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듯 다른 與野의 ‘간판’ 고민[한상준의 정치 인사이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1일 14시 00분


내년 4월 22대 총선을 1년여 앞둔 지금, 여야를 관통하는 공통된 고민은 ‘간판’이다. 국민의힘도, 더불어민주당도 “과연 어떤 간판으로 당의 명운이 걸린 총선을 치를 것인가”를 고심하고 있는 것.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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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하지 않은 선거가 없지만, 특히 22대 총선은 여야 모두에 그야말로 물러설 수 없는 승부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내년 총선에서 승리해 ‘진정한 정권교체’를 달성하겠다는 각오다. 만약 내년 총선에서도 여소야대의 국회 상황을 뒤집지 못한다면 윤석열 정부의 중점 국정 과제들은 임기 말까지 본궤도에 오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민주당은 22대 총선에서 승리해 다시 정권 탈환의 교두보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계획이 실패해 원내 제2당으로 내려앉는다면 민주당은 행정부에서도, 입법부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소수 야당’의 신분으로 돌아간다.



● ‘선거의 여왕’도 ‘어퍼컷 세리머니’도 없는 與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보수 진영은 2000년대 초반을 우울하게 맞이했다. 1997년, 2002년 대선에서 연거푸 패했기 때문이다. 이때 보수 진영을 구한 사람이 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2004년 총선을 불과 22일 앞두고 당의 수장이 된 박 전 대통령은 탄핵 역풍과 ‘차떼기당’이라는 오명 속에서도 121석을 지켜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2006년 지방선거, 2012년 총선도 승리로 이끌었다.

문제는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한 박 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이 되면서 ‘선거의 여왕’ 자리를 내려놓게 됐다는 점이다. 현직 대통령은 선거 운동을 할 수 없다.

‘선거의 여왕’이 사라진 새누리당은 2014년 지방선거를 사실상 무승부로 끝냈고 2016년 총선에서는 원내 제1당 자리까지 내준다. 이후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까지 보수 진영이 길고 긴 패배의 터널에 들어서는 동안 숱한 당 대표와 비상대책위원장이 등장했지만 그 누구도 패배를 끊어내지 못했다. 여권 관계자는 “4, 5년 동안 보수 진영을 하나로 추스르면서 중도 표심까지 얻어낼 ‘스타’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결국 국민의힘을 연패의 늪에서 끌어낸 ‘스타’는 당 바깥에서 등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 역시 현직 대통령이기 때문에 내년 총선 유세에서 특유의 ‘어퍼컷 세리머니’를 선보일 수 없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은 내년 총선을 김기현 대표 ‘원톱’으로만 치르게 될까.

3·8전당대회에서 김 대표의 경쟁자였던 안철수 의원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었다. 안 의원은 “수도권 한 지역구 사거리에서 김기현 의원이 유세하면 사람들이 김 의원을 알겠나? 표가 오겠는가?”라며 김 대표의 낮은 인지도를 문제 삼았다. 이에 대해 한 여당 의원은 “안 의원이 전당대회에서 패배했지만, 안 의원의 문제 제기는 여전히 유효하다”며 “총선까지 ‘김기현 체제’가 유지되겠지만, 총선 유세를 총괄할 또 다른 ‘간판’이 김 대표를 돕는다면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계속 고전한다면,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나경원 전 의원이 6일 서울 동작구 나 전 의원 당협사무실에서 열린 동작을 당원간담회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나경원 전 의원이 6일 서울 동작구 나 전 의원 당협사무실에서 열린 동작을 당원간담회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뉴스1

이에 따라 여당 의원들은 6일 김 대표와 나경원 전 의원 간 회동에서 나왔던 발언에 주목하고 있다. 당시 김 대표는 나 전 의원에게 “내년 (총선)도 말할 것 없고, 앞으로 우리 당을 이끌 가장 큰 지도자”라며 “(앞으로) 더 큰 역할을 하도록 지평을 열고 바닥을 깔아드려야겠다는 책임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를 두고 여권 내에서는 “김 대표가 나 전 의원의 ‘총선 역할론’을 시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전당대회 불출마를 택하긴 했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만만치 않은 힘을 보여줬던 나 전 의원이 내년 총선 유세의 간판으로 나설 수도 있다는 것.

또 여권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총선 차출론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런 ‘간판’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한국갤럽이 2일 발표한 장래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한 장관은 11%를 얻어 민주당 이재명 대표(20%)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금 여권에서 한 장관보다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 누가 있느냐”며 “한 장관이 입당해 본인의 지역구 승리만을 노릴 게 아니라 김 대표와 함께 전국 유세를 이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앞으로 더 커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 당의 선장을 놓고 갑론을박 중인 野
민주당의 간판 고민은 ‘김 대표 혼자서 될까’라는 국민의힘 고민과 결이 다르다. 민주당의 지금 고민은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를 치를 선장을 누가 맡느냐”다. 바로 이 대표의 거취 문제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 부결이 불러온 후폭풍의 핵심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비명(비이재명)계는 “이재명 체제로는 내년 총선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태도다. 이른바 ‘총선 필패론’이다. 비명계의 이상민 의원은 아예 공개적으로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당 전체에 먹구름을 끼치고 있는데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 이 대표가 사퇴해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반감이 큰 상황에서 이 대표의 사퇴 이후 당을 빠르게 추스르면 내년 총선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이 비명 진영의 주장이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33%였고 정당 지지율은 국민의힘이 34%, 민주당이 33%였다.

반면 친명(친이재명)계는 “이 대표가 아니면 누가 당의 간판이 돼 총선을 치를 수 있느냐”는 분위기다.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77%가 넘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승리했고, 각종 차기 대권 주자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는 이 대표가 내년 총선을 진두지휘해야 한다는 것. 특히 민주당 내 최대 규모의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는 “이 대표가 불신 해소와 혁신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며 사실상 이 대표 사퇴 불가 태도를 밝히며 친명계에 힘을 실어줬다.

친명 진영의 한 의원은 “이 대표가 퇴진해 또 전당대회를 분열로 치르면 정말 공멸”이라며 “게다가 이 대표를 대신해 당을 이끌 만한 마땅한 인사도 없는 게 현실 아니냐”고 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민주당의 차기 또는 차차기 주자로 꼽혔던 김부겸 전 국무총리, 박원순 전 서울시장, 안희정 전 충남지사,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모두 현실 정치 무대에서 내려갔다. 이낙연 전 총리,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역시 한국에 없다.

게다가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이 대표 퇴진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길어지면서 또 다른 갈등 전선을 낳고 있다”고 우려한다. 바로 문재인 전 대통령 발언을 둘러싼 논쟁이다.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던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17일 “문 전 대통령이 ‘이 대표 외에 대안도 없으면서 자꾸 무슨’ 정도의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역시 문 전 대통령을 만난 박용진 의원은 20일 “(문 전 대통령이 이 대표) 이야기를 안 했었다”고 했다. 당의 내분이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경남 양산으로 내려간 문 전 대통령까지 소환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야권 내에서는 “어떻게든 빠른 수습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가 깊어지면, 아무는 데도 더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한 야당 의원은 “당의 내분이 길어지니 불필요한 갈등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결국 이 대표가 아니면 그 누구도 이 상황을 매듭짓지 못하기 때문에 이 대표가 어떤 선택을 하든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여야가 나란히 안고 있는 이 ‘간판’ 고민을 남은 1년 동안 어떻게 해결하고 마무리 지을지가 내년 총선을 둘러싼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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