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독재와 전체주의에 속지 않기 위해 자유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신념을 가져야 하며, 힘을 합치고 연대해 자유를 위협하는 세력에 맞서야 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보스턴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에서 연설했다. 연설 주제는 ‘자유를 향한 새로운 여정(Pioneering a New Freedom Trail)’이다. 한국 현지 대통령 중 하버드대에서 연설한 건 윤 대통령이 처음이다. 다음은 연설문 전문.
‘자유를 향한 새로운 여정(Pioneering a New Freedom Trail)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스쿨 엘멘도프 학장님, 정치연구소 워렌 소장님, 그리고 세계의 미래를 이끌어 갈 여러분
110년 전, 대한민국의 초대 이승만 대통령께서 조국의 독립과 미래를 꿈꾸며 공부했던 이곳 하버드 대학교에서 대한민국의 제20대 대통령으로서 연설하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저는 서울중앙지검장이던 2018년, 하버드 대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그때 하버드 로스쿨 교수진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특히,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주신 윌리엄 알포드 교수님은 자유와 연대의 가치를 설명해 주셨고, 하버드 장애인 프로그램을 예로 들며 약자와의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제가 청년 법률가 때부터 가장 중요하게 여겨온 자유와 인권의 가치에 대해 한층 깊이 이해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자유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곧 자유 수호와 자유 확장의 역사였습니다. 신분의 질곡에서 해방되어, 자기 자신의 인생을 자유롭게창조해 나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기나긴 여정이었습니다. 보스턴에는 ‘자유의 길(Freedom Trail)’이 있습니다.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개척자들이 자유를 이야기하고 토론을 벌이던 흔적이 그 길 곳곳에 묻어 있습니다. 이들이 자유민주주의 국가 미국의 기틀을 만만들었고, 17세기에 성직자 양성 교육기관으로 설립된 하버드가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존 아담스, 존 핸콕 등 ‘건국의 아버지’들이 하버드에서 키운 자유에 대한 열망은 미국 독립선언서와 헌법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미국은 독립과 건국 과정을 통해 자유를 쟁취하고 확대해 나갔습니다. 미국 건국 초기인 18세기 후반의 자유는 ‘레세페어(laissez-faire)’라고 불리는, “각자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는” 형태의 자유였습니다. 처음에는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는 자유시장이 다 좋은 것으로 여겨졌지만, 19세기 후반 ‘트러스트’라는 독점 대기업들의 횡포가 극심해지면서 결국 산업사회에서 독과점이 경제적 약자의 자유를 위협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과 함께, 공정한 시스템에 대한 요구가 분출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1890년에 제정된 셔먼법은 자유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셔먼법은 하버드 출신인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의 결단으로 강력히 집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재임 기간 중 40여 건의 트러스트를 기소하여 ‘트러스트 분쇄자(trust buster)’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기존의 자유방임에 ‘공정한 경쟁’, ‘공평한 기회’의 가치가 더해져 비로소 타인과 ‘공존’하고 ‘연대’하는 자유로 발전하였습니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할 때 바로 그 책임은 자유가 공존하기 위한 조건인 공정(fairness)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법의 지배(Rule of law)는 자유의 공존 조건인 공정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정의 가치, 공정한 경쟁 원리는 미국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뒷받침했습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자유의 역사는 태평양 너머 대한민국에도 뿌리를 내렸습니다. 1950년 한국이 공산주의로부터 위협을 받았을 때 미국을 비롯한 자유 진영 국가들이 참전하여 함께 싸웠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윌리엄 해밀턴 쇼(William Hamilton Shaw) 대위는 하버드에서 라이샤워 교수의 지도로 동아시아학 박사과정을 밟던 중 6.25 전쟁에 지원하여 28세의 나이로 전사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당시 그가 전사한 서울 녹번동 언덕에 추모공원을 건립하여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하버드인’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오신 쇼 대위의 손자 윌리엄 캐머런 쇼(William Cameron Shaw)와 그의 어머니(쇼 대위의 며느리) 캐럴 캐머런 쇼(Carole Cameron Shaw)도 함께하고 계십니다. 어디 계시는지요?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하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조금 전 저는 하버드 추모교회(Memorial Church)에 들러,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18명의 졸업생들을 추모했습니다. 이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대한민국은 자유를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자유를 빼앗으려는 공산 전체주의 세력의 불법적인 시도를 저지하고 억제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로 70년을 맞이한 한미동맹은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번영을 일구어 온 중심축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시민의 자유 수호를 위한 안전판의 상징이었습니다. 그제 저와 바이든 대통령은 ‘미래로 전진하는 행동하는 동맹’의 비전을 담은 공동성명을 채택했습니다. 한미동맹은 단순히 이익에 따라 만나고 헤어지는 편의적 계약관계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가치동맹’입니다. 지속가능하고 회복력 있는 동맹,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정의로운 동맹입니다.
하버드 학생과 교수진 여러분 지금 전 세계를 돌아보면 우리가 땀과 희생으로 지켜온 자유와 민주주의가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고, 위기에 처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공동체의 의사결정 시스템입니다. 민주주의는 진실과 자유로운 여론 형성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허위 선동과 가짜뉴스가 디지털, 모바일과 결합하여 진실과 여론을 왜곡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자유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AI 기술이 상황을 더 심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상식과 진실, 그리고 양심으로 대표되는 지성에 기반하는 제도입니다. 거짓 선동과 가짜뉴스라는 반지성주의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협하고 위기에 빠뜨립니다. 조직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흔들고 위협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바로 독재와 전체주의 세력입니다. 그리고 이들 편에 서서 이익을 취하려는 세력도 있습니다. 이들에 맞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려면 용기와 연대가 필요합니다. 자유의 열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강력한 연대입니다. 국제적 연대도 필요합니다. 자유는 평화를 보장합니다.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과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나라는 다른 사람의 자유, 다른 나라의 자유를 존중합니다.
국제사회에서 다른 사람의 자유, 다른 나라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는 종종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로 나타납니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를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합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이 1년을 넘었습니다. 국제법을 위반한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자유와 인권이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대한민국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자유 수호를 위한 인도적, 재정적 지원을 계속 확대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자유를 무시하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에 국제사회는 용기 있고 결연한 연대로서 대응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시도가 성공할 수 없음을 입증시키고 앞으로 이런 시도를 꿈꿀 수 없게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자유를 무시하는 독재적이고 전체주의적 태도의 결정판은 바로 북한입니다.
북한의 불법적인 핵무기 개발과 핵 협박은 한반도뿐 아니라 주변국, 나아가 세계의 평화와 자유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체주의적 태도는 필연적으로 북한 내 참혹한 집단적 인권 유린 상황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지난달 최초로 북한 인권 실상 보고서를 공개 출간하였습니다. 500여 명의 탈북자 증언에 기반한 보고서는 남한 드라마를 보았다는 이유로, 성경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공개 총살당한 끔찍한 사례들을 담고 있습니다. 인권의 개선은 그 실상의 공개에서 출발합니다. 국제사회의 폭넓은 인식과 각성이 상황의 개선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결국 세계 어디서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심각한 도전은 바로 독재와 전체주의에 의해서 이뤄집니다. 그럼에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이들은 민주 세력, 인권운동가 등으로 위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늘 경계하고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자유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자유의 전당 하버드 대학의 학생과 교수진 여러분, 자유는 혼자 지킬 수 없습니다. 자유를 위협하는 세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힘을 합치고 연대해야 합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하버드 출신 정치인 John F. Kennedy 대통령의 1963년 서베를린 연설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Freedom is indivisible, and when one man is enslaved, all are not free” 자유를 위협하는 세력은 공동체 안에도 있고 공동체 밖에도 있습니다. 어느 한 사람의 자유도 소홀히 취급된다면 그 공동체는 자유 사회가 아닙니다. 자유 사회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자유인이고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자유를 누리는 데에는 일정한 경제적, 문화적 여건이 필요합니다. 자유를 누리는데 필요한 여건은 자유 시민들이 함께 연대하여 그것이 필요한 사람에게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유와 연대는 그 개념이 서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자유가 없이 누군가에게 지배당하는 사람 사이에서는 연대라는 개념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것으로 보이는 현상이 있을지라도 그건 명령에 의한 것입니다.
하버드인 여러분, 지금은 디지털 시대입니다. 우리는 이제 디지털 시대의 자유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합니다. 인류는 16세기 대항해(大航海) 시대에 봉건시대의 신분 질서에서 벗어나근대적 의미의 직업과 소유권, 자유계약의 질서를 구축했습니다. 20세기 초에 미국은 자유방임이 양산할 수 있는 불공정을막고자 독과점과 싸우면서 공정한 시장 질서를 정착시켰습니. 이제는 디지털 심화 시대에 맞춰 새로운 규범과 질서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디지털 기술로 인해 막대한 양의 정보가 쉼 없이 생산되고 공유되고 있습니다. 그 덕에 인류의 삶은 한층 편리하고 풍요로워졌습니다만,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는 부작용도 초래되고 있습니다. 자유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국가권력이 디지털 기술을 악용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디지털 전체주의’로 인한 폐해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유를 침해하는 디지털 기술의 악용은 전 세계 자유시민이 연대하여 이를 막아야 합니다.
저는 지난해 9월, 뉴욕대학에서 ‘디지털 자유시민을 위한 연대’를 촉구하는 ‘뉴욕 구상’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 핵심은 디지털 기술과 서비스의 향유를 인류의 보편적 권리로 규정하고 디지털 시대가 지향해야 할 비전을 제시한 것입니다.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디지털 질서가 정당성, 통용성, 지속가능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 질서와 규범이 세계시민의 자유와 후생을 극대화하고 공정한 기회가 보장되어야 하며, 특히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국제사회도 함께 연대해야 합니다. 디지털 선도국은 디지털 기반이 미흡한 나라를 교육과 시스템 지원 등으로 도와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보편적 정의에 터 잡은 공정한 디지털 질서가 국제사회에 구축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아울러 디지털 ODA도 확대하여 디지털 기술과 문화의 향유를 세계시민이 공유하게 노력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하버드인들도 그 연대와 협력에동참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오늘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그보다 한 사람의 자유인으로서, 자유의 전당 하버드에서 여러분과 자유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어 매우 기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오래오래 기억할만한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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