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국방부 대변인실도 압수수색
“문건 문제없단 말 안했다며 확인 강요”
컴퓨터 포렌식으로 경위 본격수사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이 ‘계엄령 검토 문건’과 관련해 허위 서명을 강요한 혐의로 입건된 가운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12일 송 전 장관 자택과 국방부 등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7년 작성된 계엄령 검토 문건은 문재인 정부 당시인 2018년 공개돼 논란이 됐다. 이때 송 전 장관이 “문건에 법적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지만 송 전 장관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내용을 담은 ‘사실관계확인서’를 만들었다. 공수처는 송 전 장관이 국방부 당국자들에게 강요해 이 확인서에 서명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공수처 수사관 등은 이날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 내 대변인실과 군사보좌관실, 송 전 장관의 경기 용인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국방정신전력원(대전)도 압수수색했다. 당시 사실관계확인서에 당국자들 서명을 받도록 한 혐의를 받는 최현수 전 국방부 대변인이 원장으로 근무 중인 곳이다. 송 전 장관과 최 전 대변인, 당시 송 장관의 군사보좌관으로 있으면서 부하들에게 사실관계확인서를 만들도록 한 혐의를 받는 정해일 예비역 육군 소장 등 피의자 3인에겐 모두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가 적용됐다. 공수처는 압수수색을 통해 당시 사실관계확인서가 만들어진 경위를 파악할 수 있는 국방부 내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해 포렌식(감식)을 완료했다.
2018년 7월 문재인 정부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정국이었던 2017년 2월부터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가 계엄령 검토 문건을 만든 사실이 폭로되자 이를 ‘촛불 시민’에 대한 무력 진압 계획을 담은 매우 심각한 문건으로 규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송 전 장관 발언이 보도되면서 문건이 단순 법리 검토 보고서에 불과하다는 등의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공수처, 文정부 ‘계엄문건 정치적 이용 의혹’까지 들여다볼 수도
송영무 前국방 수사 속도 ‘宋 서명강요 의혹’ 증언-물증 확보 당시 참석자 “거부 분위기 아니었다” 文정부, 문건파동 뒤 기무사 해편
문재인 정부의 첫 국방부 장관인 송영무 전 장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12일 진행된 가운데 공수처는 송 전 장관 등이 직권을 남용해 ‘사실관계확인서’ 작성 및 서명을 강요한 사실이 있는지 입증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공수처는 서명 명단에 포함된 11인 중 유일하게 서명을 거부한 당시 민병삼 국방부 100기무부대장(당시 육군 대령) 등을 3월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하는 등 이미 충분한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10명의 서명이 담긴 확인서 사본 실물 등 핵심 증거도 다수 확보했다고 한다.
● “송 장관 발언 기억 안 나 서명”
12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사실관계확인서는 2018년 7월 13일쯤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에 앞서 한 방송사는 송 장관이 당시 국방부 주요 당국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박근혜 정부 당시 기무사가 만든 계엄령 검토 문건 등을 언급하며 “법조계 문의 결과 최악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한 준비계획으로 문제없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청와대가 이 문건을 중대 국기 문란 문건으로 규정하고 문재인 대통령까지 신속한 수사를 지시한 상황에서 송 장관은 오히려 사실상 문건에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
당시 간담회에 참석한 전 국방부 관계자는 “그때 간담회 분위기가 워낙 고압적이어서 보고를 준비하느라 참석자 상당수가 자신의 담당 업무 관련 발언이 아니면 송 장관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나는) 송 장관의 그 발언이 기억나지 않아 서명했다”고 했다. 또 “서명을 거부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다”고도 했다. 민 대령은 “당시 한 참석자는 내게 ‘(그런 발언을 들었지만) 귀찮아서 서명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당시 청와대는 7월 계엄령 검토 문건이 폭로된 직후 그해 3월 송 장관이 이미 이 문건을 기무사로부터 보고받고도 군검찰에 수사 지시를 하지 않는 등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질타했다고 한다. 군 관계자는 “그런 상황에서 ‘문건에 문제가 없다’는 발언까지 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송 장관 측이 이를 무리하게 수습하려고 했다가 항명 파동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봤다.
이날 전격 압수수색에 나선 공수처는 당시 합동참모본부 차장(중장)으로 간담회에 참석했지만 서명 대상자 명단에선 빠진 이종섭 현 국방부 장관을 대상으로 참고인 조사를 진행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송 장관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고 계엄령 문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한때 내란 음모용으로 규정됐던 이 문건이 사실은 박 전 대통령 탄핵 기각 등에 대비한 단순 법리 검토 문건이란 일각의 주장을 확인하는 수순으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또 계엄령 검토 문건 파동 이후 기무사 해편도 진행된 만큼 이번 수사가 문재인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문건을 왜곡했다는 의혹까지 들여다보는 신호탄이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당시 계엄 문건 폭로 이후 관계자는 모조리 소환됐고, 압수수색만 90곳 넘게 진행된 바 있다.
● “‘간담회 동정’ 문건 방첩사에 있을 것”
공수처는 송 장관이 정해일 당시 장관 군사보좌관(예비역 육군 소장)에게 ‘보도에 나온 내용(발언)을 언급한 사실이 없다’는 내용을 담은 사실관계확인서를 만들라고 지시했고, 정 보좌관이 부하 직원들에게 확인서를 만들라고 다시 지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현수 당시 국방부 대변인은 대변인실 직원을 시켜 서명을 받아오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서명 과정에서 민 대령만 “분명 그 발언을 들었다”며 서명을 거부했다. 2019년 전역한 민 대령은 12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내가 송 장관의 발언을 메모한 뒤 이를 복기해 기무사에 보고한 ‘간담회 동정’ 문건이 방첩사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당시 송 장관은 국방부 법무관리관 등을 통해 나를 징계하거나 사법 처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검토하라고 5번이나 지시했지만 그 근거를 찾지 못해 크게 분노했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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