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여의도에서 화제였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김현아는요’ 발언에 대한 민주당 측 설명입니다. 4월 24일 당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나온 이 대표는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대뜸 “김현아 전 의원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요? 몰라요?”라고 되물었습니다. 김 전 의원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와 관련해, 그건 취재하고 있냐는 취지로 따진 거죠.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비공개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전 의원 수사 관련 언론 보도가 거론됐다고 합니다. ‘우리도 김 전 의원 문제를 언급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는데, 그게 뇌리에 남았는지 이 대표가 기자들 앞에서 예정에 없던 말을 했다는 겁니다. 또 다른 회의 참석자도 “이 대표가 ‘내가 이런 말을 하기엔 (당 대표로서) 좀 그렇겠지?’라고 하고는, 자기도 모르게 툭툭 튀어나오는 것 같더라”라고 했습니다. 당 대표로서의 이재명과 정치인 이재명 사이에서의 ‘정체성 고민’이란 거죠.
‘김현아는요’가 화제가 되자 그는 재미라도 붙인 건지 바로 다음 날 ‘박순자는요’를 꺼내 들었습니다. “박순자 의원 수사는 어떻게 되어갑니까? 관심이 없으신가 보군요?”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의원 공천권을 빌미로 금품을 수수한 의혹으로 구속기소 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박순자 전 의원 카드로 역공을 시도한 겁니다.
민주당의 돈봉투 사태 속 이 대표가 연이틀 여당 정치인들의 과거 사건을 꺼내든 건 ‘부패 원조 맛집은 국민의힘’이란 걸 강조하기 위한 일종의 ‘물타기’ 전략입니다. 하지만 이런 수준의 논점 흐리기로 돈봉투 의혹을 덮을 순 없겠죠. 무엇보다 당 대표로서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지적이 당내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남의 잘못으로 나의 잘못을 덮으려는 프레임 전환은 오래된 정치권의 병폐다. 프레임 전환을 시도할 게 아니라 우리의 잘못을 먼저 해소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다.”(이원욱 의원, SBS라디오) “민주당 입장에선 답답한 측면이 있긴 하다. 그런데 저런 말을 당 대표가 직접 하는 건 조금 부적절해 보인다.”(복기왕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YTN뉴스)
제가 당일 썼던 기사(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30425/119004476/1)에도 비슷한 반응의 댓글들이 이어졌습니다.
“유치원생의 잘못에 대해 선생님이 지적하니까 ‘쟤는요?’ (라고 묻는) 것과 한 치의 차이도 없다. 저게 대한민국 제1당 대표 수준이니…” (heju****) “국민의힘이 잘못한 건 그쪽 잘못이고 민주당이 잘못한 건 민주당도 썩었다는 건데 당 대표라는 사람이 민주당 대책을 묻는 기자에게 ‘국민의힘 수사는 어떻게 되고 있냐’는 게 그게 국민을 위한 정치냐.”(lkp6****) “저도 보니까 조명 같은데, 저도 고발하시길 바랍니다.”
4월 26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장에선 지난해 11월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심장질환 아동을 만나 촬영했던 영상이 재생됐습니다. 앞서 장경태 최고위원은 김 여사가 당시 촬영을 위해 조명을 동원했다고 주장했다가 대통령실로부터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발당했죠. 최근 장 최고위원이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송치된 가운데 이 대표가 문제의 영상을 다 같이 보자고 한 겁니다.
최고위원들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영상을 지켜보던 이 대표는 “저희가 웃고 얘기하지만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판단을 하기에 앞서 육안으로 봐도, 상식적으로 봐도 조명을 사용한 게 맞는 것 같다”라며 자신도 고발하라고 자신 있게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실제 고발당했죠.
국민의힘 이종배 서울시의원은 다음날 이 대표를 경찰에 고발하면서 “최근 경찰 수사 결과 조명이 설치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이 대표가 공개 석상에서 조명이 설치됐다고 주장한 것은 공연히 허위 사실을 적시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행정 낭비인가요.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도 “당 대표가 ‘나도 고발하라’라는 건 스스로 정치를 포기한 채 정치를 사법화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한 당직자는 “가뜩이나 자신의 사법리스크로 당이 지난 몇 달을 고생했는데 굳이 또 과도한 언행으로 추가 고발당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냐”라며 “저게 지금 최고위원회의에서 언급할 만한 사안이긴 하냐”라고 한탄하더군요.
돈봉투 사건으로 수세에 몰린 탓인지, 최근 이 대표의 발언 수위는 나날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4월 22일 트위터엔 여권의 주 69시간제 관련 정책 기사를 링크하며 “‘남 탓’ 본색이 정신질환 수준까지 발전한 듯”이라고 썼습니다.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고 차별과 편견을 조장하는 표현이라고 느껴집니다. 27일 의원총회에선 윤석열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비판하며 “일본엔 퍼주고 미국엔 알아서 한 수 접는 ‘호갱 외교’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호갱은 ‘호구’와 ‘고객’을 합친 말로, 어수룩해서 속이기 쉬운 손님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죠. 사적 자리도 아니고 공개 의원총회에서 당 대표가 굳이 저런 표현을 썼어야 했을까요.
아무래도 이런 ‘날 것’ 그 자체의 멘트가 나올 때마다 이 대표의 강성 지지층인 ‘개딸’들에게선 “역시 사이다” “이게 진짜 이재명” 등 격한 반응이 이어지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이 때문에 이 대표도 발언을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질 것을 예상하면서도 주체하지 못하고 일단 던지고 보는 거겠죠.
하지만 이는 결국 정치의 품격, 지도자의 자격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어느 조직이든 ‘대표’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조직의 ‘군기반장’을 자처해 조직원들의 잘못된 부분은 지적해 결과적으로 조직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이끄는 겁니다. 실제 민주당의 이전 당 대표들은 부적절한 언행을 하는 의원에겐 “국민께 걱정을 드리는 언동을 하지 말라”(이낙연 전 대표)고 공개적으로 주의를 시키는가 하면,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킨 의원에겐 경고와 함께 사과 등 공식 입장 표명을 요구(김태년 전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도리어 지도부가 앞장서 부적절한 표현을 하고 자기들끼리 감싸고 독려하니 정치의 품격이 연일 나락으로 떨어지는 겁니다. 이 대표가 “나도 고발하라” 했던 같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장 최고위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방미 중 화동의 볼에 입을 맞춘 것을 두고 ‘성적 학대 행위’라고 주장했다가 또 논란을 일으켰죠. 국민의힘은 “없는 외교 참사를 만들기 위해 혈안인 것 같다”라며 장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안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출했습니다. 장 최고위원은 지난해 11월에도 조명 의혹 논란과 함께 ‘김건희 빈곤 포르노’ 발언으로 국회 윤리위에 제소됐습니다. 국민의힘 장동혁 원내대변인은 “장 최고위원이 또다시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막말을 해서 징계안을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민주당 전재수 의원도 “저라면 장 최고위원처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렇게 (성적 학대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좀 절제된 비판이 필요하다는 아쉬움이 있다”(4월 28일 CBS라디오)라고 지적했더군요.
한 야권 관계자는 “지금은 정부·여당이 워낙 못하기 때문에 민주당은 가만히만 있어도 반사 이익을 얻을 수 있는데, 170명이 각자 알아서 날뛰니 매일같이 스스로 지지율을 깎아 먹고 있다”라며 “내년 총선 때까지 이를 제어할 리더십이 시급하다”라고 했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맞는 말’ 대잔치로 내부에 매서운 쓴 소리를 하려면 일단 리더 본인이 누구보다 떳떳해야 하겠죠. 이래서 많은 분들이 ‘이재명 사법리스크’가 민주당의 가장 최대 리스크라고 우려했던 건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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