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다음 달 국빈 방미 준비 과정에서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국빈초청 특별 문화 프로그램을 제안했지만 대통령실 외교안보 라인의 대응이 지연돼 한때 무산 위기에 처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윤 대통령은 이를 대통령실이 아닌 다른 경로를 통해 뒤늦게 파악하고 수습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에서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교체 검토 얘기가 나온 배경엔 이 문제를 포함해 외교안보 라인의 실책이 누적된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주미 한국대사관 등에서 미국 측 요청을 담아 대통령실로 5차례 이상 전보 등을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데 대통령실에서 확답이 오지 않아 무산 위기에 처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이 다른 외교 채널을 통해 이 사실을 파악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의 방미 기간 중 바이든 대통령 부부와 함께 할 문화행사를 미국 측이 제안했으나 관련 보고가 제때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해 윤 대통령이 실망했다는 것. 대통령실 내부에서 김 실장 교체 검토 얘기가 나온 데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28일 기자들과 만나 “사실과 다르다”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교체가 시기의 문제일 뿐 검토되는 게 사실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김 실장은 이날 오전 재외공관장 회의 ‘지속가능한 평화’ 토론 세션에서 강연할 예정이었지만 강연을 취소하고 윤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의 방미 이후 내년 총선 출마설이 나오는 박진 외교부 장관, 권영세 통일부 장관 등 정치인 출신 장관들의 교체와 맞물려 외교안보 라인 전반을 개편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국정 동력을 새로 확보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실 개편과 개각이 맞물릴 가능성이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취임 1주년을 앞둔 윤 대통령이 외교안보 라인을 시작으로 순차 개편을 단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여권 “외교안보라인 혼선 누적… 인적쇄신론 방아쇠 된듯”
尹방미 일정 조율 혼선
블랙핑크-레이디 가가 만찬 공연 질 바이든 여사 제안 조율에 문제 尹, 방일전후 엇박자에도 불쾌감
“일본 정부의 언론 플레이가 나왔다면 적시에 대응해야지 논란이 확산한 뒤에 대응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한일 정상회담 이후 불거진 일본 정부의 언론 플레이에 대한 정부 외교안보 라인의 대응에 대해 이 같은 아쉬움을 나타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한일 정상회담에서 독도 문제가 거론됐는지에 대한 21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일본 말을 믿으시나, 한국 정부 말을 믿으시나”라고 반박했지만 논란에 선제 대응을 하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을 우회적으로 나타낸 것.
이처럼 여권 안팎에서는 정부 출범 이후 국가안보실과 외교부 간의 혼선이 누적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미 정상회담 목전에 김일범 대통령의전비서관과 이문희 대통령외교비서관이 교체되고,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하는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을 교체하는 방안이 거론된 것도 이런 이유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문화행사 준비 지연, 쇄신 여론 방아쇠”
특히 방미 기간에 바이든 대통령 부부가 주최하는 국빈만찬 관련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혼선이 개편 필요성을 절감하는 결정적 트리거(방아쇠)가 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 측은 한류 스타 블랙핑크와 미국의 팝스타 레이디 가가가 한미 정상회담 국빈 만찬장에서 ‘한미 동맹 70주년 기념’을 주제로 함께 공연하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한다. K팝과 대중문화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질 바이든 여사의 의견이 반영됐다는 것. 여권 관계자는 “이 과정에서 5차례 이상 한국 대사관이 미국 의견을 대통령실에 전달한 것으로 안다”며 “외교안보 라인에서 대응이 더뎌 무산 위기에 처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국빈 방문 행사 준비와 일정 조율과 관련해 지속적인 보고 누락이 있었다”며 “이에 비서관뿐만 아니라 김 실장도 함께 미국 방문 전에 거취를 정리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커리어(직업) 외교관 출신 비서관이 둘씩이나 미국과의 정상 일정을 조율하다가 놓쳤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바이든 여사의 아이디어 등 대통령 부부 일정에 대한 중요도를 낮게 판단했다가 사고가 났을 수 있다”고 말했다.
● 강제징용 배상 해법 과정에서도 뒷말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 해법 대응 과정에서도 대통령실 안보라인과 외교부 간 업무 공조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정부 소식통은 “대통령실 일부 인사를 제외하고는 이번 강제징용 배상 협상 과정에서 외교안보 라인이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안보실과 외교부 간 소통에서 엇박자를 보였다는 지적도 나왔다. 다른 여권 관계자는 “방일 준비 과정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잡음이 많았던 것에 대해 윤 대통령이 불편해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결국 북한 도발과 우크라이나 사태 등 핵심 외교안보 이슈에 최적의 판단을 내리기 위해 대통령실이 쇄신 필요성을 절감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날 외교안보 라인 인적 개편 확대 관측에 거듭 선을 그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김 실장 교체 검토 얘기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다른 고위 관계자는 “취임 1년이 됐으니 여러 가능성이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누구도 확답을 내놓기가 어렵다”고 했다. 다만 내부적으론 시기의 문제일 뿐 외교안보 라인 개편이 추가로 이뤄질 것으로 보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한 관계자는 “인적 개편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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