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관의 말과 처신을 보면 마음은 콩밭이 아니라 ‘여의도밭’에 와 있다.”(민주당 박범계 의원)
야당 2년 차가 된 민주당 의원들이 가장 자주 언급하는 국무위원은 한 장관이다. 당의 공식 논평에서도 한 장관에 대한 성토가 줄을 잇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아닌 대정부 질문에서도 야당 의원들은 한 장관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3일 열린 정치·외교·통일 분야 대정부질문에서는 한 장관에게 “애창곡이 있느냐”(민주당 김회재 의원)는 질문까지 나왔다.
1973년생인 한 장관은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해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2001년 검찰에 발을 들인 이후 20년 넘는 공직 생활 대부분을 검찰에서만 보냈다. 선거 출마 경험도, 특정 정당의 입당 경험도 없다.
국무위원이 되기 전까지는 국회에 출석할 일도 별로 없었던 한 장관에게 야당 의원들의 공세가 집중되는 건, 한 장관이 윤 대통령의 자타공인 최측근이기 때문이다. 한 장관은 평검사 시절부터 이른바 ‘윤석열 사단’의 에이스였다. 문재인 정부 시절 검찰총장에 오른 윤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에 한 장관을 추천할 정도로 그를 아꼈다. 지난해 4월 13일 당선인 신분이던 윤 대통령은 한 장관을 포함한 내각 인선 발표를 직접 했다. 이런 한 장관을 향한 야당의 공세가 집중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 공세 이어가지만 野 내부에서도 “존재감만 키워줘” 우려
“민주당 분들이 저한테 너무 관심이 많은 게 신기하다.”
한 장관은 7일 부산고검에서 열린 정책간담회 참석 전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김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은 한 장관에 대한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민주당이 한 장관을 집중 포격하는 이유 중 하나는 문재인 정부 때부터 이어진 ‘구원(舊怨)’이다. ‘문재인의 페르소나’로 불리며 승승장구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검찰의 수사로 결국 공직에서 물러났다.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이 주도했던 검찰의 ‘조국 수사’는 문재인 정부 몰락의 시작이자,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문재인 정부를 상징하는 단어로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됐다.
민주당이 기를 쓰고 밀어붙였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역시 마찬가지. 민주당은 위장 탈당이라는 극한의 꼼수까지 동원하며 검수완박 입법을 성사시켰다. 그러나 지난해 8월 한 장관이 이끄는 법무부는 법의 시행령을 고쳐 일부 공직자 범죄, 선거 범죄 등에 대해 검찰의 직접 수사가 가능하도록 했다. 헌법재판소의 검수완박법 결정이 나온 뒤 황운하, 김용민 의원 등 야당 강경파 의원들이 “일개 법무장관이 국회 입법 권력에 정면 도전했다”, “탄핵이 답”이라고 주장한 이유다.
이런 표면적인 이유 외에 야당 의원들이 한 장관을 벼르는 건 언쟁에서 쉽게 물러나지 않는 한 장관의 성향도 영향을 미쳤다. 검찰 내의 대표적인 달변가로 꼽혔던 한 장관은 국회 상임위원회에서도 야당 의원들의 공세에 선뜻 굴하지 않는다.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도 직설적으로 야당 의원들의 발언에 응수한다.
5일 대정부질문을 위한 국회 출근길이 대표적이다. 그는 자신을 ‘조선 제일혀’로 비판한 김 의원을 향해서는 “덕담으로 하신 것으로 생각한다. (저에게) 덕담하셨으니 저도 덕담을 해드리자면, 거짓말이 끊기 어려우시면 좀 줄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또 야당 의원들이 자신의 화법을 ‘초등학생 화법’이라고 비판한 것을 두고는 “국회에서는 자기 잘못을 지적받으면 호통치고 고압적으로 말을 끊고 그냥 넘어가자 이러시더니, 끝나고 나면 라디오에 달려가서 (제가) 없는 자리에서 욕하고 뒤풀이하시는 것이 요즘 민주당의 유행인가 보다”라고 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정치인 출신도 아닌 장관이 저렇게 국회 밖에서까지 야당 의원들과 말싸움을 벌인 경우를 보지 못했다”며 “일부 강경파 의원들이 한 장관을 감정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건 맞는데, 한 장관도 똑같이 맞대응하니 계속 시끄러운 것”이라고 했다.
다만 총선이 다가오면서 야당 내에서는 한 장관을 향한 공세의 수위를 조절하려는 기류도 감지된다. 문재인 정부 때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 대통령 사이에 불거졌던 ‘추-윤 갈등’의 기억 때문이다. 한 친문(친문재인) 진영 의원의 말.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당시 추 전 장관이 더 정교하게 ‘추-윤 갈등’을 다뤘다면 정국은 달라졌을 것이다. 추 전 장관의 거친 공세에 결론적으로 윤 대통령의 정치적 존재감만 커졌다. 마찬가지로 지금 한 장관을 너무 몰아세우면 ‘정치인 한동훈’의 길을 야당이 나서서 열어주는 꼴이 될 수 있다.”
헌재 결정 이후 민주당 내 강경파 의원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던 ‘한동훈 탄핵론’이 별다른 당내 공감을 얻지 못하고 수면 아래로 내려간 것도 상당수 야당 의원이 이런 인식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 ‘검사 공천’ 우려 등에 與도 언급 자제
“야당의 공세에 굴하지 않고 핵심을 꿰뚫어 맞받아치는 능력은 솔직히 어지간한 현역 의원들보다 훨씬 낫다.”
여권 고위 관계자가 내놓은 한 장관에 대한 평가다. 실제로 친윤(친윤석열)-비윤(비윤석열) 구분 없이 상당수 여당 의원은 국회 인사청문회와 상임위, 대정부질문 등에서 보여준 한 장관의 모습에 대해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 상황.
‘표가 모이는 곳’을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여당 의원들이 한 장관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지난해 8월 열린 국민의힘 워크숍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당시 만찬에는 윤 대통령은 물론 장차관과 대통령실 참모들이 대거 참석했다. 당시 만찬장 상황에 대한 한 여당 의원의 설명.
“만찬이 끝나고 윤 대통령과 사진을 찍기 위해 의원들이 길게 줄을 섰다. 대통령과 사진을 찍고 난 의원들은 곧바로 한 장관에게 향했다. 나도 기다렸다가 한 장관과 나란히 서서 사진 한 장 찍었다.”
이런 한 장관을 두고 여권에서 “내년 총선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친윤 진영의 박수영 의원은 지난달 28일 “73년생 한 장관은 ‘X세대’의 선두 주자라고 볼 수 있는데, 그분이 나와서 기존의 586, 소위 운동권 세력을 물리치고 영호남 지역갈등까지도 전부 없애버리는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라고 했다. 정작 당사자인 한 장관은 “최선을 다해 할 일을 하겠다”며 출마설에 거리를 뒀지만, 정작 여권 내에서는 “험지에 나서야 한다”, “아니다. 안전한 지역에 출마해 당의 전체 선거를 이끌어야 한다” 등 한 장관의 예상 출마지역을 둘러싼 설왕설래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최근 국민의힘 내에서는 한 장관을 둘러싼 기류도 묘하게 달라지고 있다. 지난달 말, 한 친윤 핵심 의원은 여당 의원들이 모여 있는 단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대화방에 ‘한 장관을 끌어들이는 건 자중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3·8 전당대회를 거치며 ‘김기현 체제’가 출범한 상황에서 한 장관의 총선 역할론을 언급하기보다는 김기현 대표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취지다. 여당의 한 초선 의원은 “최근 여당 의원들이 더 이상 공개적으로 한 장관 관련 발언을 내놓지 않는 것도 이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이라며 “게다가 굳이 여당이 나서지 않아도 민주당 의원들이 알아서 한 장관을 적극 홍보해 주고 있지 않으냐”고 했다. 일부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한 장관이 내년 총선에 나서지 않고 계속해서 내각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여기에 ‘검사 공천’에 대한 여당 의원들의 위기감도 한 장관 관련 언급을 자제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한 장관 등 검사 출신 인사 수십 명이 내년 총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인위적인 물갈이에 대한 현역 의원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김 대표도 10일 “내년 총선과 관련해 ‘검사 공천’ 등 시중에 떠도는 괴담은 근거 없는 것이다. 특정 직업 출신이 수십 명씩 대거 공천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당 대표인 제가 용인하지도 않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이처럼 여당이 잠시 한 장관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고 총선이 다가올수록 한 장관의 거취를 둘러싼 여권의 갑론을박은 다시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현재 당내는 물론이고 여권 전체에서 한 장관을 능가하는 ‘슈퍼스타’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한 장관은 지난달 3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장래 정치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11%를 얻어 민주당 이재명 대표(20%)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한 장관의 미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이에 대해 여권 핵심 관계자가 전한 지난해 당선인 시절 윤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의 한 장면. 당시 회의에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였던 한 장관 등이 참석했다.
회의가 끝날 무렵 윤 대통령은 한 장관에게 “당신도 이제 정무직이야”라고 웃으며 말했다. 지금까지는 검찰 조직에서만 일해 왔지만, 앞으로는 국무위원으로 정부 업무 전반을 바라보는 시야를 갖추고 일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런 한 장관이 과연 ‘정무직’을 넘어 ‘정치인’으로 변모할 수 있을지는 내년 총선에서 총력전을 벼르고 있는 여야 모두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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