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을 두고 막바지 협상 중인 가운데, 한국 정부가 최근 일본 측에 일본 전범 기업의 피해자 배상 참여 방안에 대해 사실상 ‘최종안’에 근접한 합의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취임 후 첫 3·1절 기념사에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사죄와 반성 대신 미래 협력을 강조한 데는 일본 측에 이에 대한 답변을 요청하는 ‘압박’ 메시지 성격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 “공은 일본 정부에 넘어갔다”
정부 소식통은 2일 “추후 일본과 협상은 계속할 것”이라면서도 “일단 우리로선 현재 상황에선 ‘최종안’에 가까운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은 일본 정부에 넘어간 것”이라며 “수주 안에 진전이 없을 경우 협상이 5월 이후로 넘어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협상이 장기화되면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등을 계기로 양국이 합의안을 내놓고 한일 정상회담을 하는 방식 등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한일 정부는 최대 쟁점인 배상 책임이 있는 전범 기업 미쓰비시중공업, 일본제철의 배상 기여 문제를 제외한 나머지 사안에 대해선 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뤘거나 협의 가능한 입장이다. 정부 소식통은 “협의 사안을 크게 사과와 배상, 두 가지로 나눈다면 피고 기업(전범 기업)의 배상 참여 문제를 제외하곤 (사과 등) 나머지 사안에선 협의가 됐거나 이견을 좁히는 게 아주 어렵진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전범 기업의 배상 참여 여부다. 정부는 일본 전범 기업이 어떤 형식으로든 배상에 기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일본 정부는 전범 기업이 피해자나 유족에게 직접 배상하는 방식에 대해선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부는 행정안전부 산하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조성한 기금으로 배상금을 변제할 때 전범 기업이 참여하는 방식 등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서도 ‘배상’ 성격이 짙다는 이유로 꺼리는 분위기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달 독일 뮌헨안보회의(MSC) 당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상은 이러한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시민단체, 역사학자들 사이에 친일 사관에 동조했다는 비판이 나온다’는 질문에 “한국과 일본에 (각각) 두 세력이 있는 것 같다. 한쪽은 어떻게든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세력, 또 하나는 어떻게든 반일 감정과 혐한 감정을 이용해 정치적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세력이 있다”고 지적했다.
● “기시다, WBC 한일전서 시구”
윤 대통령은 전날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에 대해 “협력하는 파트너”라면서 “한미일 3자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이는 협상이 타결될 경우 이달 중에라도 한일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에게 정치적 결단을 내려달라는 성격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공이 일본에 있는 만큼 결국 (일본) 총리가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기시다 총리는 10일 도쿄돔에서 열리는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일전에서 시구한 뒤 경기를 관전하는 방향으로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고 교도통신이 2일 보도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기시다 총리의 한일전 시구는 스포츠 진흥이 목적이며, 한일 관계 개선 등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윤 대통령이 내놓은 3·1절 기념사와 관련해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이날 사설에서 “일본 정부는 윤석열 정부에 협력해 강제징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둘러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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