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석수는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해 왔습니다. 민주당은 2020년 4월 총선에서 지역구만 163석에, 꼼수로 만든 비례위성정당 ‘더불어시민당’의 비례 의석까지 합쳐 총 180석을 얻었죠.
다만 한 달만인 5월 국회 개원을 앞두고 이 숫자는 177석으로 줄어듭니다. 더불어시민당으로 출마해 당선된 용혜인(기본소득당), 조정훈(시대전환) 의원이 각자 원래 소속 당으로 복귀했고, 역시 시민당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단 양정숙 의원이 부동산 차명 소유 의혹으로 개원도 전에 제명됐거든요. 그해 9월엔 역시 시민당 출신인 김홍걸 의원도 부동산 재산 신고 누락으로 제명됐습니다. 아무리 선거를 앞두고 급조한 비례연합정당이라지만 대체 검증을 어떻게 한 거냐는 ‘부실 공천’ 비판이 쏟아졌죠. 연일 줄어드는 의석수에 “무슨 인디언 인형들도 아니고 하루 지나면 사라지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왔습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명작 추리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자고 나면 사라지는 인디언 인형들에 빗댄 거죠.
그 뒤로도 1년여간 민주당의 의석수는 꾸준히 줄어듭니다.
2021년 6월엔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 여파 속 무려 12명이 당으로부터 ‘자진 탈당’을 권유받았습니다. 이때도 시민당 출신 비례대표들이 빠질 수 없죠. 당시 양이원영 의원과 윤미향 의원이 ‘출당’ 됐습니다. 참고로 탈당은 말 그대로 당을 스스로 나가는 것이고, 출당은 자의가 아닌 당의 결정에 따라 ‘제명’ 당하는 일종의 징계 처분입니다. 다만 비례대표는 탈당 시 자동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기 때문에, 출당 조치가 오히려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게 배려해주는 셈이죠. 출당됐더라도 제명 사유가 소명되면 복당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양이 의원도 무혐의 처분을 받고 그해 10월 복당했습니다.
비례뿐 아니라 지역구 의원들의 비위가 잇따르면서 ‘자진 탈당’ 형식을 띤 사실상의 출당 및 제명도 줄이었습니다.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상직 전 의원(전북 전주을)은 2020년 9월 대량 해고 및 임금체불 논란이 거세지자 결국 자진 탈당했습니다. 지난달 수백억 원대 배임 및 횡령 혐의로 징역 6년 실형을 확정받았더군요.
2021년 7월엔 양향자 의원(광주 서을)이 보좌진의 성범죄 사건 관련 2차 가해 의혹으로 제명 결정을 받고 자진 탈당했습니다. 두 달 뒤엔 이규민 전 의원(경기 안성)과 정정순 전 의원(충북 청주 상당)이 각각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형을 받았습니다. 이어 대선 경선 후보로 뛰던 이낙연 전 대표도 ‘의원직 사퇴’ 카드를 승부수로 던지면서 민주당은 168석으로 쪼그라듭니다. 총선 1년 반 만에 12석이 사라진 겁니다.
2022년 1월 열린민주당과 합당한 민주당은 강민정 김의겸 최강욱 의원의 합류로 다시 172석으로 올라서지만, 그해 4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과정에서 민형배 의원이 ‘꼼수 탈당’하는 희대의 일이 벌어집니다. 여기에 박완주 의원이 성폭력 사건으로 제명 처분을 받으며 역대 최저인 167석까지 떨어지죠. 그해 보궐선거로 기어이 원내에 입성한 이재명 ‘0.5선’ 의원과 1년 만에 복당한 민 의원 등에 힘입어 민주당은 170석을 회복했습니다만 최근 ‘돈 봉투 의혹’ 속 윤관석 이성만 의원의 탈당으로 다시 168석으로 줄어들게 됐습니다.
사실 민주당은 워낙 비대한 공룡 정당이다 보니 규모가 작은 당에 비해 말도 많고 탈도 많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다만 문제가 터졌을 때 어떤 원칙에 따라,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중요한데 민주당 지도부는 여론 눈치만 보다 결국 뒤늦게 논란의 의원들을 ‘뒷북 탈당’시키는 잘못된 패턴을 반복해왔습니다. 사실관계부터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따른 조치를 밟기보다는 일단은 ‘남 탓’으로 돌리다가 여의찮으면 그제야 원칙 없는 ‘뒷북 출당’으로 무마하는 식이죠. 지켜보는 사람들은 “또 꼬리 자르기 탈당이냐”고 비판하고, 출당당하는 사람들은 “당헌 당규상의 절차를 무시하냐”라고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결과적으로 더 시끄러워지는 구조입니다.
2021년 6월 송영길 당시 대표는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은 우상호 의원 등 현역 의원 12명에게 탈당을 권유했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터진 LH 사태로 잔뜩 성난 여론의 눈치를 보며 “일단 다 나가라”고 한 겁니다. 당시 김수흥 김한정 김회재 우상호 오영훈(현 제주도지사) 의원은 당사자 소명조차 받지 않은 절차적 부당함을 지적하며 탈당을 거부했습니다. 김주영 문진석 서영석 임종성 윤재갑 의원은 탈당계를 냈지만, 당은 이를 수리하지도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비례대표였던 양이원영 윤미향 의원만 제명된 거죠. 결국 추후 경찰 조사에서 무혐의를 인정받은 의원들은 여전히 송 전 대표와 불편한 관계라 하네요. 저 같아도 그럴 거 같습니다.
돈 봉투 의혹 사태를 대하는 ‘이재명호’도 우왕좌왕, 오락가락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애초 이재명 대표 등 지도부는 “검찰 수사 결과를 보고 결정하겠다”라며 당내에서 나온 자진 탈당 혹은 출당 조치 요구에 선을 그어왔습니다. 그래 놓고는 여론이 나빠지니 또 뒤늦게 부랴부랴 해당 의혹에 연루된 윤관석 이성만 의원을 사실상 ‘출당’ 시켰습니다. 민주당의 한 3선 의원은 “해당 의원들이 선제적으로 탈당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결국 당 지도부가 초기에 안일하게 대응한 탓에 결과적으로 모양새가 더 이상해졌다”라고 했습니다.
게다가 민주당 지도부는 이런 식으로 무소속이 된 의원들을 마치 ‘2중대’처럼 곧잘 활용해왔죠. 민 의원은 말할 것도 없고, 박완주 윤미향 의원 등도 ‘방송법’과 ‘양곡관리법’, ‘탄소중립기본법’ 등을 강행 처리하는 과정에서 번번이 민주당 손을 들어줬습니다. 양정숙 의원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이상직 전 의원은 탈당 후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특별법 개정안에 각각 안건조정위원으로 참여해 ‘민주당 지원군’으로 뛰었습니다. 오죽하면 민주당 내부에서 “나간 의원들을 복당시키지 말고 무소속으로 남겨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지경입니다. 숫자상 ‘업앤다운’은 있었지만, 민주당은 어쨌든 21대 국회 내내 철옹성 같은 과반 의석수를 유지하며 이를 토대로 ‘검수완박’과 ‘임대차 3법’ 등 입법 폭주를 이어왔습니다. 그래 놓고 민 의원을 최근 복당시키면서 “유례없는 집권 세력의 몽니에, 불가피하게 탈당이라는 대의적 결단으로 입법에 동참했다”(박홍근 전 원내대표)라고 감싸니 더욱 당의 조치에 진정성은 없어 보이고, 내부 결속마저 무너지는 겁니다.
민주당이 계속 이런 식의 ‘얼렁뚱땅 출당’으로 논란들을 대충 무마하려 한다면 내년 총선 후엔 진짜 소설 속 인디언 인형들처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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