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달인’ 의원들도 예측 못 하는 선거, 원내대표가 뭐길래[한상준의 정치인사이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2일 14시 00분


“이번에 누가 될 것 같아요?”
3월부터 4월까지, 여야 국회의원들은 사석에서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의원들조차도 새 원내대표에 누가 당선될지 선뜻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7일,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28일 임기 1년의 원내대표를 뽑았다.

정치를 업(業)으로 하는 의원들에게 사실 선거는 일상이다. 일단 총선에서 이겨야 국회에 입성할 수 있고 지방선거, 대통령선거도 당의 일원으로 치러야 한다. 총선, 지방선거, 대선 등에 앞서 치러지는 당내 경선도 있다. 원칙적으로 2년마다 열리는 전당대회 역시 선거다.

이처럼 선거에 이골이 난 의원들이지만, 유독 원내대표만큼은 “결과 예측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한 중진 의원은 “지금까지 원내대표 선거를 10번 넘게 했지만, 결과가 내 예상대로 나온 적은 몇 번 없다”고 했다.


이번 여야 원내대표 선거 역시 마찬가지였다. 동갑내기인 윤재옥 원내대표와 김학용 의원의 양자 대결로 치러졌던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거는 “팽팽한 접전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65표를 얻은 윤 원내대표가 44표를 얻은 김 의원을 여유 있게 제쳤다. 선거 뒤 여당 의원들 대다수는 “스무 표 이상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3주 뒤 치러진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서도 의원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4파전으로 치러졌던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 상당수 야당 의원들은 “그래도 결선투표까지는 가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박광온 원내대표가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얻어 결선투표는 열리지 않았다. 민주당 관계자는 “2위와의 격차가 꽤 벌어졌다”고 전했다.

● 院內 업무 총괄하는 당의 2인자
원내대표 선거의 예측이 어려운 건, 오로지 의원들만 참여하는 무기명 투표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통상 전당대회의 경우 친윤(친윤석열), 비윤(비윤석열), 친명(친이재명), 비명(비이재명) 등 계파 대결 양상으로 치러지지만, 원내대표 선거는 다르다. 개별 의원의 친분 관계, 당 운영에 대한 개별 의원의 인식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과거 원내대표 선거에 뛰어들었다가 고배를 들었던 한 야당 의원의 회고.
“선거 운동 기간 동안 의원 명단을 펼쳐놓고 체크를 한다. 확실하게 나를 찍을 것 같은 의원들은 동그라미, 중립이면 세모, 경쟁 후보를 찍을 게 확실하면 엑스(×) 표시를 하는 식이다. 문제는 결과를 보니 나를 찍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의원 중에 경쟁 후보를 찍은 사람이 적지 않았다는 거다. 차마 면전에 대고 ‘당신 못 찍겠다’는 말을 못 하니 내 앞에서는 나를 지지하는 척했던 것이다.”
여기에 서로 경쟁 계파에 속해 있더라도 지역구 예산을 따내기 쉬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계수조정소위 등 상임위원회 인선을 약속 받고 표를 찍어주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예측 불허의 선거전이고, 너무 적은 표를 받으면 공개 망신을 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원내대표를 희망하는 의원들은 매년 속출한다. ‘현역 의원들의 반장’ 격인 원내대표의 막강한 권한 때문이다.

원내대표는 3김(金) 시대만 해도 ‘원내총무’로 불렸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제왕적 총재였던 3김의 지시를 받드는 참모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3김이 퇴진하고, 원내 정당 강화 움직임이 불면서 2003년 열린우리당(현 민주당)이 원내대표로 명칭을 바꿨고, 한나라당(현 국민의힘)도 곧바로 동참했다. 원내대표는 통상 3선 이상 중진 의원들이 맡지만, 원내교섭단체(20석)를 꾸리지 못하는 정당의 경우 재선 혹은 초선 의원이 맡는 경우도 있다.

원내대표로 명칭이 바뀌면서 위상도 당 대표에 이은 ‘넘버2’로 높아졌고, 권한도 세졌다. 당직 인선, 후보자 공천 등 당의 사무는 당 대표에게 결정권이 있지만 상임위 배치, 여야 입법 협상, 정부 예산안, 인사청문회 등 국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다 원내대표의 소관 사항이다. 원내대표가 ‘원내 사령탑’, ‘원내 컨트롤타워’로 불리는 이유다.
여기에 당의 2인자로서 당무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최고위원회의 일원으로 주요 당무에 관여할 수 있고 당 대표가 임기 만료 전 물러나면 당 대표 권한대행은 원내대표가 맡는다. 특히 4년의 회기 중 총선 직전인 마지막 해 원내대표의 정무적 힘은 더 강하다. 여권 관계자는 “본인이 불출마를 선언하지 않는 한 현직 원내대표가 공천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며 “게다가 공천 과정에서 원내대표는 적잖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했다.

또 각 당 최고위원들의 위상이 달라진 것도 원내대표의 인기가 높아진 배경으로 꼽힌다. 한 야권 인사는 “최고위원은 통상 중진들의 몫이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여야 모두 초·재선들이 최고위원을 맡는 흐름이 뚜렷해졌다”며 “중진 의원들이 정치적 체급을 키울 수 있는 길은 원내대표밖에 없게 됐다”고 했다.

● ‘윤재옥-박광온’ 체제의 국회는?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왼쪽)과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왼쪽)과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난달 여야는 나란히 원내 사령탑을 새롭게 뽑았다. 1년 동안 원내 협상을 벌이게 될 윤 원내대표와 박 원내대표는 개인적으로 별다른 교분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출신인 윤 원내대표는 대구에서만 내리 세 차례 당선됐다. MBC 기자 출신인 박 원내대표는 고향인 전남 해남에 출마해 한 차례 고배를 든 뒤 경기 수원에서 세 번 이겼다.

그러나 두 사람의 공통점도 있다. 신중한 언행으로 동료 의원들의 신망을 받아왔고, 오랜 국회 경험에도 불구하고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서기보다는 2선에서 활동했다.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로 꼽히는 윤 원내대표지만, 다른 윤핵관들과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여왔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장제원, 권성동 의원이 전면에 나서 활동했던 ‘윤핵관’이라면 윤 원내대표와 이철규 사무총장은 공개 행보 대신 뒤에서 조용히 할 일을 했던 ‘윤핵관’으로 봐야 한다”고 전했다.

박 원내대표 역시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부터 친문으로 꼽혔지만, 친문 핵심과는 거리가 있었다. 여기에 지난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낙연 전 국무총리를 도운 탓에 이재명 대표 체제 이후 자연스럽게 비주류로 분류됐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지난해 원내대표 선거에서 패한 뒤 박 원내대표는 1년 동안 조용하지만 치밀하게 선거 운동을 벌여왔다”며 “차분하고 적을 잘 만들지 않는 박 원내대표의 성품 때문에 친명 의원 중에도 박 원내대표를 찍은 의원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이런 두 원내대표의 특징은 원내대표단 인선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원내대표 간 담판에 앞서 여야 물밑 협상을 진행하는 원내수석부대표에 윤 원내대표는 이양수 의원(강원 속초-인제-고성-양양)을, 박 원내대표는 송기헌 의원(강원 원주을)을 임명했다. 이 의원과 송 의원 모두 내부는 물론이고 상대 당 의원들로부터도 “대화가 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들이다.

비슷한 성향의 두 사람이 여야의 원내 사령탑이 되면서 국회에서는 “대화를 통한 타협의 정치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야의 극한 대치가 쉽사리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승부를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민주당의 직회부와 정부 여당의 거부권 대결로 인해 여야의 상호 신뢰는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이에 따라 두 원내대표는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기도 전부터 서로를 향한 견제에 나섰다. 윤 원내대표는 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박 원내대표를 향해 “숫자의 힘으로 일방적인 국회 운영을 하고 있는 입법 폭주를 멈추고, 저와 함께 의회 정치 복원에 힘쓰자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21대 국회 내내 이어지고 있는 민주당의 입법 독주를 끝내자는 당부다.
반면 박 원내대표는 이날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거부권과 관련해 “필요한 경우엔 대통령의 권한”이라면서도 “국회에서 심의를 거쳐 통과된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심사숙고해야 하고,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간호법 등 민주당이 직회부를 통해 의결한 법안들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고 수용하라는 압박이다.

새롭게 꾸려진 여야 원내 지도부에 대변인단이 강화된 것도 “내년 총선까지 펼쳐질 여론전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두 원내대표의 뜻이 반영된 조치다. 윤 원내대표는 원내대변인에 장동혁 전주혜 의원을 임명했다. 두 의원 모두 21대 국회에서 원내대변인을 지냈지만 윤 원내대표가 다시 한 번 대(對)언론 창구 역할을 맡긴 것. 박 원내대표도 김한규 이소영 원내대변인에 더해 원내경제대변인을 신설하고 홍성국 의원을 발탁했다.

또 ‘넘버2’의 한계로 두 원내대표 간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여야가 ‘윤석열 대 이재명’이라는 대립 구도를 여전히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원내대표가 실타래를 풀어가기는 쉽지 않다는 것. 한 여권 관계자는 “전임 원내대표였던 주호영, 박홍근 의원 사이도 나쁘지 않았다”며 “문제는 여야 수뇌부가 총선을 앞두고 지지층을 의식한 강경책을 고수한다면 두 원내대표가 독자적인 움직임을 보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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