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1박 후 청주발 비행기로 제주. 제주 호남향우회 행사에도 내일 14일 참석합니다. 2월부터 현재까지 전국 초청 강연 30회 이상 … 앞으로도 미래를 위해 방송 강연 운동에 정진하겠습니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13일 페이스북에 이같이 알렸다. 국회의원들이 트위터를 즐겨 사용할 때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에 직접 나섰던 박 전 원장은 최근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본인의 행보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전국 각지를 돌며 강연에 나서고, 유권자 및 정치인들과 만나는 일정들이다.
이런 박 전 원장의 행보를 두고 야권 관계자는 “내년 4월 총선에서 재기를 노리겠다는 의도”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내년 4·10총선이 채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감지되는 여야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올드보이(OB)’들의 귀환 움직임이다. 과거 권력의 정점에 섰던 정치인들이 22대 총선을 통해 여의도 복귀를 시도하고 있는 것.
● 박지원 천정배 정동영 최경환…몸 푸는 與野 중량급 인사들
1942년생으로 팔순을 넘긴 박 전 원장은 지난해부터 강연은 물론이고 라디오 등 방송 출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4선 의원 출신으로 문화관광부 장관, 대통령비서실장, 국가정보원장 등을 지낸 그는 페이스북 정치에도 열심이다.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적극 엄호하는 식이다.
이런 그의 행보와 관련해 호남 지역의 한 야당 의원은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아직 ‘현역 정치인’이라는 점을 알려 내년 총선에 나서겠다는 것 아니겠나”라며 “이미 지역에서는 박 전 원장이 전남 해남-완도-진도에 나설 것이라는 말이 파다하다”고 전했다.
14대 총선에서 전국구(현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박 전 원장은 18대 총선을 시작으로 전남 목포에서 내리 세 차례 당선됐다. 21대 총선에서도 목포에 출마했지만 민주당 김원이 의원에게 패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신의 고향인 진도가 있는 해남-완도-진도 지역구 출마를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에서 박 전 원장이 컴백을 준비하고 있다면, 광주에서는 천정배 전 의원의 행보가 관심사다. 5선 의원 출신으로 법무부 장관을 지낸 천 전 의원은 자신의 옛 지역구인 광주 서을 출마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1대 총선에서 광주 서을에 출마했던 천 전 의원은 당시 민주당 소속이었던 양향자 의원에게 패했다. 그러나 양 의원의 탈당으로 이 지역구가 사실상 무주공산이 되면서 벌어진 경쟁에 천 전 의원도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
또 전북 정가에서는 정동영 전 의원의 5선 도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1996년 15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한 정 전 의원은 15, 16, 18, 20대 총선에서 당선됐고 통일부 장관, 집권 여당 대표 및 대선 후보를 거쳤다. 21대 총선 패배 이후 잠시 주춤했던 정 전 의원에 대해 전북 지역의 한 정치권 인사는 “전주병 지역구에서 현역인 민주당 김성주 의원과 정 전 의원 간의 세 번째 맞대결이 유력한 분위기”라고 했다. 전주고, 서울대 국사학과 선후배인 두 사람은 20대, 21대 총선에서 맞붙어 나란히 1승 1패를 기록했다.
세 사람은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극심했던 친문(친문재인)-비문(비문재인) 갈등에서 같은 길을 걸었다. 당시 문 전 대통령과의 결별을 택한 이들은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과 손잡고 국민의당을 만들었다. 국민의당은 20대 총선에서 호남을 석권했고, 세 사람 모두 국회에 입성했다. 21대 총선에서는 나란히 고배를 들었던 이들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대규모 복당을 수용하면서 다시 민주당 당적을 보유하게 됐고, 다시 재기를 노리고 있다.
이런 OB들의 귀환 채비는 여권도 예외가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17대부터 20대 총선까지 경북 경산에서만 네 차례 연이어 당선된 최 전 장관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는 동안 친박(친박근혜)계의 좌장으로 꼽혔다. 그러나 2018년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가 지난해 3월 문 정부의 마지막 특사에 포함되면서 사면·복권됐다. 국민의힘의 한 전직 의원은 “아직 최 전 장관 본인은 출마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지만, 내년 총선에서 경산에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했다.
● 與野 “전체 총선에 미칠 영향은…” 떨떠름
한때 권력의 정점에 섰던 이들이 정치적 재기를 노리는 명분과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민주당의 한 전직 의원은 이렇게 정리했다.
“OB들의 생각은 쉽게 말해 ‘내가 김남국보다 못할 게 뭐냐’는 거다. 자신들이 김남국 의원을 포함해 어지간한 초선 의원들보다 국회에서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그런데 정말 김 의원이 OB들보다 잘하는 건 코인 투자, 그거 하나 아닌가?”
실제로 21대 국회의 여야 초선 의원들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의정활동으로 존재감을 보인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고, 오로지 재선 생각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 의원이 속한 민주당 강경파 초선들의 모임인 ‘처럼회’는 민주당 내에서도 “해체라하”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여당 초선들 역시 ‘친윤(친윤석열) 충성 경쟁’에 함몰된 지 오래다. 여기에 일부 지역구 유권자들은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초·재선 의원보다 거물 정치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OB들이 다시 몸을 푸는 배경으로 꼽힌다.
그러나 여야 지도부는 OB들의 귀환 채비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는 분위기다. 지역구 1석이 아닌 총선 전체를 봤을 때 ‘수십 년째 활동하는 인물’들의 등판이 부정적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난해 여야의 대선 후보가 모두 ‘0선’이었다는 점은 국회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며 “총선을 앞두고 새 인물 영입 경쟁을 벌여도 모자랄 판에 OB들이 등장하면 유권자들이 좋아할 리 없다”고 했다.
특히 OB들이 재기를 다지는 지역이 모두 여야의 텃밭이라는 점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정치를 더 해야 할 정도로 실력과 경험이 출중하다면 격전지인 수도권에 나와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럴 용기도, 의지도 없이 그저 안전한 영호남에서 국회의원 4년 더 해보겠다는 욕심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한 야권 인사 역시 “내년 총선 승부를 가를 젊은 유권자들이 OB들의 귀환을 어떻게 평가할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박 전 원장이 문체부 장관으로 일하며 김대중 정부의 ‘소통령’으로 불렸던 때가 1999년이다. 그 이듬해인 2000년에는 천 전 의원, 정 전 의원이 신기남 전 의원과 함께 ‘천신정’으로 불리며 집권 여당의 개혁에 앞장섰다. 최 전 장관이 친박의 핵심으로 꼽히기 시작한 건 200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다.
그리고 내년 총선의 유권자 중엔 2006년생도 있다. 지난해 대선부터 선거 연령이 만 18세로 조정되면서, 내년 4월 치러지는 총선은 2006년 4월생도 투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구 일꾼을 처음으로 뽑는 2006년생 유권자들은, 과연 OB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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