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리스크’에 ‘돈봉투’ 의혹까지…위기 맞은 ‘이재명 체제’ [고성호 기자의 다이내믹 여의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19일 14시 00분



지난해 6‧1 서울시장 선거와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각각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오른쪽)와 이재명 대표가 지난해 5월 27일 경기 김포시에서 열린 수도권 서부 대개발 정책협약 기자회견을 마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해 6‧1 서울시장 선거와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각각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오른쪽)와 이재명 대표가 지난해 5월 27일 경기 김포시에서 열린 수도권 서부 대개발 정책협약 기자회견을 마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당 대표로서 깊이 사과드립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17일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관련해 “당은 정확한 사실 규명과 빠른 사태 수습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이 같이 말했다.

발언 도중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인 이 대표는 “민주당은 이번 사안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 확인된 사실관계에 따라서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조치를 다 할 것”이라며 “이번 사안을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아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도 확실하게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사안은 당이 사실 규명을 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수사기관에 정치적 고려가 배제된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요청한다”며 “송영길 전 대표의 조기 귀국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대국민 사과는 검찰의 강제 수사가 시작된 지 5일 만에 이뤄졌다. 지난 12일 검찰의 강제 수사가 진행된 뒤 미온적 태도를 보였지만 구체적 정황이 담긴 휴대전화 통화 내용 등이 나오자 태세 전환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검찰 수사에 대한 대응책을 놓고 당이 분열할 경우 자신의 리더십 역시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온적 대응으로 일관할 경우 비명(비이재명)계를 중심으로 지도부 비판론이 제기되면서 당 내홍이 재점화될 가능성을 고려했을 것이란 관측이다.

앞서 이 대표는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무더기 이탈표가 나온 직후 자신을 둘러싼 사퇴론과 관련해 당직 개편 등을 통해 후폭풍을 어느 정도 수습한 상황이었다.

일각에선 민주당이 자체 진상조사에 착수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대비해 형평성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이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해 ‘야당 탄압’으로 규정한 상황에서 다른 당내 인사들의 검찰 수사와 관련해 자체 조사를 진행시키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란 시각이다.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지난해 6월 1일 서울 중구 선거캠프 사무실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지난해 6월 1일 서울 중구 선거캠프 사무실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이런 가운데 송 전 대표의 조기 귀국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일단 송 전 대표는 22일 프랑스에서 기자회견 일정을 잡는 등 당장은 귀국하지 않을 태세다. 그는 프랑스 파리경영대학원(ESCP)에 방문 연구교수로 체류 중이다. 송 전 대표는 돈봉투 의혹과 관련해 “지금 나오는 문제는 내가 모르는 사안”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앞서 송 전 대표는 2021년 전당대회 승리 이후 진행된 대선 후보 선출 과정에서 이 대표를 간접적으로 지원한 것이 아니냐는 ‘이심송심(李心宋心)’ 논란에 휩싸였다.

아울러 이 대표가 지난해 대선 패배 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위해 사퇴한 송 전 대표의 지역구였던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밀월관계가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당 안팎에선 이 대표가 송 전 대표 귀국 요청 등을 통해 정면 돌파 의지를 밝혔지만 오히려 사법리스크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돈봉투 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당사자들을 현실적으로 일벌백계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또한 이 대표가 공식 사과를 하며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지만 사태 진화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이 ‘국면 전환용 기획수사’라는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섰지만 검찰 수사 과정에서도 당 이미지에 타격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부패 정당’ 프레임에 갇히면서 내년 4월 총선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대표가 고개를 숙였지만 민주당이 이 대표에 더해 의원들의 사법리스크도 떠안게 되면서 당 분위기는 이번 파장이 어디까지 갈지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검찰은 18일 “신속하고 공정하게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며 “사안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민주당에서도 수사에 적극 협조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번 의혹이 민주당의 대여 공세를 무디게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당 도덕성이 타격을 받으면서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내더라도 검찰 수사에 묻힐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도 민주당을 향해 이 대표를 언급하며 연일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김기현 대표는 17일 “송 전 대표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국회의원 배지를 얻은 이 대표이지만 송 전 대표를 즉각 귀국 조치시켜야 한다. 관련 민주당 의원 등이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남용하지 않고 수사 기관에 출석하도록 조치하는 등으로 엄중한 지시를 해야 마땅하다”고 “만약 그러지 않으면 이재명을 대선 후보로 선출했던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도 역시 돈봉투가 오갔다는 세간의 소문이 사실이라고 자인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18일 대검찰청을 방문해 돈봉투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또한 국민의힘은 돈봉투 제보센터를 통해 제보를 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운데)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기 위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운데)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기 위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시스
정치권 안팎에선 결국 당 차원에서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번 사태가 지속되면서 당에 이미지 타격을 주고 있는데 당 지도부가 검찰 수사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아울러 당 지도부가 자체 자정 기능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관련자들에게 출당 또는 탈당 권유 등의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종민 의원은 18일 “당의 윤리 감각이 엄청 퇴화되어 있다. 보통 이런 문제가 생기면 일단 당직에서 빼는 경우가 있고, 탈당을 하거나 자진 탈당을 권유하는 경우가 있다”며 “당 차원에서 최선을 다해 이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고 조치나 대응을 하는 자세를 갖춰야한다. 당의 존립을 좌우하는 문제로 생각하고 정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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