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11.5% 인상 등 복수안에
與 “한전-가스公 자구책이 먼저”
당내 “내년 총선까지 동결” 목소리도
“文정부 동결 비판하곤 되풀이” 지적
정부가 31일로 예상됐던 올해 2분기(4∼6월) 전기·가스 요금 인상 발표를 전격 보류했다. 정부는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의 악화된 재무 상황 개선을 위해 가격 인상 방침을 고수했지만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론 역풍을 우려한 여당이 제동을 건 것.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한전과 가스공사에 “뼈를 깎는 자구책”을 요구했다. 당내에서는 “내년 총선 때까지 요금을 동결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주 최대 69시간 근로’ 논란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여당이 여론을 충분히 들으라”며 당정 간 긴밀한 협의를 지시하자 여당이 정책 결정 과정에 본격 개입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7월부터 무더위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만큼 상반기 요금 인상 시점을 미루면 ‘냉방비 폭탄’ 등 국민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여당 “뼈를 깎는 구조조정 선행돼야”
국민의힘과 정부는 이날 국회에서 당정협의회를 열고 2분기에 적용할 전기·가스 요금 인상 여부를 논의했다. 김 대표는 이날 부산 일정 때문에 협의회에는 불참했지만 박대출 정책위의장이 김 대표의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의장은 회의 후 브리핑에서 “요금을 인상할 경우 국민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한전과 가스공사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 추이와 인상 변수를 종합·판단하고 전문가와 다방면의 여론을 수렴해 추후 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정이 최종안을 내놓기 전까지 전기·가스 요금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에선 치열한 토론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분기 전기요금을 1kWh(킬로와트시)당 11.5% 인상하는 안과 한 자릿수 인상안 2개 등 복수안을 제시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근로시간 개편안 파동을 거론하며 “국민에게 설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획재정부도 물가 상승 압박을 이유로 전기요금의 10% 이상 인상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예상된 정부의 요금 인상안 발표 직전 여당이 제동을 걸고 나선 건 최근 윤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나란히 고전 중인 가운데 전기·가스 요금 인상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또 하나의 대형 악재가 될 수 있음을 의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이날 당내에서 “내년 총선 전까지 에너지 요금을 동결하는 카드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여권 내에선 이번 결정을 두고 윤 대통령 지시 이후 정책 주도권이 정부에서 당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올해 초 난방비 폭탄 논란 당시 “문재인 정부 때 가스비 인상을 미룬 포퓰리즘 정책 때문에 그 폭탄을 지금 정부와 서민들이 다 뒤집어쓴다”고 비판한 바 있다. 총선 표심을 의식한 집권여당이 비슷한 태도를 반복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 산업부 “계속 미루면 장기적 큰 부담”
정부는 전기·가스 요금의 한 자릿수 인상안마저 보류되자 “향후 한국전력의 손실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전력 생산원가 대비 낮은 전기요금으로 한전의 적자 폭이 확대되면 회사채를 추가로 발행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위축된 회사채 시장의 자금 경색을 가중시킬 수 있는 것. 3월 24일 기준 발행된 한전채 물량은 약 7조6000억 원에 이른다. 이날 동결된 가스요금도 가스공사의 악화된 재무 상황과 직결돼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가스공사 미수금(손실액)은 8조6000억 원까지 불어나 사실상 자본잠식 상태다.
산자부에 따르면 올 2분기(4∼6월) 전기 및 가스요금 조정이 없으면 올해 한전 영업적자는 15조 원, 가스공사 미수금은 13조 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부는 무더위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3분기(7∼9월) 이후에는 큰 폭의 전기요금 인상이 어렵다는 점에서 2분기에 선제적 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산업부 당국자는 “전기료 인상을 계속 미루면 장기적으로 더 큰 국민 부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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