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앞뒤 안 맞는 간호법, 오류 있는 채 본회의까지 통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5일 11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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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열린 제405회 국회(임시회) 제5차 본회의에서 간호법안(대안)에 대한 수정안이 재석 181인, 찬성 179인, 반대 0인, 기권 2인으로 통과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열린 제405회 국회(임시회) 제5차 본회의에서 간호법안(대안)에 대한 수정안이 재석 181인, 찬성 179인, 반대 0인, 기권 2인으로 통과되고 있다. 뉴스1


극심한 의료계 직역 간 갈등을 불러일으키며 ‘의료 대란’ 우려까지 유발한 간호법 제정안이 기본 서식에서부터 오류가 있는 채로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한 것으로 5일 확인됐다. 지난해 5월 이 법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복지위)를 통과한 뒤 2월 ‘패스트트랙’으로 본회의에 회부될 때까지 8개월 넘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오류가 수정되지 않았고, 결국 지난달 27일 야당 주도로 본회의까지 통과했다. 국회 사무처 직원들이 뒤늦게 오류를 발견해 수정했지만, 이 법이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돼 본회의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심사가 허술하게 이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 2조. 간호사와 전문간호사, 간호조무사의 정의를 이 법 ‘제4, 5, 6조’에 따라 규정한다고 했으나, 정작 관련 내용은 ‘제3, 4, 5조’에 있다.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 2조. 간호사와 전문간호사, 간호조무사의 정의를 이 법 ‘제4, 5, 6조’에 따라 규정한다고 했으나, 정작 관련 내용은 ‘제3, 4, 5조’에 있다.


‘앞뒤 안 맞는’ 간호법
문제가 된 조항은 간호법의 적용 대상인 간호사와 전문간호사, 간호조무사의 개념을 정의한 제2조다. 여기서 간호법은 간호사를 ‘제4조’에 따른 면허를 받은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 전문간호사와 간호조무사는 각각 ‘제5, 6조’에 따른 자격인정을 받은 사람으로 규정했다.

그런데 제2조의 내용과는 달리 실제 간호사 면허에 관한 내용은 제4조가 아닌 ‘제3조’에 있다. 전문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자격인정에 관한 내용도 각각 제5, 6조가 아닌 ‘제4, 5조’에 있다. 이 법의 ‘앞과 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 제28조 1항에도 ‘제4조에 따른 간호학을 전공하는 대학’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또한 ‘제3조에 따른’을 잘못 쓴 것이다.

특히 간호조무사의 자격을 서술한 제5조는 간호조무사에 대한 “학력 차별” 논란이 있는 핵심 쟁점 조항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간무협)와 정부는 이 조항이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딸 수 있는 사람을 ‘고졸’로 제한해 전문대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을 역차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행 간호법 제정안은 김민석 서정숙 최연숙 의원 등이 대표 발의한 3개의 법안을 반영해 만든 대안이다. 기존 원안들에는 ‘다른 법률과의 관계’를 규정한 제3조가 있었고, 이때는 각 직역의 자격 기준에 대한 내용이 제4~6조가 맞았다. 복지위가 대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제3조가 빠지면서 뒷 조항들의 번호가 하나씩 당겨졌는데, 제2조에선 이 변화가 반영되지 않은 탓에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패스트트랙 오르며 ‘부실 심사’한 듯
간호법 제정안이 복지위를 통과한 건 지난해 5월 17일이다. 당시 복지위에선 야당 주도로 이 법을 통과시켰고, ‘체계·자구 심사’를 하는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회부됐다. 체계·자구 심사란 법안의 완결성을 검토하고, 오류가 있을 경우 이를 수정하는 절차다.

법사위는 올해 1월 16일과 2월 22일, 두 차례 회의를 통해 이 법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앞뒤가 다른’ 오류를 잡아내지 못했다. 법사위 전문위원이 올린 체계·자구 검토보고서에도 이 오류에 대한 지적은 없었다. 법사위 논의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야당은 2월 9일 복지위에서 간호법을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해 바로 본회의에 회부시켰다.

간호법 제정 과정에 대해 잘 아는 한 국회 관계자는 “법사위 1월 회의에선 간호법을 ‘법안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법안심사 제2소위원회로 넘길지 말지가 쟁점이었고, 2월 회의는 이미 간호법이 ‘패스트트랙’으로 본회의에 넘어간 후여서 큰 의미가 없었다”고 전했다. 여야 의원들이 간호법을 통과시키느냐, 막느냐를 두고 힘겨루기만 하다 정작 중요한 법안 심사를 소홀히 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이날 가결된 간호법은 4일 정부로 이송됐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의결된 법안을 정부에 보내기 전 명백한 조문 인용 오류가 발견돼 바로잡은 후 보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민들이 가결된 법안을 확인할 수 있는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홈페이지에는 5일까지도 ‘틀린’ 법안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한편 법사위 체계·자구 검토보고서에선 △이 법에 쓰인 ‘의료기관’의 정의를 명확히 할 것 △간호조무사협회를 ‘설립할 수 있다’가 아닌 ‘설립한다’로 고칠 것 등의 지적이 나왔지만, 이 지적은 법안에 반영되지 않았다.

“정치 불신 증폭 우려,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국회 사무처가 의원들의 실수를 바로잡으면서 큰 문제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법학계에선 이번 해프닝을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어떻게 보면 사소할 수 있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국민을 대신해 입법을 하는 국회가 ‘핵심 업무’인 입법 활동에서 오류를 냈다. 국회, 나아가서는 정치 자체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간호법 통과를 밀어붙여 온 야당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충분한 숙의 과정이 법안 심의 때부터 이뤄졌다면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간호법 통과를 정쟁이 요소로 볼 것이 아니라, 각 조문이 의료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할지 의미를 논의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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