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은 2년 뒤 전대에서도 ‘당원 100%’ 룰을 유지할까[한상준의 정치인사이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9일 14시 00분


“일반 국민 여론조사가 10%만이라도 반영됐다면 이런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텐데….”

국민의힘 3·8 전당대회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2월 초, 한 여권 인사는 전당대회 양상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친윤(친윤석열) 인사들이 앞장서 나경원 전 의원을 끝내 주저앉히고,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 안철수 의원에게 날 선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것에 대한 우려였다.

지난해 대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이후 여당 지도부 문제로 곤욕을 치렀던 국민의힘은 이번 전당대회를 앞두고 아예 ‘게임의 규칙’을 바꿨다. 2004년부터 실시해온 국민 여론조사를 없애고 오로지 당원 투표로만 당 지도부를 뽑기로 했다.

2004년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은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보다 먼저 전당대회에 국민 여론조사를 반영하기로 결정했다. ‘민심을 잡지 못하면 10년 넘게 야당 노릇만 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국민의힘 관계자가  3·8 전당대회 당 대표 선거 모바일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동아일보DB
국민의힘 관계자가 3·8 전당대회 당 대표 선거 모바일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동아일보DB


그로부터 18년 뒤, 국민의힘이 전당대회 규칙 개정에 나선 표면적인 이유는 “당의 주인은 당원”이라는 것이었지만, 모두가 아는 속내는 따로 있었다. 2021년 전당대회에서 일반 국민 여론조사의 압도적인 지지를 토대로 승리한 이준석 전 대표처럼 비윤(비윤석열) 후보가 승리하는 일을 막겠다는 것. 이 전 대표는 대선 기간 내내 친윤 진영과 충돌했고, 대선 승리 이후에도 이른바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들은 이 전 대표를 눈엣가시로 여겼다. 다만 “일반 여론조사를 없애면 민심과 거리가 멀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친윤 진영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그 우려는 전당대회가 끝난 직후부터 현실이 됐다.

● 예견됐던 ‘최고위원 리스크’


3월 8일 치러진 전당대회의 결과는 친윤이 바라던 대로 됐다. 전당대회 투표 전, 일각에서는 “결선투표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지만 김기현 대표는 과반을 얻어 2위인 안 의원을 큰 격차로 눌렀다.

최고위원 선거에서도 비윤 진영은 전멸했다. 이른바 ‘천아용인’이라고 불렸던 천하람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 당협위원장(당 대표 후보), 허은아 의원, 김용태 전 최고위원, 이기인 경기도의원(이상 최고위원 후보)은 모두 낙선했다.

이런 결과에 친윤 진영은 한껏 고무됐지만, 축포는 오래가지 못했다. 최고위원 선거에서 1위를 차지한 김재원 최고위원은 전당대회가 끝난 직후인 3월 12일 논란의 문을 열었다. 그는 극우 성향의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한 예배에 참석해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약속했던 5·18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全文) 수록에 반대 뜻을 표했다. ‘최고위원 리스크’의 시작이다.

이후 두 달여 동안 김재원 태영호 최고위원이 촉발한 논란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숱한 논란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극우’와 ‘대통령실’이다. 여당의 이번 전당대회를 짓누른 단어들이다.

전당대회 선거 운동과 관련해 국민의힘 관계자는 “일반 여론조사가 없어지면서 전당대회 후보들이 오로지 당원, 그중에서도 극우 성향이나 강경 지지층만을 염두에 둔 선거운동에 매달렸다”며 “예상과 달리 태 최고위원이 4위로 지도부에 합류한 건 제주 4·3사건의 발언도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선거운동 기간 태 최고위원은 4·3사건에 대해 “김일성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고 주장했고, 이런 태 최고위원에게 일부 극우 성향 당원들의 표가 쏠렸다는 분석이다.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이 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윤리위원회에서 소명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또 전당대회에서는 대통령실의 최선임 수석인 이진복 정무수석비서관이 나서 안 의원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 압박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를 두고 여당의 한 중진 의원조차 “정무수석이 저렇게 공개적으로 발언해도 되나 싶었다”고 했고, 한 초선 의원은 “저런 분위기에서 누가 대통령실에 대해 쓴소리나 조언을 하겠느냐”고 토로했다.

실제로 대통령실의 노골적인 반응에 의원들은 즉각 움츠러들었다. 당내에서는 “전당대회에 저렇게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대통령실이 내년 총선 공천을 그냥 지켜만 보겠느냐”는 반응이 나왔고, 의원들은 위축됐다. 이런 상황에서 태 최고위원의 육성이 담긴 녹취록에도 공천이 등장했다.

● 다음 전대에도 ‘당원 100%’ 유지할까


두 최고위원의 설화는 두 달 내내 집권 여당의 발목을 잡았다. 수석 최고위원이 4월 한 달 동안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고, 태 최고위원의 공천 녹취록 파문은 불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됐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3월 방일, 4월 방미, 5월 한국에서의 한일 정상회담 등을 소화하며 바쁜 일정을 보냈지만 당에서는 온통 두 최고위원을 둘러싼 나쁜 뉴스만 나왔다”며 “이게 해당(害黨) 행위가 아니면 무엇이냐”고 했다.

국민의힘 태영호 최고위원이 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윤리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소명을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결국 김 대표도 결단을 내렸다. 두 최고위원의 문제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고 판단하고 빠르게 당 윤리위원회를 구성한 것. 김 대표가 4일과 8일 연거푸 최고위원회의를 취소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당 관계자는 “두 최고위원이 공개석상에서 언론에 노출되는 일을 아예 막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당 윤리위도 1일 징계 개시 절차 시작 이후 8일까지 세 차례 회의를 열었다. 윤리위는 10일 두 최고위원의 징계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를 두고 중징계를 통해 ‘최고위원 리스크’에서 벗어나겠단 당 지도부의 의사가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당원 투표 100%’라는 룰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는 당 안팎의 지적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 한 여당 의원은 “국민 여론조사가 아예 반영되지 않으니 중도층 유권자들의 민심이 전당대회에서 전혀 반영되지 않은 대가”라며 “문제는 당 지도부가 문제를 촉발한 근본 원인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닥친 위기만 모면하려 들고 있다”고 했다.

만약 김 대표를 포함한 현 지도부가 2년 임기를 무사히 마친다면, 다음 전당대회는 2025년 3월 열리게 된다. 후임 지도부는 당의 명운이 달린 2026년 지방선거와 2027년 대선을 진두지휘하게 된다. 윤석열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지나, 정권 재창출 여부가 달린 선거를 앞두고도 과연 국민의힘은 ‘당원 100%’로 전당대회를 치르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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