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관계 경색 속에서 북한 내 대남부서들의 역할도 표면적으로는 상당히 축소된 모습이다. 김정은 총비서가 남한을 향한 메시지를 내고 실제 ‘조치’도 이어지고 있지만 대남부서 핵심 인사들의 활동은 전혀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
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따르면 지난 11일 진행된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전원회의에는 리선권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오랜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보였다.
리선권은 지난 2022년 6월 당 중앙위원회 8기 5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김영철의 후임으로 통전부장으로 임명됐다. 같은 해 9월에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으로 자리했다. 그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보인다.
군 출신의 리선권은 김 총비서 집권 이후에는 대체로 대남부서에서 활동하며 지난 2018년 비핵화 협상 때 특히 두드러지게 활약했던 인사다. 우리 측 경제인들을 향한 ‘냉면 목구멍’ 발언 등으로 구설에 오르며 잘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비핵화 협상의 결렬 후 돌연 외무상에 오르면서 이례적 행보를 보였다. 대남통으로 분류됐던 인사가 외무상에 오른 것은 특이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이렇다할 외교 활동에 나서진 못했지만, 외무상으로서 담화를 내는 등 나름의 ‘역할’을 한 흔적이 뚜렷하게 남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해 노동당의 통일전선부장에 임명되며 ‘본업’에 돌아온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북한이 대남사업을 ‘대적사업’으로 전환한 상황에서 대남사업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의 ‘컴백’을 그의 대대적인 활동을 예상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정작 통전부장 임명 뒤에는 전원회의나 정치국회의, 중앙군사위원회 회의 등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다.
당·군·정 주요 간부 대부분이 참석했던 지난 2월 말 전원회의에서 최선희 외무상과 김여정 부부장이 각각 1열과 2열에서 확인된 것과 달리 리선권의 모습은 제대로 포착되지 않았다.
작년 12월 26~31일 진행된 ‘연말 전원회의’의 ‘대외·대남’ 분과 연구협의회에서는 외무상인 최선희가 중앙에 착석해 회의를 주도하는 모습이 확인되기도 했다.
통일전선부장 임명 후 본인 명의의 담화도 아직 내지 않고 있다. 근 1년 사이 북한의 대남 메시지는 김정은 총비서의 연설이나 공개활동 혹은 대외총괄인 김여정 부부장의 입을 통해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최고인민회의가 새로운 법의 채택과 사법기관의 인사를 다뤘다는 점에서 리선권의 회의 참석도 제대로 된 ‘활동’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중요한 내용은 김여정 부부장이 담화를 발표하며 국무위원회 위원으로서 또는 통전부장으로서 리선권의 역할이 없다는 것”이라며 “리선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대립과 대결이라는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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