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지난 10일 문재인 전 대통령과 만나 나눴다는 대화 내용이 더불어민주당 내에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박 전 원장은 17일 YTN 라디오에 나와 “문 전 대통령은 ‘민주당이 총단합해서 잘해야 하는데 그렇게 나가면 안 된다. 이 대표 외에 대안도 없으면서 자꾸 무슨’ 정도의 얘기를 했다”라고 말했죠.
이에 비명(비이재명)계가 즉각 반발하고 나서면서 ‘문심’ 진위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5선 중진 이상민 의원은 “문 전 대통령이 과도하게 말한 것이고 전달한 분도 잘못 전달한 것”이라며 “우리가 뭐 문 전 대통령 ‘꼬붕’이냐”고 불쾌감을 드러냈죠.
▷진행자 : 이재명 대표의 이 자도 안 나왔습니까? ▶박용진 : 얘기 안 했었습니다. ▷진행자 : 없었어요? 그러면 박 전 원장하고는 그런데 그런 얘기를 하신 모양이에요. ‘이재명 대표 외에는 대안도 없으면서 무슨…’ ▶박용진 : 네, 두 분께서 말씀을 어떤 말씀 나누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문제로 전직 대통령과 얘기하는 거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고 말씀이 혹시 나왔더라도 그걸 굳이 그럴 필요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있고요.
[20일 오전 SBS라디오]
▷진행자 : 박 전 국정원장이 문 전 대통령을 만나고 왔는데 “지금 이재명 대표 외에 대안도 없으면서 무슨…”이라고 했다면서 당의 단합을 주문했다고 했는데요. 박 의원은 문 전 대통령이 “민주당이 달라지고 뭔가 결단하고 그걸 중심으로 화합하면 국민 신뢰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얘기했다는 겁니다. 박 전 원장하고 박 의원이 전했다는 문 전 대통령의 말이 조금 뉘앙스가 다른 것 같지 않습니까? ▶이상민 : 그렇지요. 박 전 원장이 전하는 내용은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단일대오로 하라는 것이고, 박 의원이 전한 내용은 그런 내용은 전혀 없고요. 지금 민주당 사정상 이재명 대표의 거취 문제가 중요한 제일 큰 현안이거든요. 문 전 대통령이 어쨌든 저희 당에 영향력이 있는 분인데 그분이 그 말을 했다는 것과 그게 없다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이지요. ▷진행자 : 문 전 대통령의 의중은 어디에 방점이 더 찍혀 있다고 보세요? ▶이상민 : 박 전 원장이 없는 얘기 하실 분도 아니고, 박 의원도 그대로 전했을 테고. 그런데 제가 볼 때는 문 전 대통령이 그런데 쉽게 그런 얘기를, 당의 중대한 현안이 되는 문제를 어느 쪽이라고 딱 할 수 있는 그런 입장을 표명했을까 라는 생각인데요. 만약에 했다면 (전) 대통령으로 해서는 안 되는 문제다(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지금 당내 중대한 현안이 있어도 당내에서 아주 치열한 논의가 있어야 되는 문제거든요. 그런데 문재인 전 대통령처럼 영향력 있는 분이 딱 그렇게 해버리면 완전히 기울어버리지요. (중략) 설사 박 전 원장이 문 전 대통령과 말씀을 나눈 게 있다 하더라도 전직 대통령의 말씀은 어쨌든 영향력이 크고, 미묘한 문제이니까 사실은 밖에 얘기할 성질은 아니지요.
결국 이재명 대표가 이번 주 중 기소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문 전 대통령이 이 대표에 힘을 실어줬느냐, 아니면 민주당의 변화와 결단을 주문했느냐가 논란의 관건입니다. 퇴임 후 여전히 야권 내 최고 ‘슈퍼스타’인 문 전 대통령이 어느 쪽 ‘편’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야권 내 여론 흐름이 크게 좌우될 수 있기 때문에 다들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죠.
과연 문 전 대통령은 자신의 발언이 외부로 전달될 지, 그리고 전달됐을 때 그게 어느 정도 파장을 불러올 지 몰랐을까요. 여의도 생활을 짧게라도 해 보신 분들은 다들 공감하겠지만 정치인들의 말은 모두 철저하게 계산된 겁니다. 의도나, 목적이 없는 발언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떠드는 정치인은 없습니다. 설령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전달되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 머릿 속엔 분명한 발언의 목표가 있다는 겁니다.
문 전 대통령도 분명히 자신의 발언이 일으킬 파장을 어느 정도는 예상했을 겁니다. 물론 스스로를 계속 노출시키는 건 본인 자유입니다. 문제는 퇴임 후로도 1년 가까이 이어지는 그의 정치 현안 관련 발언들이 매번 논란이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통령까지 지낸 국가 원로라면 국익이나 민생, 협치에 대한 원론적 이야기도 최대한 자제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할 때마다 논란이 되는 걸 이미 1년 가까이 충분히 경험하고도 계속 이어간다는 건 결국 ‘정치행보’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니 국민의힘에서도 “퇴임한 대통령이 거대야당 섭정 노릇을 해서야 되겠냐”는 비판이 나오는 겁니다. 권성동 의원은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 전 원장의 전언이) 사실이라면 전직 대통령까지 이재명 대표를 위한 방탄에 동참했다”고 비판했죠. 그는 “자기변명 식 독후감 쓰기, 반려견 파양 논란 후 보여주기식 반려견 장례식, 민주당 인사들과의 릴레이 면담 등 본인의 일상 자체를 중계하다시피 했다. ‘트루문쇼’를 방불케 한다”고도 썼습니다.
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잊혀진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거듭 얘기했습니다. 물론 지난 1년 가까이 이어진 그의 행보를 보면 되레 잊혀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듯합니다만, 지나간 것은 또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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