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총선 등 국가 선거를 총괄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내년 4월 총선이 채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에 초유의 위기에 처했다. 자녀 특혜 채용 의혹에 연루된 박찬진 사무총장(장관급) 송봉섭 사무차장(차관급)이 동반 사퇴하면서다. 추가 의혹이 잇따르면서 개헌을 통해 선관위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이번 특혜 의혹은 지난 10일 박 총장과 송 차장 자녀가 지방공무원으로 근무하다 각각 2022년, 2018년 선관위 경력직 공무원으로 채용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29일 현재까지 선관위에서 두 사람을 포함한 6건의 전·현직 고위 간부 자녀가 채용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중 5건은 경력직 채용 6개월 이내에 승진했다.
박 총장, 송 차장, 김세환 전 사무총장, 신우용 제주 상임위원, 경남 선관위 간부, 퇴직한 세종 선관위 상임위원 등 의혹이 불거진 선관위 고위직 간부 6명 모두 채용 과정에서 ‘사적 이해관계 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도 이날(29일) 새롭게 밝혀졌다.
특히 직전 김세환 전 사무총장도 특혜 채용 의혹으로 지난해 3월 불명예 퇴진한 상황에서 비슷한 일이 재발해 여론이 더욱 들끓고 있다. 선관위는 특별감사와 전직 직원까지 대상으로 자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결과는 이번 주 안에 나올 예정이지만 ‘셀프 감사’를 믿을 수 있겠냐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선관위가 내달 1일 김 총장과 송 차장의 면직안을 처리할 것으로 알려진 것도 도마에 올랐다. 징계 없이 의원면직이 되면 연금을 다 수령할 수 있고 공직 재임용도 가능하다. 일반 공무원은 비위로 내부 감사나 조사가 진행 중인 경우 해당 공무원을 임의로 면직을 할 수 없지만 독립기구인 선관위는 예외 적용을 받는다. 이와 관련,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페이스북을 통해 “그런 비리를 저지른 자들에게 아무 징계도 없이 면직을 한다는 게 말이 되나”며 “즉각 파면하고, 검찰이 제대로 수사-처벌 하는 것이 답이다”라고 밝혔다.
노태악 선관위원장에 대한 여댱의 사퇴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당 지도부 핵심 관계자는 뉴스1과 통화에서 “선관위의 도덕적 해이가 도를 넘고 있다”며 “중립성 공정성을 생명을 기본으로 하는 선관위가 불공정의 대명사처럼 비치는 현실을 선관위의 최고책임자도 깊은 고민을 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선관위가 논란에 휩싸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0년 총선에서 당시 야당이던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의 전신)의 ‘민생 파탄’ 투표 독려 피켓은 불허하고,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의 ‘적폐 청산’ 문구는 허용하면서 편파성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해 대선 때는 투표용지를 소쿠리로 운반해 부실 관리 논란이 일었지만 ‘헌법상 독립 기관’이라는 이유로 감사원의 감사를 거부했다. 최근에는 북한 해킹 시도와 관련한 국정원과 정부의 보안 점검 권고를 ‘정치적 중립성’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논란이 됐다.
선거 때마다 논란이 불거지다 보니 선관위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도 나온다. 헌법 전문가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거관리기구를 헌법에서 정해서 만들어놓는 예가 (전세계적으로도) 그렇게 많지는 않다”면서 “유권자들이 선거과정을 감시하고 관리하는 체제로 가면 국가 기관이 큰 규모로 관리할 필요가 없다. 선관위가 헌법기관으로 존재해야 할 필요가 있나”고 반문했다. 이어 “선거관리의 개념은 선거인 명부와 투표용지를 만들고 투표지를 개소하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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