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채용 논란]
9명 선관위원중 상근은 단 1명
‘자녀 채용으로 사퇴’ 총장 후임에… 똑같은 잘못 저지른 사람 또 뽑아
“35년간 내부 승진… 검증자체 안해”
박찬진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과 송봉섭 전 사무차장이 지난해 승진할 당시 사무처 직원들 사이에서 두 사람의 자녀 경력 채용 사실이 알려져 있었지만 정작 선관위원들은 별도 보고도 받지 못한 채 이를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관위 사무를 통할하는 선관위원장과 사무처 사무를 감독하는 상임위원 등 인사권을 가진 선관위원들이 제 역할을 못한 셈이다. 이에 대해 선관위원들 사이에서도 “그간 위원회는 인사 거수기였다”는 자성이 나왔다.
● ‘아빠 찬스’ 숨긴 1·2인자 검증 못한 선관위원들
1일 동아일보 취재 결과 노태악 선관위원장과 김필곤 상임위원 등 선관위원들은 지난해 6월 박 전 사무총장과 송 전 사무차장을 각각 사무차장, 충남 선관위 상임위원에서 승진시킬 당시 이들의 자녀 채용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선관위원들은 1년 뒤에야 이번 ‘아빠 찬스’ 감사 과정에서야 당시 사무처 고위직과 인사 담당 직원들은 두 사람의 자녀 채용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파악했다. 한 선관위원은 “송 전 사무차장의 경우 중앙선관위의 기획조정실장이나 선거정책실장이 사무차장으로 직행하는 관례를 깨기 위해 발탁 인사를 한 것인데, 정작 자녀 채용 부분은 검토가 안 됐다”고 말했다. 선관위원은 9명으로 위원장과 비상근 위원 7명, 상근 상임 위원 1명으로 구성된다. 위원장도 비상근이다.
당시 인사가 김세환 전 사무총장이 자녀 채용 의혹 등으로 사퇴하면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 심각하다는 반응이다. 박 전 사무총장과 송 전 사무차장의 자녀도 선관위에 근무하고 있었지만 당사자들이 이를 숨긴 데다, 선관위원들 역시 자녀 채용 여부를 검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선관위원은 “그간 사무차장이 사무총장으로 자동승진했고 그 과정에서 검증 자체를 한 적이 없었다”며 “동서고금에 이런 장관급(사무총장) 인사가 어디에 있었겠나”고 했다. 실제 35년 동안 사무차장이 사무총장으로 승진하는 관례가 단 한 번도 깨진 적이 없었다. 여기에 사무차장도 1급 중에서 임명했지만, 역시 별도 검증 절차는 없었다. 한 선관위원은 “똑같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다시 채용하는 기관이 어디 있겠나”라며 “국민들에게 할 말이 없다”고 했다.
● “대법관 겸직 선관위원장, 상근직으로 바꿔야”
연이은 ‘아빠 찬스’ 의혹과 관련해 전직 상임위원들은 “선관위가 감시 받지 않는 통제 사각지대로 있어 온 폐해가 드러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상임위원을 지낸 정홍원 전 국무총리는 이날 동아일보 통화에서 “선관위는 헌법기관이라 외부 통제가 거의 없다”며 “선관위 직원들끼리 똘똘 뭉쳐 있으니 시야가 굉장히 좁고 개혁적인 분위기가 없다”고 했다.
여기에 선관위 상임위원이 내부 출신으로 채워지면서 기강 해이를 부추겼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 전 총리는 “자기 식구들끼리 ‘도토리 키재기’ 해서 올라가는 내부만의 조직이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 총리 이후 임명된 상임위원 6명 중 4명이 선관위 출신이었다.
결국 선관위의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서는 대법관이 비상근으로 겸직하는 선관위원장을 상근직으로 바꿔 통솔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 전직 선관위 고위 인사는 “위원장이 비상근이기 때문에 직원들이 올리는 결재를 그대로 수용하고, 결국 선관위 직원들의 뜻대로 조직이 운영된다”고 했다. 선관위원장을 상근직으로 운영하는 방안은 2006년 입법이 추진됐지만 불발됐고,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의원이 같은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또 사무처와 독립된 별도의 감사기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선관위 사무총장 출신인 문상부 전 상임위원은 “외부 인사가 사무총장의 지휘를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감사를 수행해야 국민적 의혹을 해소할 수 있다”며 “독립된 감사 기구에서 인사 문제뿐 아니라 선거법 해석 논란 등도 다룰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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