으로 노정 간 첨예한 대립이 예고됐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이날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회계장부와 보조금을 엮어 마치 노조가 지원금을 부정 유용한 듯 엮으려는 치졸한 계략”이라며 “한국노총은 그동안 받은 돈의 사용 내역을 다 보고했고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다. 정부는 지원금을 빌미로 노조를 겁박하는 졸렬한 짓을 관두라”고 말했다. 민노총은 이날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앞서 14일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노조 회계 공개 요구 등에 대해 “노조를 기득권 세력으로 몰고 범죄 집단화하는 탄압을 지속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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